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14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주경기장에서 열린 육상 남자 100m 결승에서 9초81로 우승을 차지한 뒤 세리머니를 하고 있다. 리우/연합뉴스
“내 몸 상태를 의심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내 몸 상태는 예전보다 좋다. 기대한 것만큼 빠르진 못했지만 이겨서 정말 기쁘다.”
우사인 볼트가 15일(한국시각) 2016 리우올림픽 남자 육상 100m 결승전에서 금메달을 확정하고 한 말이다. 볼트가 이런 말을 한 이유가 있다. 볼트는 세계 육상의 역사를 새로 썼지만, 그의 몸은 단거리 육상을 하기엔 결함이 많다.
일단 볼트는 세계적인 수준의 역대 단거리 육상선수 중에서 키(196㎝)가 가장 크다. 단거리 육상은 몸의 균형과 순간적인 반응 속도가 중요해 무게중심이 위에 있는 키 큰 선수들에게 불리하다. 볼트의 출발 반응속도가 느린 것은 키가 큰 영향 탓도 있다.
볼트의 체형도 단거리 육상에 부적합하다. 그는 날렵한 체형이 아닌 거구에 가깝다. 키가 크고 어깨도 넓어 그만큼 공기저항을 많이 받는다. 게다가 볼트는 척추가 휜 척추측만증을 앓고 있다. 척추가 휘어 어깨와 골반이 평행이 아니고, 힘껏 뛰면 골반이 심하게 흔들린다. 볼트에게 늘 부상이 따라다니는 이유다.
볼트는 한 해에 국제대회를 5번 정도만 출전하며 부상 위험을 최대한 피했고, 그렇게 확보한 시간에는 재활훈련에 매진했다. 올해 초에는 허벅지 부상에 시달리며 리우올림픽 출전도 불투명했다. 지난 7월 열린 자메이카 킹스턴 육상선수권대회에도 100m 결승전을 앞두고 허벅지 부상으로 불참했고, 자메이카육상연맹은 ‘의료적 예외' 조항을 적용해 추천 선수로 볼트를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발했다.
그러면 볼트는 어떻게 세계에서 가장 빠른 선수가 됐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가 가진 약점 때문이다. 그는 척추측만증을 극복하기 위해 핵심 근육의 밀도를 높였다. 볼트가 웨이트트레이닝에 열중하면서도 가벼운 역기를 드는 이유다. 또한 공기저항을 극복하기 위해 다리 힘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발에 가해지는 힘이 너무 커 부상도 따라다닌다. 2014년엔 아예 발 부상 재활에만 매진하며 국제대회에 불참하기도 했다.
볼트는 큰 키가 가진 단점을 큰 보폭으로 극복했다. 100m를 달릴 때 볼트의 평균 보폭은 244㎝다. 이는 경쟁자인 저스틴 개틀린(미국)보다 20㎝ 정도 길다. 이로 인해 볼트는 41걸음에 100m 결승선을 통과하지만, 개틀린에게는 44~45걸음이 필요하다. 볼트의 보폭이 큰 이유는 비단 큰 키 때문만은 아니다. 그가 가진 척추측만증으로 인해 골반이 과도하게 흔들리는데 이로 인해 보폭도 더 커진다. 하지만 흔들리는 골반에 붙어 있는 근육에는 무리한 하중이 가해지며 염증 등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 신체적 결함의 덕을 보기도 하지만, 부상 위험도 높은 딜레마적인 상황인 것이다.
볼트가 빠른 이유만큼 그가 8년간이나 단거리 육상에서 세계 최정상을 유지한 것도 놀랄 만한 일이다. 볼트 이전에는 이렇게 오랫동안 최정상을 유지한 경우가 없었다. 칼 루이스와 마이클 존슨조차 올림픽 2연패에 그쳤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도노번 베일리(캐나다), 리로이 버렐(미국) 등도 한때 세계기록과 올림픽 금메달을 모두 보유했지만, 전성기가 5년 넘게 지속되지 않았다. 그나마 개틀린이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전성기를 열었으나 아쉽게도 4년 뒤부턴 볼트의 시대가 시작됐다. 개틀린은 그 이후 금지약물 복용 등 우여곡절이 많은 선수 생활을 했다.
볼트는 처음 스타가 됐을 때 식이요법을 하지 않기로 유명한 선수였다. 100m 육상 결승전을 앞두고도 “오늘 아침 맥도널드의 치킨 너겟을 먹고 왔다”고 할 정도로 자기관리가 미숙해 보였다. 하지만 세계 최정상을 오래 유지한 비결은 거꾸로 아주 엄격한 식이요법 덕분이다. 그는 아침과 점심식사를 달걀 샌드위치와 파스타로 단출하게 먹는다. 저녁은 푸짐하게 먹는 편이지만, 주된 메뉴는 채소다. 브로콜리와 참마 등의 채소에 자메이카식 만두와 구운 닭고기를 곁들인다.
선수 생활 내내 신체적 약점과 싸우며 세계 최정상을 유지한 볼트는 15일 인터뷰에서 “3관왕을 달성하고 올림픽과 작별 인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윤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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