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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죽음은 살아 남은 이들의 최고 스승

등록 2008-02-26 15:52

[여성 수도자] 강가강 ③   수녀님, 스님, 교무님도 죽음과 더불어 새로운 삶

죽은친구는 아름다운 환송으로 산 내게 환희 선물   희동이 세상을 떠난 뒤 나는 또 한명의 친구를 보내야 했다. 어린 시절 한 골목에서 살던 동갑내기 영철이었다. 우리 집 사랑채에서, 그리고 그의 집 작은방에서 우리들은 한 이불 속에서 고구마와 감자와 옥수수를 먹으며, 책을 보고, 킥킥대며 장난을 치곤 했다. 서로 결혼하고 다른 직장에 가서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지만, 어린 시절 십수년을 함께 보낸 친구는 눈에 보이지 않아도 저 가슴 밑바닥에서 함께 하고 있었다.   어느날 누군가에게 전화가 왔다. 영철이가 암이라고 했다. 전화를 받자마자 일산에 입원해 있던 그에게 달려가 보았더니 “많이 나아졌다”고 했다. 그래도 조심하고 또 조심하며 요양을 하도록 신신 당부하고 돌아섰다. 그렇게 몇달이 지난 뒤 한 친구로부터 다시 연락이 왔다. 영철이가 곧 죽을 것 같다는 것이었다. “그럴리가”라는 의혹은 병원에 가서 대꼬챙이처럼 말라 누워 있는 그의 모습을 본 순간 어처구니 없는 비탄으로 바뀌었다. 영철이는 내 말의 여운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직장에 나간 모양이었다. 조금 나아졌다 싶으니 처와 두아들을 부양해야지 이렇게 한가하게 누워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바보처럼.

    원망하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가슴에 못 박는 얘기만     두번째 그를 찾아갔을 때 그는 더욱 말라 있었다. 그의 아내를 밖으로 불러내 물었더니 “살 희망이 없다”고 했다. 이제 남은 시간이 채 한 달도 남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도 영철이는 그런 상황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영철이가 모든 사람을 원망하며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계속 가슴에 못을 박는 얘기만을 내뱉는다고 했다.   그의 아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 나는 침대에 누운 영철이 옆에 걸터앉아 마주했다. 그의 옆엔 성경책이 놓여있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느냐”고 묻자 그는 “아내가 다니니 그냥 다닐 뿐이고, 모든 게 원망스러울 뿐”이라고 했다. 가슴이 아팠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네 상태를 아느냐”고 물었다.   “나도 알아.”   그가 말했다. 가족들은 그가 모르는 줄 알지만 자신도 자기가 채 한 달도 살지 못하리라는 것을 안다고 했다.   설마 했던 것이 정말 현실이냐는 듯이,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한가닥 믿음을 달라며 쳐다보는 그를 향해 나는 다시 비수를 꺼냈다.   “그래, 너 얼마 못 살아!” 푹 꺼진 눈이 그 말을 들으며 찰나간에 한 자는 더욱 꺼져버린 그를 향해 물었다.   “며칠 뒤 네 숨이 끊어진 순간 너는 어떨 것 같으냐?” 그는 더욱 퀭한 눈을 아래로 떨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빛에 싸여 미소짓던 그의 아름다운 환송으로 나조차 환회로와졌다    “영철아. 너는 죽지 않아!”   나는 마치 그의 생사여탈권을 쥔 신이라도 된 양 그에게 단언하고 있었다. 마치 죽어서 저승에 다녀오기라도 한 것처럼 나의 말은 확신에 넘치고 있었다. 그 확신 외에 그 순간 내 친구를 구제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네 숨은 끊어지겠지. 그 순간 설사 나와 네 아내는 너를 보지 못해도, 너는 보고 있을거야. 숨이 붙어 있을 때보다 더욱 더 생생히 보고 있을거야. 우리를. 그것이 잠시 죽었다가 깨어난 임사체험자들의 증언이고, 모든 종교의 간증이야. 숨이 끊어질 뿐 네 영혼은 결코 죽지 않아.”   영철이는 익사 직전 지푸라기를 잡은 이처럼 눈을 반짝였다.   “하지만 네가 숨이 붙어 있는 순간 지금과 같은 지옥의 마음상태를 마지막까지 가지고 가면, 숨이 끊어진 이후에도 지옥이 기다리고 있을거야. 네가 지금 마음이 편해진다면 숨이 끊어진 이후에도 천국이 기다리고 있겠지. 천국과 지옥은 지금 네가 선택하는거야.”   그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내친 김에 하던 말을 계속했다. “숨이 끊어진 순간에도 성성히 깨어 있는 자신을 발견한 순간 너는 그 때서야 남은 가족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대해주지 못하고 떠나온 것을 후회하게 될거야. 그렇게 가고 싶어?”   영철이는 “아니”라고 했다. “그렇게 작별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뜨거운 눈물을 쏟았다. 그토록 빼빼 말라가며 외롭게 홀로 죽음을 맞이하며 서럽고 무서웠던 모든 악몽을 한꺼번에 쏟아내듯이 영철이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나는 그의 손을 잡아주고, 등을 토닥여주는 것 외에 더 이상 할 수 있는것은 없었다. 그렇게 헤어진 며칠 뒤 영철이는 세상을 떴다.   영철이의 장례식장에 달려갔을 때 그의 아내가 달려와 말했다. 마지막 며칠 동안 많이 달라졌다고. 그리고 숨을 거둔 순간 아주 평안하게 갔다고 했다. 며칠 뒤 그는 내 꿈에 나를 찾아왔다. 꿈 속에서 찾아온 영철이는 빼빼 말라 비틀어진 말기암 환자가 아니었다. 그는 빛에 싸인 모습으로 내게 미소를 지었다.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내가 깨어났을 때 나는 그가 아름다운 여행을 떠났다는 것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았다. 그의 아름다운 환송으로 나조차 환희로와졌다.  
  임사체험자들 하나같이 달라지는 그 후의 삶    죽은 자는 그 혼자 새로운 세상으로 여행을 가는 것이 아니었다. 그 죽음이 이처럼 산 자를 새롭게 할 수 있다는 게 신기했다. 카타리나 수녀님은 열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한꺼번에 자신을 떠나는 죽음을 경험했고, 선재 스님은 10년 전 간에 병을 얻어 죽을 수도 있다는 경고장을 받은 채로 살아왔다. 또 인신 교무님은 자신의 수도원에서 죽어가는 난치병 환자들을 보살펴왔다.   죽은 자들에게만이 아니라 산 자들에게도 더욱 큰 의미로 다가서기에 죽음은 살아남은 이들의 최고의 스승이다. 한 순간 자신이 죽었다고 여겼던 임사체험자들은 그 뒤로 삶이 획기적으로 변한다고 한다. 우리가 죽는다고 아는 그것이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임을 안 그들은 이번 삶이 아름다워야 다음 삶도 아름답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미래를 위해 오직 돈을 벌거나 출세하기 위해 아등거리던 삶이 지금 사랑하고 베풀고 행복해지는 삶으로 전환된다고 한다.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오는 죽음 앞에 섰을 때, 부나 성취 등 물질과 형상은 어느 것 하나 가지고 가지 못한 채 오직 마음만으로 새로운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는 더 많이 가지거나 더 많이 이루지 못한 것이 후회스러운 게 아니라 더 용서하지 못하고 더 사랑하지 못하고 더 베풀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다는 것을 실감한 때문이었다.   그들은 서로 손잡고 사랑해야 할 산자들이 있는 땅으로    시바 신 같은 사두의 초월적 표정이 주는 변화였을까. 순례단도 죽은 자의 여행을 기꺼이 환송하고, 지금 내게 오는 자도 기꺼이 환영하는 마음이 된 것 같았다. 막막한 우주의 한 점인 지구에, 같은 시간에 태어나 함께 지구호를 타고 가는 여행의 동반자들이 더욱 소중해진 것이 분명했다.   나룻배에서 내려 길을 걸을 때 지정 교무님과 베아타 수녀님이 손을 잡았고, 그 뒤로 더 늦기 전 누군가의 손을 잡겠다는 듯이 선재 스님과 마리 코오르 수녀님이 손을 잡고 따랐다. 그들은 서로의 체온을 느끼며 사랑해야 할 산 자들이 있는 땅을 향해 걸었고, 그들 옆으로 들것에 실린 자들은 새로운 여행을 떠날 강가 강의 나루터로 향하고 있었다.  
  어머니 영전 앞에 두고 춤 춘 문익환 목사     죽음은 늘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은 누구에게나 오지만 그것을 어떻게 맞이하느냐에 따라 고통과 행복의 정도는 천양지차입니다. 죽음을 새로운 여행으로 받아들인 사람들에겐 장례는 고통이 아니라 새로운 여정을 떠나는 이를 위한 환송연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문익환 목사는 어머니 김신묵 여사의 영전을 앞에 두고 고은 시인과 손을 맞잡고 춤을 추었고, 명진 스님(봉은사 주지)을 비롯한 선승들은 존경하는 춘성 선사의 장례식장에서 춘성이 평소 즐겨 부르던 ‘나그네 설움’ 한가락을 뽑은 다음, 상가를 ‘전국 수좌(선승) 노래자랑대회’와 춤판으로 만들기도 했습니다.   제가 가끔 식사나 술자리에서 제 벗들을 보낸 얘기들을 해주곤 했는데, 이를 들은 이들이 맞이하는 죽음은 다른 사람들과는 사뭇 달라지더군요. 지난해 제가 다니는 회사의 한 선배가 모친상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친상을 일체 외부에 알리지 않았습니다. 저도 까마득히 몰랐으니까요. 그 선배는 내가 일러준 대로 아름다운 이별의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그리고 영정 사진 속의 어머니와 울고 웃으며 많은 얘기를 나눴고, 너무도 기쁘고 행복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사람. 제 단골인 명동성당 건너편 백병원 앞 죽집인 죽향 주인 정명숙씨가 그랬습니다. 그는 여성으로선 우리나라 최초로 에베레스트에 오른 산악인이기도 한데, 저와 죽음에 대한 얘기를 많이 나누면서 지난해 아버지를 보내면서 마지막 한달동안 모든 앙금을 씻는 해원의 기쁨 가운데 아버지를 보냈고, 병이 깊던 아버지도 마지막을 아주 평안한 가운데 가셨다면서 감격해했습니다. 엄마 아빠를 기쁘게 보낸 그들이 아름답습니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여성수도자/강가강①]  죽음은 삶 옆, 그냥 자연스런 일상 [여성수도자/강가강②]  죽음도 삶도, 위 아래 없는 물처럼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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