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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예수의 길 따라가다 테러의 땅에서 길을 잃다

등록 2008-11-30 18:36

⑩ 골고다 언덕 ‘십자가 길’ 순례단은 온데간데도 없고 숙소이름도 몰라

헤메던 시장통에서 갑자기 주먹이 날아왔다

    

‘비아 돌로로사’의 순례는 그렇게 아픔 속에서 시작되었다. ‘비아 돌로로사’란 ‘슬픔의 길’이다. 예수님이 빌라도 총독의 법정에서부터 갈보리 언덕, 즉 골고다 언덕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신 길이다.   여성수도자들 삼소회 순례단은 2000년 전 로마군이 만든 좁은 돌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미로 같은 길엔 예수님이 재판을 받은 1지점부터 희롱을 당한 곳, 쓰러진 곳, 성모 마리아를 만난 곳, 십자가에 못 박힌 곳, 운명한 곳, 시신을 놓았던 곳, 무덤 등 열네 개 지점이 있었다. 각 지점엔 모두 그 상황을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골목을 채 200미터나 갔을까. 각 지점에서 일어난 열네 가지 사건을 그린 판화가 벽에 붙어 있었다.   유대인이면서 유대를 벗은 탈교단·탈종교적 삶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신 제2지점에 이어 십자가 아래 넘어지신 곳에 이르렀다. 그 자리엔 폴란드 예배당이 지어져 있었다. 이곳에서 넘어진 예수님의 모습이 조각으로 형상화되어 있었다.   예수님의 지친 육신과 찢긴 마음이 절절히 다가왔다. 그를 죽인 것은 어쩌면 로마가 아니라 그의 동포였다. 로마 제국의 빌라도 총독은 유대교의 대사장과 장로들에게 고소당한 예수로부터 아무런 죄를 찾을 수 없다며 살려주려고 하지 않았던가. 유월절이면 죄수 한 명씩을 방면한 전례대로 예수를 놓아주기 위해 대중에게 물었을 때, 유대교인들인 군중은 그 자리에 있던 예수님이 아닌 바라바를 방면하라고 했다. 바라바는 강도였다.  
로마 군인들은 동포들에게 배척당하고 버림 받은 예수님의 옷을 벗기고 홍포를 입힌 뒤 가시관을 머리에 씌우고 침을 뱉으며 희롱을 했다. 그의 제자 베드로마저 같은 처지에 몰릴까봐 두려운 나머지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세 번이나 부인하지 않았던가.   예수님이 짊어진 십자가 속의 묵상에서 나와 보니 순례단의 대부분이 그 자리를 떠나고 없었다. 그런데 마리아 수녀님이 그 십자가 밑에 넘어져 있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 유대인이었지만 유대인의 틀에서도 벗어나버린 예수님. 그래서 유대인으로부터 철저히 버림 받은 예수님의 탈교단적이고 탈종교적인 삶이 가슴을 후빈 것일까. 옆에서 마리아 수녀님을 지켜보던 진명 스님도 말없이 눈물을 훔쳐내고 있었다.   교회를 나와 마리아 수녀님, 진명 스님과 함께 순례단을 뒤따르려고 보니 길 옆에 예수님과 십자가를 정교하게 조각한 목각상들이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누나가 생각났다. 신앙의 열정에 들떠 비신자 가족들을 들볶는 누나가 부담스럽기도 했지만, 비아 돌로로사에서 예수님의 슬픔이 내 가슴의 슬픔으로 옮겨오며, 누나의 그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나는 누나를 위해 이 비아 돌로로사에서 뭔가를 사가고 싶었다.   모든 끈과 단절돼 철저히 혼자, 손에 땀만 흥건   예수님과 성모 마리아의 목각상을 사서 다시 길에 나와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순례단이 보이지 않았다. 뛰어가보았지만 수녀님도 스님도 교무님도 보이지 않았다. 몇 걸음을 더 가니 시장통이었다. 그곳은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었다. 두 갈래로 나뉜 길 가운데 어느 쪽으로 갔는지 알 수가 없었다. 비아 돌로로사는 로마 시대 만들어진 좁은 길인 데다 시장통이어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다. 수많은 인파 때문에 시장통은 움직이기조차 곤란했다.   길은 여러 갈래로 나뉘고 미로처럼 꼬여 있었다. 다음 지점으로 가면 되겠지 하고 6지점과 7지점을 찾아나섰지만, 그 지점들이 순서대로 있지 않았다. 6-7-8-9지점을 순서대로 순례하게끔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주위엔 팔레스타나인 사람 외에 외국인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가끔씩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인질로 잡히는 사람들의 얼굴이 떠올랐다(순례단이 이곳을 다녀간 바로 뒤 한국방송의 용태영 특파원이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게 인질로 잡혔다).  
서둘러 인파의 숲을 지나는데 어깨를 부딪힌 팔레스타인 청년이 내 얼굴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 옆에서 날아온 주먹을 의식하고 피하자 그가 다시 한번 주먹을 날리는 시늉을 했다. 이방인에 대한 증오심이었을까. 아니면 시시때때로 중무장한 채 감시의 눈을 번뜩이며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에 대한 증오심을 표현할 길 없는 젊은 감정의 발산이었을까. 알 길은 없었지만 난 위협을 느꼈다.   내가 순례단과 연결될 수 있는 고리는 없었다. 한국을 떠나올 때 숙소와 전화번호 등이 적힌 종이를 나눠주었지만, 영국보다 훨씬 더운 이스라엘이기에 짧은 옷을 입고 나오면서 그것마저 챙겨오지 않은 것이다. 순례단을 찾지 못하면 숙소를 찾을 길도 없었다. 숙소는 수도원이었는데 밤중에 도착해 새벽에 나오느라 수도원 이름은커녕 어느 지역 근처인지도 알 수 없었다.   모든 끈과 단절된 느낌이었다. 손에 땀이 흥건히 배어났다. 예수님이 모든 쪽으로부터 버림 받고, 철저히 고립돼 십자가를 지고 간 그 길에서 난 그렇게 철저히 혼자가 되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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