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인천아시아경기대회 당시 조양호(가운데) 대한탁구협회 회장이 남자단체전 은메달을 딴 국가대표 선수들과 시상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대한탁구협회 제공
아무리 돈이 많은 재벌회장이라도 특정 경기단체에 연간 10억원씩, 한번도 거르지 않고 10년 넘게 지원하기란 쉽지 않다. 요즘 일부 경기단체들을 보면, 선거 때는 수억원을 내겠다고 공언했다가 이를 지키지 않아 경기인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는 회장도 더러 있다.
11년 남짓 110억원을 지원하면서 대한탁구협회를 이끌어왔던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급작스러운 별세로 탁구계가 큰 슬픔에 잠겼다. ‘탁구 사랑과 열정이 남달랐다’는 평가를 받는 조 회장의 공백도 공백이려니와, 누가 그의 뒤를 이어 탁구계를 이끌어갈 지 불투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탁구협회는 10일 오전 서울 방이동 올림픽파크텔에서 긴급 이사회를 열고 조양호 회장 공백에 따른 대책을 논의하는 한편, 그동안 탁구발전에 헌신한 조 회장에 대한 애도문을 내놓았다. 탁구협회는 “회장님께서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앞두고, 수장없이 표류하던 대한탁구협회 회장직을 흔쾌히 받아들이신 후 물심양면으로 대한민국 탁구 발전에 헌신해오셨다”며 “회장님의 탁구에 대한 열정과 애정은 우리 탁구인들의 가슴 속에 영원히 기억될 것”이라고 애도했다.
탁구계는 조 회장이 협회 회장을 맡기 전 고질적인 파벌 싸움 등 분열상을 보여왔다. 그러나 조 회장 등장 이후 내분은 가라앉았다. 조 회장은 사상 처음으로 세계탁구선수권대회(단체전·2020년 부산 개최)까지 국내에 유치하면서 탁구인의 단합을 강조해왔고,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남북단일팀 출전에도 기여했다.
그런 조 회장의 임기는 2020 도쿄올림픽 이후인 내년 12월까지였다. 협회 정관에 따르면 ‘잔여 임기가 1년 이상인 회장의 궐위 시 60일 이내에 새 회장을 선출해야 한다’고 돼 있다. 이와 관련한 일정은 조 회장의 장례가 치러진 뒤 구체화할 것으로 보인다.
“조 회장은 선수들의 국제대회 성적과 관계없이 탁구에 애정을 갖고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내년 세계대회와 도쿄올림픽까지 대한항공 쪽의 지원이 끊기지 않도록 탁구인들의 힘을 모아야 한다.” 한 탁구계 원로의 바람이다. 그것이 탁구인의 화합과 단결을 강조해온 조 회장의 ‘유지’를 받드는 길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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