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누가 이 고사리손에…
맑디맑은 눈망울에서 분노 본다는 건 슬픔
중무장한 유대인들도 스무살 채 안된 청년
성벽에서 가장 먼저 순례단을 맞은 것은 총을 든 군인들이었다. 그들은 어렸다.
십대 후반, 많아야 스무 살쯤으로 보이는 유대인 청년들이었다. 네 명의 이스라엘 군인들이 중무장한 채 순찰에 나서고 있었다. 예루살렘의 이 성벽 안은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가 모두 성지로 여기는 곳이다. 이 세 종교의 성지 탈환 다툼으로 한시도 평안할 날이 없는 곳이다.
기독교 믿는 동양인도 미국이나 영국과 한통속이라 여긴 듯
순례가 시작된 지역은 아랍 구역이었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한 아이가 갑자기 순례단에게 달려들어 공격하는 자세를 취했다. 그의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진 못이 언뜻 눈에 띄었다.
무엇이 저 귀여운 아이로 하여금 손에 쇠못을 쥐게 했을까. 이곳에 온 동양인의 대부분은 기독교인일 것이고, 아랍인들은 그들을 이슬람을 핍박하는 미국이나 영국과 한통속이라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귀여운 아이의 행동이 순례단을 멈칫하게 했다. 아이들에게 위해를 당하지 않을까 하는 염려보다는 그 아이가 자칫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그런 행동을 취했다가 경을 치지나 않을지 그것이 걱정이었다. 팔레스타인 아이들이 이스라엘 군인들에게 공격하는 자세를 취했다가 총에 맞아 죽는 일이 적지 않은 나라가 바로 이 땅이기 때문이다.
서방에서 테러 단체로 지목한 하마스가 팔레스타인의 집권당이 되자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사는 가자 지구의 무역 통로를 폐쇄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가자 지구에 사는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3분의 2는 하루 소득 2달러 미만의 빈곤층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이 길을 봉쇄해 식량이 거의 바닥났다고 했다. 성전 안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은 예루살렘 시민이긴 하지만, 그들의 동포를 아사 상태로 몰아넣고 있는 이스라엘에 대한 분노는 성전 벽 밖의 팔레스타인 사람들 못지않을 것임이 자명한 일이다. 이 땅에 1948년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운 이래 벌어진 수많은 정규전에서 거의 백전백패를 한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른다.
광신자가 아니라 대부분 고등교육 받고 중산층인 일반인
옆을 지나가는 귀여운 팔레스타인 여자아이들은 ‘바비 인형’을 닮았다. ‘자살 폭탄 바비 인형’은 영국의 한 예술가가 팔레스타인 소녀의 인터뷰를 본 뒤 만들었다고 한다. 팔레스타인 소녀는 원래 의사가 되고 싶은 꿈 많은 아이였다. 그러나 이스라엘과의 싸움으로 공부는커녕 매일 밤 잠조차 잘 수 없는 고통이 계속되자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순교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이 인터뷰를 본 예술가는 자살 폭탄 테러범들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라 평범한 인간들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런 귀여운 아이가 폭탄 띠를 두르고 있는 인형을 만든 것이다.
실제로 무슬림 자살 폭탄범들을 연구한 전문가들은 그들이 종교인이 아니라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았거나 중산층 이상인 일반인들이라는 것을 밝혀냈다. 미국 프린스턴 대학의 경제학자 클로드 베레비가 1980년대부터 2003년까지 팔레스타인과 하마스의 자살 공격자들을 연구한 결과, 그들 중 불과 13%만이 가난한 환경에서 자란 반면 대부분이 중산층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또 팔레스타인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은 국민의 15%에 불과하지만, 자살 테러범들의 절반 이상이 고등 교육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서방에선 자살 테러범들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미치광이로 치부하지만, 그들은 그 사회 안에서 정상적으로 자랐으며, 정상적인 판단으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결론이었다.
특정한 소수만이 아니라 그들의 보편적인 정서 속에 자리한 분노. 아이들의 귀여운 눈망울에서 그것을 발견한다는 것은 슬픔이었다.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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