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찬이 13일 오전(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 결승에서 승기를 잡는 화살을 쏜 뒤 기뻐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아름다운 밤입니다.” 배우 장미희의 대종상 수상 소감이 아니다. 13일(한국시각)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구본찬(23)이 한국 언론과의 공식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의 수상 소감이 아름다운 밤이라니. 이 남자, 어쩐지 평범하지 않다.
경기도 예사롭지 않았다. 올림픽 첫 출전에 단체전(7일)과 개인전(13일)에서 모두 우승했다. 남자 양궁 사상 첫 올림픽 2관왕으로, 양궁 역사를 새로 썼다. 특히 양궁 마지막 경기였던 개인전의 수확은 달콤했다. 그가 금메달을 따면서 한국은 남녀 단체와 개인전까지, 올림픽 사상 첫 전 종목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완성했다. 구본찬은 리우로 가기 전 “런던올림픽에서 선배들이 아쉽게 놓친 단체전 금메달을 꼭 되찾아 오고 싶었다”고 한다.
간절한 바람처럼 내용도 금메달감이었다. 매 경기 심장 쫄깃해지는 명경기를 선사했다. 특히 테일러 워스(호주)와의 8강전과 천적 브래디 엘리슨(미국)과의 4강전 모두 슛오프(연장전)까지 가는 접전 끝에 승리했다. 그는 “8강, 4강 하면서 죽는 줄 알았다. 욕심 탓에 실수도 많았다”고 자책하지만, 누리꾼들은 “매 순간을 명경기로 만든 선수”라며 박수를 보낸다. “대표팀 남자 선수 3명 중에서 제가 슛오프가 가장 약해요. 다른 선수들은 승률이 70~80%인데 전 40%”라면서, 결정적 순간에 어디서 그런 집중력이 발휘됐던 걸까. “스스로 후회 없이 쏴보자, 내가 가장 잘하는 자세를 믿고 쏘자 끊임없이 자신감을 불어넣었습니다.” 그는 “8강 때 실수해서 속으로 자책하고 있었는데, 감독님이 ‘괜찮아, 한 발 남았어. 자책하지 마’라고 얘기하셨다”며 “감독님을 믿고 최선을 다했다”고 공을 돌렸다.
구본찬(오른쪽)과 박채순 감독이 13일 오전(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남자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뒤 함께 큰절을 하고 있다.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결과는 실력이지만, 양궁은 운명이었을까. 초등학교 5학년 때 양궁부 감독이었던 담임선생님을 보고 호기심에 양궁부에 지원한 게 오늘의 시작이었다. “축구, 야구는 동네 친구들이 다 하는데 양궁은 생소해서 멋있어 보였다”고 한다. 그러나 양궁은 진지한 경기. 평소 유쾌·상쾌·통쾌한 그를 두고 “부모님마저 ‘네 성격에 절대 차분한 운동은 못 한다’며 1주일 만에 그만둘 것이라고 장담했다”는데, 지금도 시위를 당기고 있는 사실이 스스로도 신기한 듯했다. “주변에서 양궁을 할 때만 진지해진다고들 해요. 양궁 하면서 힘든 순간도 없었어요. 올림픽 준비도 훈련 때문에 정신없이 지냈을 뿐이지, 힘들지는 않았어요.”
그의 별명은 망나니. 큰 슬럼프도 없었다. 경북 경주에서 태어난 그는 안동대학 시절부터 기량이 남달랐고, 2014년 국가대표로 발탁된 뒤 세계 순위 2위까지 올랐다. 처음 출전한 메인 대회(큰 대회)인 2015 코펜하겐 세계선수권에서 2관왕에 올랐고,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단체전 3위를 했다. 긍정적인 성격이 운동을 즐기면서 하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놀라운 활약에 브라질 현지에서 그는 인기 스타로 발돋움했다. 양궁 선수들은 경기가 다 끝난 뒤 처음으로 해변을 걸었는데, 사람들이 사진을 찍자며 몰려들기도 했다. 센스 있고 남자다운 모습에 인기가 많지만 아쉽게도 ‘임자 있는 남자’다. 군인 여자친구가 있단다.
이런 분위기가 아직은 얼떨떨할 그는 대회 전 “평생 행복한 순간을 떠올릴 때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2015년 세계선수권”이라고 했다. 이제는 2016 리우올림픽이 되지 않을까. 아니면 도쿄? 문영철 양궁 총감독은 14일 코리아하우스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4년 뒤 도쿄올림픽에서는 메달이 하나 더 늘어날 수 있다”고 했다. 그보다 앞서 그는 또다른 축제를 계획하고 있다. “선수들끼리 양궁장이 아닌 곳에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며 뒤풀이하고 싶어요. 1차는 소주고, 2차는 노래방에 가고 싶다”며 종목까지 정해놓은 이 남자, 정말 예사롭지 않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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