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글로라 붕카르노(GBK) 스포츠 컴플렉스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전에서 골밑슛을 넣고 있는 라건아(사진 왼쪽)와 중거리 슛을 던지고 있는 NBA 선수 조던 클락슨.
골밑에 라건아가 버티고 있으니 NBA에서 뛰고 있는 필리핀 대표팀 가드 조던 클락슨이 신기의 기량을 선보여도 승리는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의 것이었다.
라건아는 27일 (이하 한국시간) 27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 글로라 붕카르노(GBK) 스포츠 컴플렉스 농구장에서 열린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남자농구 8강전에서 필리핀과 대결해 30득점 14리바운드 4어시스트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22개의 슛을 던져 13개를 성공시키면서 59%의 수준급 필드공 성공률을 기록했고, 공격 리바운드를 6개나 잡아냈으며, 블록슛과 가로채기도 각각 1개씩 기록했다. 라건아와 함께 폭발적인 운동량으로 7개의 결정적인 공격 리바운드를 잡아낸 포워드 이승현(11점 12리바운드 4어시스트), 4쿼터를 지배한 포인트 가드 김선형(17점 7리바운드 10어시스트) 등이 활약한 한국 남자농구 대표팀은 NBA 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에서 활약하고 있는 조던 클락슨(25점 8리바운드 3어시스트)에 의존한 필리핀 대표팀을 91-82로 꺾었다. 한국팀은 오는 30일 이란과 일본 승자와 4강에서 맞붙는다.
골밑 지배력이 승부를 가른 경기였다. 라건아와 이승현이 모두 26리바운드를 합작하면서 한국 대표팀은 모두 45개의 리바운드를 거둬 40개를 수확한 필리핀을 앞섰다. 특히 공격 리바운드를 18개(필리핀 15개) 기록해 초반 외곽슛 실패에 대한 부담을 덜면서 후반 외곽슛 폭발의 밑거름이 됐다.
라건아가 2쿼터 중반 반칙 3개로 ‘파울 트러블’에 걸리면서 한국 대표팀에 위기가 찾아오기도 했다. 필리핀은 클락슨의 패스를 받은 스탠리 프링글(14점)에게 연이어 득점을 기록했다. 결국 한국 대표팀은 2쿼터 득점 20-26으로 뒤졌고, 결국 전반을 42-44로 마쳤다.
수비에서 잠시 위축된 듯 하던 라건아는 그러나 3쿼터 중반부터 다시 특유의 골밑 장악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다른 빅맨들과 달리 유난히 빠른 스피드를 활용해 속공에 뛰어들면서 김선형의 패스를 받아 덩크를 하면서 기선을 제압했고, 김선형과의 투맨 플레이로 손쉬운 공격 찬스를 만들기도 했다. 필리핀은 라건아를 막기 위해 적극적인 더블팀 수비를 펼쳤지만, 라건아는 이들의 수비를 힘으로 누르고 양손을 다 쓰는 슛으로 꼬박꼬박 득점을 얻어냈다.
필리핀도 만만치 않았다. 1~2쿼터에서 패스에 집중하던 조던 클락슨이 3쿼터에 들어서면서 NBA 선수답게 연이어 고난도 슛과 3점슛을 잇따라 터뜨렸다. 클락슨은 한국 수비 2명을 달고도 편하게 장거리 3점슛을 던지거나 여러 명을 돌파해 손쉬운 골밑 레이업을 넣었다. 넘어지면서 골대를 보지도 않고 던진 슛이 들어가는 묘기도 선보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4쿼터 들어 한국 대표팀은 김선형의 돌파와 패스가 살아나고, 이승현이 예의 허슬 플레이를 펼치면서 공격 리바운드를 걷어내 라건아의 골밑 지배력을 더 돋보이게 만들었다. 그러자 클락슨도 4쿼터 중반 이후에는 별다른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한편, 라건아는 올초 한국으로 귀화가 확정되면서 리카르도 라틀리프라는 본명 외에 라건아라는 한국 이름을 가진 대표팀 선수가 됐다. 1989년생으로 미국 미주리대 출신인 라건아는 2012년 울산 모비스에서 농구 선수로 데뷔해 KBL 외국인 선수상 2회(2015년, 2017년), KBL 베스트5 1회(2015년), KBL 수비 5걸상 2회(2015년, 2016년) 등을 받았다. 울산 모비스가 2012-13시즌부터 14-15시즌까지 3연패를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키 199㎝ 몸무게 110㎏로 센터로선 큰 체격이 아니지만, 파워와 스피드를 겸비했고, 골밑 득점력과 중거리 슛 능력을 동시에 갖췄다. 특히 지치지 않는 체력을 지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대표팀이 30일 4강에서 이란과 만난다면, 218㎝의 신장을 지닌 NBA 선수 출신 센터 하메드 하다디라는 큰 벽에 부딪히게 되기 때문에, 라건아가 하다디와 어떻게 대결할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재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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