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상혁이 1일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육상 높이뛰기 결선에서 한국신기록을 세운 뒤 환호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육상하고 싶어요.”
아빠 손을 잡고 찾아와 당돌하게 “육상하겠다”던 소년이 15년 만에 올림픽 무대에서 한국 높이뛰기의 희망을 알렸다. 축구도, 농구도 아닌 육상을 고집한 소년. 하나에 ‘꽂히면’ 반드시 그것을 해내야만 직성이 풀리는 아이가 일군 집념의 결실이었다.
우상혁(25·국군체육부대)이 1일 도쿄올림픽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0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결선에서 2m35를 넘으며 전체 13명 가운데 4위로 마쳤다. 비록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1997년 이진택이 세운 한국 신기록(2m34)을 경신했다.
우상혁은 한국 육상 선수로는 25년 만의 올림픽 결선 무대에서 최고의 성적을 일궜다. 1996 올림픽 때 이진택(2m29·8위), 1984 로스앤젤레스 대회 남자 멀리뛰기 김종일(8위), 1988 서울올림픽 여자 높이뛰기 김희선(8위)의 순위를 넘어섰다.
높이뛰기는 육상 기초 종목임에도 접근이 까다로운 종목이다. 기본적으로 도약한 뒤 정면을 바라보지 않고 등을 돌려 뛰어야 하고, 공중에서는 활처럼 허리를 휘어야 하기에 엄청난 담력을 요구한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빠와 함께 육상하고 싶다고 찾아온 우상혁을 발굴해 키운 윤종형 지도자는 “상혁이는 5학년 때부터 공중에서 허리를 깊게 넣어 뛰었다. 워낙 근성이 있어 형들하고 싸워도 지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신체적 조건도 중요하다. 키가 크면서도 몸무게는 적게 나가야 한다. 1m88의 우상혁은 세계적인 선수들과 비교할 때 상대적으로 단신이다. 몸무게를 줄이기 위해 대회 한달전부터 하루 한끼를, 그것도 소량으로 먹어야 하는 ‘고통스런’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1m81의 키로 2004 아테네올림픽 우승자 스테판 홀름(스웨덴)을 좋아하는 우상혁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몸무게를 크게 낮췄다.
세분화된 기술도 필요하다. 직선으로 달리다 곡선 구간에서 변화를 주어야 하고, 도약할 때는 한발로 한다. 우상혁은 왼발이 마지막 구름발인데, 여기엔 좌우 양발의 크기가 다른 요인도 있다. 교통사고를 당해 오른발(265㎜)보다 왼발(275㎜)이 큰 우상혁은 발 앞꿈치의 탄력을 더 많이 활용할 수 있는 왼발로 뛴다. 우상혁은 “발 크기가 달라 균형감 유지 훈련을 많이 했다. 짝발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윤종형 지도자는 “바를 넘은 뒤에도 바닥을 향하는 머리를 앞으로 숙여야 발이 바에 닿지 않으면서 안전하게 떨어진다. 미세하게 기술적인 요소가 경기력을 좌우한다”고 말했다.
도쿄올림픽 남자 높이뛰기 우상혁이 1일 도쿄 올림픽스타디움에서 열린 결선에서 1차시기를 성공하고 있다. 도쿄/연합뉴스
무엇보다 우상혁은 고통을 즐기는 마인드가 있다. 2016 리우 대회 예선탈락에 이어 두번째 올림픽에서 본선에 오른 우상혁은 이날 1차(2m19), 2차(2m24), 3차(2m27), 4차(2m30) 시기에서 모두 한번만에 바를 넘었다. 그때마다 밝은 표정으로 양 손을 흔들며 관중석의 응원을 유도했다. 5차(2m33) 시기에서 두번째 시도만에 바를 넘긴 우상혁은 6차(2m35) 시기에 한국 신기록을 작성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우상혁은 7차(2m37) 1차 시기에 실패하자, 7차를 건너 뛰어 8차(2m39) 시기로 도전 차수를 옮겨 두 차례 시도했으나 실패하면서 2m35의 기록으로 4위를 차지했다. 그래도 밝은 표정으로 팬들에 인사를 전했다.
이날 우승은 2m37을 뛴 바르심 에사(카타르)와 지안마르코 탐베리(이탈리아)가 공동으로 차지했고, 동메달은 막심 네다세카우(벨라루시)에 돌아갔다.
우상혁은 “한국기록 경신과 올림픽 메달이 목표”라고 했는데, 이날 입상권에서 살짝 밀렸다.
김창금 선임기자
kimck@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