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배구에 묘한 긴장감이 돈다. 올 시즌 첫선을 보일 아시아쿼터 때문이다. 한국배구연맹(KOVO)이 지난 4월 진행한 트라이아웃은 성공적이었다. 남녀 14개 구단이 모두 선수를 지명했다. 연봉이 10만달러(약 1억3000만원)로 고정돼 리그 평균 연봉(남자부 2억2900만원, 여자부 1억5200만원)보다 낮고, 실력은 기대 이상이라는 평가였다. 국제이적동의서(ITC) 발급 문제로 코보컵에는 출전하지 못했지만, 정규리그에서는 국내 선수들과 치열한 주전 경쟁을 펼칠 전망이다.
배구계에선 ‘메기 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아시아쿼터 선수들로 인해 주전 경쟁이 심화하면서 리그 경쟁력도 올라갈 수 있다는 논리다. 특히 아시아쿼터 선수들은 공격수에 집중됐던 기존 외국인 선수와 달리 세터, 미들블로커 등에서도 활약한다. 실제 여자부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은 1순위 지명권을 얻어 타이 국가대표 세터 폰푼 게드파드르를 뽑았다. 남자부 1순위 지명권을 쓴 삼성화재는 몽골 미들블로커 에디를 선택했다. 어떤 포지션도 안심할 수 없다.
가성비 좋은 선수 합류로 리그에 낀 거품을 뺄 수 있다는 기대도 있다. 프로배구 연봉은 꾸준히 올라 비교적 낮은 여자부 평균 연봉도 국내 최고 인기 스포츠 프로야구 평균 연봉(1억4648만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정작 현장에서는 “선수들이 기본기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국제대회에서도 이런 경쟁력은 여실히 드러났다. 남자대표팀은 아시아배구연맹(AVC) 챔피언십에서 결승 진출에 실패했고, 여자대표팀은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에서 2년 연속 전패(24패)를 기록했다.
우려도 있다. 외국인 선수 14명이 새로 합류하면서 밀려나게 될 국내 선수에 대한 걱정이다. 한국 선수가 뛸 자리가 줄어들면, 가뜩이나 부족한 유소년 저변이 더욱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하지만 지금껏 국내 선수 육성 명분으로 외국인 선수 정원(1명)에 제한을 두고 리그를 운영해온 한국이 받아든 성적표는 처참했다. 당장 실력 있는 선수가 없어 베테랑이 빠지면 리그 경기력을 유지할 수 없다. 문호 개방이 한국만의 일도 아니다. 프로배구 출범을 준비하는 일본은 외국인 선수 정원을 4명까지 늘릴 전망이다.
아이비케이(IBK)기업은행 세터 폰푼 게드파드르. 신화 연합뉴스
그간 많은 배구인이 한국 선수들에게 도전을 이야기했다. 김연경(흥국생명)은 우리나라 선수들이 국외 진출 필요성은 수차례 언급했고, 일본에서 온 오기노 마사지 오케이금융그룹 신임 감독도 같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선수들은 요지부동이었다. 큰 경쟁 없이 고연봉을 받는 환경을 포기할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도전 정신과 패기가 없다고 비난받을 일도 아니었다. 그런 정신력마저도 결국 인간이 속한 환경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다만 아시아쿼터는 변화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올 시즌 아시아쿼터가 성공을 거둔다면, 당장 외국인 정원을 늘리자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된다. ‘우물 안 개구리’란 말이 유래한 장자의 글에서 개구리는 넓은 바다에 관해 설명하는 거북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 기절하고 만다. 개구리는 우물을 떠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우물에 다른 생물이 찾아오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더 넓은 세계는 이미 우리 곁에 와있다.
이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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