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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죽음도 삶도, 위 아래 없는 물처럼

등록 2008-02-01 15:23

  [여성 수도자] 강가강의 화장터 ②   주검 세례한 강물 머리 끼얹는 수행자 모습에 언뜻…

빛으로 ‘죽음을 산’ 친구여, 아름다운 여행하시라   ** [강가강의 화장터①] 죽음은 삶 옆, 그냥 자연스런 일상    그 옆에서 사두(힌두교 수행자)는 주검을 세례한 물결의 파고가 그의 눈앞에서 퍼져 나가도 아무런 동요가 없었다. 그때서야 나는 나이를 짐작할 수 없는 사두의 모습이 바로 인도의 사원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시바 신과 너무나 닮았다는 것을 알았다. 힌두 사원에서 시바는 남근인 링가로 표현되지만, 간혹 시바를 그린 그림이나 상들도 있었다. 단숨에 뭔가를 파괴할 듯한 건장한 몸임에도 희로애락을 초월한 표정에 긴 머리를 늘어뜨린 그는 영락없는 시바 신이었다.

  지상으로 내려온 천상의 강, 천국으로 가는 강물 세례   인도인들은 강가 강이 원래 천상에서 흐르는 풍요의 강이라고 믿는다. 그런데 지상에 큰 가뭄이 들었고, 이를 안타깝게 여긴 한 선인이 강가 강을 지상으로 끌어내리기를 소원하며 고행을 거듭한 결과, 드디어 강가 강을 이 지상으로 끌어내릴 수 있다는 허락을 받았다. 그런데 그 엄청난 물줄기가 하늘에서 떨어지면 이 땅의 모든 것이 다 쓸려내려가 파괴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이를 염려한 ‘파괴의 신’ 시바가 그의 머리로 강물을 받아 그 물줄기들을 조각 내 땅으로 내려 보낸다고 한다.   시바는 파괴의 신이다. 파괴란 변화의 모습이다. 변화를 통해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생겨났다 유지되고, 파괴되고 다시 생겨나는 변화는 만물의 법칙이기도 하다. 그래서 파괴의 신 시바는 인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변화무쌍한 신이다.   시바의 머리칼을 타고 내려오는 이 물을 인도인들은 왜 가장 성스럽게 여기며, 그 강물의 세례를 받으면 천국에 이를 수 있다고 믿게 된 것일까. 나는 알 수 없는 세계를 떠도는 유랑별처럼 인도를 떠돌 때 온갖 오물로 덮인 시궁창 같은 바라나시의 강가 강만이 아니라 수많은 강가 강을 보았다.  
  변화에 익숙하지 못해 생소한 것은 거부하는 나를 보며   강가 강은 광활한 인도의 대지를 적신다. 요가 학교가 있는 비하르 주 뭉게르에선 바다처럼 광대한 강가 강을 보았고, 요가의 땅 리시케시에선 맑디맑은 시내 같은 강가 강을 보았다. 또 더 높은 히말라야의 고산에선 계곡 같은 강가 강을 보았다. 그리고 구름과 비, 물을 먹고 자라는 나무와 뭇 동물들……. 끊임없이 변화해가는 그들이 바로 강가 강으로, 시바 신으로 현현한 것이 아니라고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때론 히말라야에서, 바라나시에서, 또는 비로, 나무로, 인간으로 몸을 드러내는 시바 신은 육신을 무너뜨린 그 자리에 어떤 생명을 피워냈을까. 변화에 익숙하지 못해 다른 세상, 다른 사람들처럼 생소한 것에 대해선 먼저 거부 반응을 보이는 나를 보며 그 사두는 다시 강가 강의 물을 한 손 가득히 떠 자신의 머리에 부었다. 그 자연스런 변화와 다름을 받아들임으로써 성스러워지고, 천국이 열린다는 것을 보여주기라도 하듯이. 어디엔가 매여 있고 집착이 강하면 결코 물처럼 흐를 수도, 그 흐름을 통해 정화될 수도 없다는 것을 설명해주기라도 하듯이. 보라, 그대가 물이 된다면 윗물과 아랫물은 결국 같은 물일 뿐, 죽음도 아니요, 삶도 아니라고 말하는 것처럼.  
  왜 그렇게 가버렸냐는 ‘산 자의 푸념’, 이젠 그만…   그 순간 희동의 다른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한밤중 아산에 도착해 영안실에 갔을 때 희동의 아내가 다가왔다. 나는 다만 그의 아내를 안아주는 것 외에는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녀가 놀라운 소식을 전했다. 바로 직전에 어떤 분이 영안실에 들어서는 순간 그분에게 희동의 영혼이 임해, 그분의 입을 통해 희동이 “세상에서 할 일을 다 하고 떠나와 너무너무 좋은 곳에 왔으니 아무 걱정 하지 말라”고 위로해 주더라고 했다. 그 뒤 희동은 많은 친구들의 꿈속에도 빛에 싸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삶, 환희의 삶을 보여주듯이.  
  나도 그의 죽음에 대한 절망과 탄식을 끝내고 이제는 그를 ‘환송’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왜 그렇게 가버렸냐는 ‘산 자의 푸념’은 이제 그만둘 수 있을 것 같았다. 화를 내기보다는 그동안 함께 해줘서 고맙다고, 그대가 있어 행복했노라고, 세상살이에 무능해 보이는 바보스런 이들이 더욱 더 아름다운 세상 여행을 했다는 것을 더욱 깊이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고, 죽음이 패배가 아니라 삶의 승리일지 모른다는 안도감을 주어 고맙다고, 아름다운 여행을 하라고 말할 수 있었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 강가강은 히말라야부터 인도의 대륙으로 장대하게 뻗어있습니다. 히말라야에서부터 대륙까지 여러 곳에서 만날 때마다 찍어두었던 강가강의 사진을 보면서 죽음에 대해 명상해보지요.   배경음악은 <Time to say goodbye> 입니다.  노래는 천상의 목소리를 지닌 사라 브라이트만과 이탈리아 맹인 성악가 안드레이 보첼리가 함께 불렀습니다.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죽음에 어둠이 아니라 빛이 스미는 것을 느낍니다.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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