[여성수도자] <11> 예수님의 고독처럼
무작정 헤메돌다 문득 깨달은 어리석음
처음으로 더듬어 가니 낯익은 얼굴이…
여기를 보아도 저기를 보아도 팔레스타인 사람들뿐이었다. 베일을 쓴 수녀님 대신 히잡을 쓴 무슬림 여인들만 눈에 띄었다. 머리 깎은 스님이나 쪽 진 머리를 한 교무님은 아무리 둘러보아도 찾을 길이 없었다.
예수님이 두 번째 넘어진 지점에 가도 삼소회원들은 없었고, 예수님이 세 번째 넘어진 지점에서도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예수님의 고독이 심장을 파고들었다. 성서엔 예수님이 태어날 때와 아주 어린 시절의 모습만 그려져 있을 뿐 그 이후 서른 살 때까지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다. 서른 살 때 세상에 모습을 나타낸 예수님은 불과 3년 만에 이 세상에서 처절히 버림받은 몸이 되어 여기 이 마지막 길을 갔다.
육신은 지치고 지쳐서 70킬로그램에 이르는 십자가를 감당하지 못하고 세 번이나 쓰러지기를 거듭했다. 그 가냘픈 육신의 손과 발엔 못이 박혔다. 지나는 유대인들은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느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했다. 대제사장들도 서기관 및 장로들과 함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라니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고 희롱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못했다.
혹시 한국인으로 보이는 수녀님이나 스님들을 보지 못했느냐고 묻는 내 물음에 고개를 흔드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나를 비웃는 것 같았다. 순례단을 놓친 지 한 시간이 넘었지만, 도무지 미로의 끝은 보이지 않았다. 이런 식으로 찾아 헤매다간 영원히 비아 돌로로사의 미아가 될 것만 같았다.
남대문시장보다 몇 배는 더 붐비는 것 같은 시장 속에서, 그런 미로 속에서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그 상태에서 무작정 순례단을 찾아 헤맨 자체가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제야 나는 내 어리석음을 깨닫고 다시 처음 출발했던 곳을 찾아 길을 나섰다. 물어물어 길을 더듬어 나아갔다. 북새통을 좀 벗어나는가 싶더니 저 멀리서 얼굴이 익은 한 사람이 뛰어오고있었다.
조현 종교명상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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