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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심정 조현이만난사람

일단 멈추고, 궁리한 뒤 행동하라

등록 2021-04-13 18:24수정 2021-04-14 02:34

원불교 최고 어른 좌산 이광정 상사 인터뷰

‘코로나’로 많은 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미래가 잘 보이지 않는 젊은이들에게 코로나는 엎친 데 덮친 충격이다. 이 충격은 일시적 재앙으로 그치지 않을 수 있다. 코로나가 좀 더 근본적인 변화의 시발이 될 수 있다. 이 전환의 시기에 우리는 어떻게 살며, 어떻게 미래를 준비해야 할까. 선각자들의 혜안을 듣기 위해 휴심정이 플라톤아카데미와 공동으로 ‘인생 멘토에게 코로나 이후의 길을 묻다’ 시리즈를 진행한다. 4주 간격으로 10회에 걸쳐 연재하는 시리즈의 여덟번째 멘토는 원불교의 최고 어른인 좌산 이광정(85) 상사다.

원불교 좌산 이광정 상사. 조현 기자
원불교 좌산 이광정 상사. 조현 기자

원불교 최대 경축일인 대각개교절(28일)을 앞두고 전북 익산시 금마면 구룡길에 있는 상사원을 찾아가 좌산 상사를 만났다. 좌산 상사는 1916년 대각해 원불교를 개창한 교조 소태산 박중빈, 2대 정산 송규, 3대 대산 김대거에 이어 1994년 58살 나이에 종법사가 되어 원불교를 12년간 이끌었다. 그는 70살에 종법사에서 퇴임해 미륵산 아래 머물고 있다. 상사란 종법사를 지낸 어른을 높여 부르는 말이다.

좌산은 이 시대 마음공부의 스승이다. 그가 낸 <마음수업> <믿음수업>(휴 펴냄)은 마음의 원리를 알고 이를 삶과 사업에 구현하려는 이들의 길잡이가 되었다. 그의 선풍도골은 옛 도인을 연상케 한다. 그러나 세상을 초탈한 탈속파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산골에 살지만 교단의 일과 사회·정치·통일 문제까지 손바닥 들여다보듯 보고 있다. 그를 만나본 이들은 그의 구체적인 조언에 혀를 내두른다. 따라서 그는 진리가 관념에 그치지 않고 실제 삶과 사업에서 구현되게 하는 현실주의자다. 그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외할머니인 고 김혜성 종사와 그의 자녀인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 홍석현 중앙홀딩스 회장의 멘토로도 알려져 있다.

그는 2019년 12월 라오스로 의료봉사단을 이끌고 갔다가 쓰러져 급거 귀국했다. 그는 “풍랑이 그치는 피안으로 떠나겠다”고 했으나, 제자들과 교단이 나서서 후학들을 더 이끌어달라고 사정했다. 이에 심장박동장치를 다는 수술을 받았고, 이후 발견된 구강암으로 연이은 수술을 받으며 여러 차례 생사를 넘나들었다. 그런데도 수술 며칠 뒤부터 병원 복도를 하루 2만보씩 걷는 등 빠른 회복세를 보였다. 20대에 얻은 간경화로 간의 절반이 고사되고, 40대엔 당뇨병까지 얻어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고도 마음수련과 사상의학을 터득해 이를 극복한 그의 실천은 90살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유효했다.

1994년 58살 나이에 대산 김대거 상사(왼쪽)로부터 원불교 종법사직을 물려받은 좌산 이광정 상사. 조현 기자
1994년 58살 나이에 대산 김대거 상사(왼쪽)로부터 원불교 종법사직을 물려받은 좌산 이광정 상사. 조현 기자

80살 넘어서도 미륵산을 날다시피 오르내리던 예전의 몸은 아니었지만, 총력은 여전했다. 그는 “성인이 출현한 것은 자신을 신으로 떠받들라고 온 것이 아니라 중생을 고통에서 건지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진리란 모든 생명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을 얻는 합리적인 방법이지, 비합리적인 것을 맹신케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기도할 때도 가정의 화합을 위해서는 가족에게 공을 들이고, 직장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일에 공을 들여야지, 이를 내팽개치고 엉뚱한 데 가서 기도하는 건 인과의 법칙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회사와 나라를 운영하는 인사에서도 자기 패거리라는 친소에 따르면 망하는 길이고, 철저히 그 분야에서 가장 실력이 뛰어난 자를 쓰는 게 성공과 용인의 핵심”이라고 했다. 퇴임 뒤 남북화해와 통일을 위한 기도와 노력으로 여생을 보내는 그는 “어려운 일일수록 가장 쉬운 것부터, 가능한 것부터 풀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생사의 고비를 넘기면서 든 생각은?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 죽음이란 조금도 두려워할 대상이 아님을 더욱 철저히 깨달았다. 세상 이치가 그렇듯 생사도 철저히 인과에 따른다. 기억의식은 몸의 죽음과 동시에 사라지지만, 제8식인 잠재의식은 영성에 저장된다. 내 영성에 무엇을 저장했느냐, 즉 그 업과 수행력이 다음 생을 결정한다.”

―코로나19 시대의 건강법은?

“동양의학에서는 병이 생기는 원인을 외적 원인과 내적 원인으로 구분한다. 내적 원인인 기쁨, 성냄, 근심, 생각, 슬픔, 두려움, 놀람 등 7가지 감정을 무엇보다 잘 다스려야 한다. 평상심을 유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감정에 휘말리지 않고 이를 부려 쓰기 위해 수도를 하는 것이다. 병들었을 때 치유의 주인공도 마음이다. 마음의 뒷받침 없이 의술만으로 치료한다는 건 천만의 말씀이다. 의술이 효력을 발휘하려면 마음이 함께해야 한다.”

가운데가 원불교 진리의 상징인 일원상, 왼쪽이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오른쪽이 2대 종법사 정산 송규와 3대 종법사 대산 김대거 사진이다. 조현 기자
가운데가 원불교 진리의 상징인 일원상, 왼쪽이 교조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 오른쪽이 2대 종법사 정산 송규와 3대 종법사 대산 김대거 사진이다. 조현 기자

―크리스마스나 부처님 오신 날처럼 다른 종교는 성인의 탄생일을 기리는데, 왜 원불교는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께서 깨달음을 얻은 대각개교절을 최대 축일로 삼나?

“생일을 중요시한다면 자칫 교조에 대한 신비화로 흐르고 교조를 신으로 추앙하게 될 수 있다. 소태산 대종사께서는 자신을 신격화하지 못하게 했다. 당신 스스로가 진리인 일원상 옆으로 비켜섰다. 진리를 제치고 자신이 신앙의 대상이 될 순 없다고 했다. 원불교에서는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은 믿지 말고, 이치에 맞는 것만을 믿으라고 한다. 대종사께서 ‘진리적 신앙’을 강조한 것은, 과거의 이치에도 맞지 않고 비합리적인 잘못된 신앙을 뜯어고쳐 바른 신앙관으로 바꾸려는 원력이 사무쳐서다.”

―경제적 빈곤에서 해방되고도 심리적으로 더욱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왜 그런가?

“마음을 다스리지 못해서다. 마음 운전을 잘하는 이는 한량 없는 좋은 미래를 개척할 수 있지만, 잘못 쓰면 한량 없는 재앙으로 작용한다. 인류 역사와 공산주의, 자본주의, 철학, 죄와 복을 누가 만들었나? 모두 마음이 만든 것이다.”

―‘마음을 잡는 자가 천하를 잡는다’고 했는데, 왜 마음공부와 수도 전통이 굳건한 동양보다 서양이 근현대 들어 앞서 발전하는가?

“서양 역사는 전쟁의 역사다. 무기 발전이 고도로 앞서 세계를 제패했다. 중세 때는 종교에 짓눌린 암흑기였으나, 근세에 신의 노예로부터 해방되자는 인본주의 사상이 싹트면서 정신이 열려 발전했다. 동양은 도덕을 주장하기는 했으나, 관념주의나 형식에서 뒤졌다. 반상차별 같은 어이없는 관행으로 개인의 역량을 사장시켜버렸다. 우리나라도 몇십년 만에 10대 경제 대국으로 발돋움했듯이 불합리한 문화를 청산하고 국민들이 제 역량을 발휘하게 도우면 승승장구하게 될 것이다.”

―원불교에서는 유무념 공부를 강조하는데, 어떻게 하는 것인가?

“나쁜 마음은 정리하고, 좋은 마음은 살리고, 챙겨야 할 것은 때를 놓치지 않고 챙기는 게 유념하는 것이다. 챙겨야 할 것을 놓쳐버리면 무념한 것이다. 가령 가스를 틀어놓고 외출하거나, 운전대를 잡고도 무념하면 언제 목숨을 잃을지 모른다. 경계가 오면 우르르 덤비지 말고, 일단 멈춰 서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정확히 판단하고, 그다음 결과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유념을 습관화하는 게 중요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다. 일의 결과가 잘될 때까지 잘 챙겨야 유념을 잘한 것이다. 일이 잘못됐다면 유념을 챙기는 게 어딘가 부실했다는 증거다.”

상사원이 있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대숲을 산책하고 있는 좌산 이광정 상사. 조현 기자
상사원이 있는 전북 익산시 금마면 신용리 대숲을 산책하고 있는 좌산 이광정 상사. 조현 기자

―원불교에서는 마음도 진급되거나 강등된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진급되나?

“자기 마음 가운데는 결점인자와 장점인자 두가지가 있다. 결점인자는 독을 입히고, 장점인자는 은혜를 가져다준다. 제일 중요한 건 결점인자를 이 잡듯이 찾아 청산하고, 장점인자를 하나하나 만들어가는 것이다. 배우기를 좋아하고, 겸손하고, 남을 위해주고, 잘한 것은 도와주고, 정진하기를 좋아하면 진급된다.”

―왜 자비가 필요한가?

“자비가 무너지면 동물만도 못하게 된다. 어느 동물이 자기 종을 무자비하게 죽이나? 미얀마를 보라. 저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유엔이 있는 건데, 손을 놓고 있으니 안타깝다. 부처님은 세상을 ‘고’로, 기독교는 ‘죄’로 봤지만 대종사께서는 ‘은혜’로 봤다. 은혜 충만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다. 세상 어느 것 하나 내 것인 것도, 나인 것도 없다. 공기와 자연의 자비와 은혜 없이 우리는 한순간도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은혜를 알고 감사할 때 자신도 세상도 평화롭고 행복해진다.”

익산/글·사진 조현 종교전문기자 ch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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