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테리 투트베리제 코치가 17일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여자 피겨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마치고 나온 카밀라 발리예바에 윗옷을 입혀주고 있다. 베이징/타스 연합뉴스
눈물의 피겨 연기를 하고 나온 발리예바. 그를 맞이한 코치의 첫 말은 냉혹했다. “왜 그랬어, 설명해 봐!” 싸늘한 그말에 발리예바는 고개를 돌렸다.
혜성처럼 나타났다가 도핑으로 몰락한 카밀라 발리예바(16·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17일 밤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 프리스케이팅에서 여러 차례 넘어지면서 종합 4위(총점 224.09점)로 마감했다. 우승 후보로 꼽혔던 그의 실수에 관중석에서는 안타까운 탄식이 터져나왔다.
하지만 풀죽은 그가 연기를 마치고 나오자, 예테리 투트베리제 코치(48)는 위로를 건네기보다는 질책을 했다. 영국의 <가디언>은 “왜 그렇게 했느냐? 왜 싸움을 멈췄느냐?”며 투트베리제 코치가 러시아어로 다그쳤다고 전했다. 이 매체는 “투트베리제 코치의 성공은 부정할 수 없지만, 훈련 방법은 가혹하다. 별명이 크루엘라 드 빌(디즈니 만화 ‘101마리 강아지’의 악녀)인데, 악역보다는 위로의 포옹이 필요한 순간이었다”고 비꼬았다.
이날 발리예바의 연기는 보기에 안쓰러울 정도였다. 영국의 아이스댄싱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출신 제인 토빌은 <비비시>에서, “발리예바가 두번째 실수 뒤 더 바빠지는 듯했다. 빨리 넘겨 얼음판을 벗어나고 싶어하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러시아 여자 피겨의 대모로 불리는 타티아나 타라소바(75)는 외신에서 “발리예바는 죽임을 당했다. 죽고, 죽고 또 죽었다. 오늘 밤 우리가 본 것은 그것”이라고 했다.
투트베리제 코치는 최종 점수 발표가 나왔을 때 통곡하는 발리예바의 등을 토닥였지만, 16살 소녀의 미래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지난해 12월 제출한 도핑 샘플에서 협심증 치료제이자 흥분제 효과도 내는 금지 약물 트리메타지딘이 검출됐고, 앞으로 투트베리제 코치 등 러시아팀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가 이뤄질 예정이다.
대회 초반에 딴 단체전 금메달도 무효가 될 수 있다. 러시아올림픽위원회에서는 “올림픽 기간에 도핑이 일어나지 않았다”라며 단체전 금메달 수호 의지를 밝히고는 있다.
하지만 국가적 도핑에 대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징계로 이번 올림픽에서도 국기를 들 수 없었던 러시아올림픽위원회가 아이오시와 스포츠중재재판소를 상대로 금메달을 지켜낼 수 있을지 미지수다.
러시아의 알렌산드라 트루소바가 17일 열린 2022 베이징겨울올림픽 여자 피겨 프리스케이팅 연기 뒤 예테리 투트베리제 코치의 말을 듣고 있다. 베이징/로이터 연합뉴스
한편 이날 2위를 차지한 알렉산드라 트루소바(18·총점 251.73점)는 “모든 사람을 증오한다. 모든 것이 싫다. 다시는 얼음판에 오르지 않겠다”며 눈물의 분노를 터트렸다. 트루소바는 이날 4~5차례의 쿼드러플 점프를 소화하는 등 기술 측면에서는 금메달을 딴 팀 동료 안나 쉐르바코바(18·총점 255.95점)를 앞섰다. 하지만 쇼트프로그램 점수를 합산한 최종 결과에서 은메달에 그치자 복받친 감정을 엄격한 선생인 투트베리제 코치 앞에서 터트렸다. 발리예바를 포함해 1위 쉐르바코바, 2위 트루소바 모두 투트베리제 코치의 제자들이다.
17일 오후 중국 베이징 캐피털 실내경기장에서 열린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여자 싱글 프리스케이팅이 끝난 뒤 쇼트프로그램과 프리스케이팅 합계 점수에서 1, 2, 3위를 차지한 선수들이 링크 내에 설치된 시상대에 올라 마스코트 인형 빙둔둔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시상대 왼쪽부터 은메달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알렉산드라 트루소바, 금메달 러시아올림픽위원회(ROC) 안나 셰르바코바, 동메달 일본의 사카모토 가오리. 베이징/연합뉴스 연합뉴스
김창금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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