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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순례기

죽음은 삶 옆, 그냥 자연스런 일상

등록 2008-01-23 16:47

                                                     화장터를 바라보는수도자들   [여성 수도자] 강가 강의 화장터 1   내세로 가는 길 닦는 수도자조차 눈물 훔치는데

불한당이자 폭력이었던 그것이 물처럼 바람처럼   강가 강이 겉옷 같은 안개를 벗어버리자 가장 먼저 나체처럼 우리 앞에 다가온 것은 죽음이었다. 한 남자의 주검이 들것에 실려 강변인 가트의 계단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주검은 살아 있는 동안 겪었을 고난도, 누렸을 영화도 한낱 거짓인 양 나무토막처럼 누워 있었다.   그 옆의 수많은 화장터에선 주검과 장작을 태우는 연기가 비행접시처럼 살아 남은 자의 머리 위를 배회했다. 빼빼 마른 개 한 마리가 화장터의 잿더미를 발로 뒤적이며 자기 몫으로 남겨진 죽은 자의 유물을 찾고 있었다. 개가 잿더미를 뒤적이자 재는 바람에 실려 영원한 귀의처인 강가 강에 자신을 던지고, 일부는 별똥별처럼 나룻배로 날아들어 순례단의 수도자들에게 귀의했다.

    강가 수많은 화장터, 무심한 유족 위로 주검 연기   수도자란 이승에서 내세로 가는 길을 닦는 이들이다. 만약 이승에서 저승으로 건너야 할 바다가 없다면 다리도 필요 없을지 모른다. 만약 죽음이 없다면 종교가 있을까. 고타마 싯다르타는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었고, 소년 시절 성 밖에 나갔다가 처음으로 사람들이 늙고 병들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죽음에 대해 고뇌했다. 그것이 출가와 구도의 계기가 되었다. 또 예수에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없었다면 그리스도교가 있었을까.   죽음을 넘어선 그런 성인들에게 우리가 귀의하는 것은 죽음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에서 구원 받으려는 인간의 몸부림일지 모른다.  
                                                        갠지스강 화장터 전경   두려운 영혼들을 위로해야 할 수도자들도 눈앞에서 허망하게 육체가 해체되는 풍경에 까닭 모를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네 명의 장정이 주검을 실은 들것을 메고 오는 사이 유족은 무심하게 주검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쟁터에서 머리채 잡힌 채 적군들에게 끌려가는 딸의 모습을 지켜 보면서도 아무것도 해 줄 수 없는 무력한 포로처럼, 산 자는 누구도 죽은 자를 대신해줄 수도, 가는 길을 막을 수도 없었다.   화장터가 있는 가트와 불과 1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물가에서 힌두교 수행자인 사두로 보이는 한 남자가 요가 자세로 앉아 강가 강을 향해 손을 모으고 있었다. 흰 머리는 강가 강에 닿을 듯 길었다. 얼굴은 맑았지만 나이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가 다시 강가 강의 물을 손 가득히 떠서는 길고 하얀 자신의 머리에 끼얹고 손을 모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그 인상 뒤로 또 한 조각 주검을 태운 연기가 아직도 육체를 떠나지 못한 영혼의 방황을 보여주듯 날개짓하며 다가왔다.   얼마 전 죽은, 깃털처럼 가벼웠던 목사 친구가 환영처럼   그 연기에 닿아 글썽거리는 시선 너머로 얼마 전 죽은 친구가 환영처럼 서 있었다. 어떤 말도 할 수 없는 막막한 지경을 경험하게 했던 친구 채희동이었다. 그는 충남 아산에 있는 작은교회의 목사였다. 신자가 스무 명이나 될까. 그야말로 손바닥만 한 교회였다. 말이 목사지, 신자를 늘리거나 교회를 키우는 데는 전혀 능력이 없는 친구였다. 나에게 그는 목사가 아닌 친구 희동이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그가 서울에 있을 때였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정글과 같은 도시에서 그는 결코 살아남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아마 그가 고향인 아산으로 간 것도 그런 자신을 너무도 잘 알았기 때문인지 모른다.   그는 목회에서도 그랬고 경제적으로도 무력한 존재였다. 자신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아닌 존재가 될까봐, 세상을 살다 간 흔적이라도 남겨야 한다며 뭇 사람들이 발버둥칠 때 그는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도 여유롭기만 했다.   성직자임에도 ‘권위’와는 영 거리가 멀었던 그는 새벽기도를 마치면 시를 읊고 동네 아이들과 들판에서 공을 찼다. 그래서 그는 내 친구였다. 만나면 고담준론을 나누는 것도 아니고, 그저 함께 조용히 걷거나 함께 나무를 바라보곤 했지만 우리는 그것이 좋았다.  
                                                             꽃에덮인주검들

그가 죽기 한두 달 전쯤이었을까. 나는 1년의 인도 순례를 끝나고 돌아온 뒤 맨 먼저 그를 찾았다. 우리는 그의 고향인 아산 송악에 있는 봉곡사의 아름다운 솔밭길을 거닐었다. 그의 아름다운 아내와 어린 아들, 딸과 함께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곳이 바로 그 길과 절일 만큼 그는 다른 종교나 사상에 대해 마음을 열기 위한 의도적인 노력 같은 게 원래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작고 깃털처럼 가벼웠기에 예배당처럼 편안하게 절에 앉아 놀 수 있었다.   어느 날 그런 그가 죽었다고 했다. 교통사고라고 했다. 봉고차를 끌고 자기 마을 뚝방길 신호등에서 대기하던 중, 운전사가 졸며 고속으로 달려오다 마을을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릴 뻔한 유조차에 치여 그 자리에서 숨졌다는 것이었다.   희동의 죽음은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었지만 내 마음 속 첫 반응은 어리석게도 거부였다. 그것이 죽은 자를 위한 나의 예의이기나 한 것인 양 나는 그의 죽음을 인정하지 못했다.   친구들과 가족들, 동료들의 잇따른 죽음을 경험하면서 죽음은 내게 늘 절망일 뿐이었다. 내가 열다섯 살 때 아버지의 돌연한 죽음을 맞이한 순간부터 죽음은 늘 내게 불한당일 뿐이었고, 세상에서 가장 악랄한 도적이고, 살인자일 뿐이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동의 한 마디 없이 앗아가는 단절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지 불과 몇 달 뒤 집에 큰 화재가 발생해 어머니가 한밤중에 큰 화상을 입었을 때 마을 아주머니들이 “저 귀한 자식들이 하루아침에 고아가 되는구나”라고 웅성거리던 말이 귀에 들어선 순간 죽음은 더욱 깊은 고정관념으로 뇌리에 박혔다. 내가 사랑하는 것을 나의 동의 한 마디 없이 내게서 앗아갈 수 있는 폭력으로.   죽은 자들은 죽었기에 말이 없었고, 내 주위에서 죽은 자 가운데 누구도 다시 오지 않았다. 나는 젖을 떼 듯 관계를 강압적으로 단절시켜버리는 죽음의 그 폭력성이 싫었다. 그런 내 생각과 달리, 죽은 자들은 저세상에서 죽음이 아닌 어떤 다른 삶을 누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지만 나는 죽음 이후를 믿을 수 없었다. 내가 너무도 익숙한 고향을 떠나와야 했듯 그들도 고향을 떠나 또 다른 삶의 세계로 갔을지, 아니면 이 세상 여행을 끝내고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을지 모를 일이지만, 사랑하는 이의 죽음 앞에서 나는 언제나 명절날 온 고모가 떠나는 게 싫다며 다리 뻗고 울던 응석받이로 돌아가버리곤 했다.

                                                      배위에서꽃파는소녀

  삶의 숱한 기억 새겨진 몸 남김없이 훌훌   그렇게 절망스런 죽음들이, 여전히 일어나선 안 될 그 무엇인 양 거부되는 것들이 이렇게 자연스런 일상처럼 강가 강에서 계속되고 있는 것이 꿈만 같았다. 주검을 멘 네 남자는 들것과 함께 주검을 강가 강에 풍덩 풍덩 두 번 빠뜨리며 이승에서 마지막 세례를 베풀었다. 그리고 주검을 화장대에 뉘었다. 그 옆엔 삶의 숱한 기억이 새겨진 몸을 남김없이 태워버릴 장작이 놓여 있었다. (강가 강의 화장터-죽음에 대한 얘기가 다음 2,3회 이어집니다)   조현 한겨레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이 기사의 자세한 내용은 <지금 용서하고 지금 사랑하라>(비채 펴냄)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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