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창림이 8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키리오카 경기장 2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남자유도 73㎏ 이하급 16강전에서 벨기에 디르크 판티헬트에게 기술을 허용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부담감이 컸던 것 같다.”(조준호 유도 해설위원)
“들떠 있었는데, 정신이 번쩍 났다.”(기보배 선수)
금메달 기대를 모았던 세계 1위 안창림(22·유도)과 김우진(24·양궁)이 9일(한국시각) 각각 16강전과 32강전에서 조기 탈락한 뒤 나온 반응은 심리에 모인다. 스포츠 무대의 우열은 체력과 기술 등 경기력에 의해 갈리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세계 스포츠 최고의 무대인 올림픽에서는 운과 심리라는 변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때가 있다. 경기력이 엇비슷할 경우엔 더 그렇다. 그래서 “올림픽 금메달은 하늘이 준다”는 속설이 한국 스포츠계에 널리 퍼져 있다.
남자유도 73㎏급 32강전에서 한판승을 거두고 올라온 안창림의 이날 16강전 상대는 벨기에의 디르크 판티헬트(18위)였다. 훈련량뿐 아니라 랭킹 차이도 있어 안창림의 우세가 점쳐졌다. 하지만 안창림은 2분여 만에 절반을 당한 뒤 끝내 뒤집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조준호 해설위원은 “안창림은 올림픽에 처음 나온 어린 선수다. 부담을 너무 크게 안고 경기에 나선 것 같다”고 분석했다. 비슷한 시각 양궁 개인전에 나선 김우진은 개인전 32강에서 인도네시아의 리아우 에가 아가타에게 세트 점수 2-6(29-27 27-28 24-27 27-28)으로 패했다. 예선에서 세계신기록(72발 700점)을 세울 정도로 10점 전문인 김우진은 3세트에 3발로 24점을 올렸을 뿐이다. 팀 동료로 여자 개인전 16강에 오른 기보배는 “(남녀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서 그런지 대표팀이 들뜬 분위기였다. 우진이의 탈락을 보면서 경각심을 느꼈다”고 했다.
김우진이 8일(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남자개인전 32강전에서 패한 뒤 고개를 떨구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김병준 인하대 교수(스포츠심리학)는 안창림의 사례를 ‘재정의의 가설’로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재정의의 가설이란 선수가 팬이나 언론의 지나친 기대를 받았을 때, 그 부담을 극복하지 못하는 순간 급격히 무너지는 현상을 뜻한다. 선수가 ‘챔피언 후보’, ‘금메달 유력’ 등의 수식어를 들으면서 자신을 재정의하게 되면 경기의 과정에 몰입하기보다는 스스로 ‘챔피언이 돼야 한다’는 중압감에 휩싸일 수 있다는 얘기다. ‘나는 챔피언’이라는 식으로 자기 확신을 반복하는 것이 경기력에 도움을 줄 때도 있다. 그러나 실전에서 상대가 만만치 않다고 느끼면 흔들리게 된다. 반대로 랭킹이 낮거나 무명인 선수는 손해 볼 것이 없이 경기에 몰입한다. 김병준 교수는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경우는 이기고 지는 결과에 신경쓰지 않고 다부지게 달라붙는 것이다. ‘꼭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이 짐이 될 때가 있다”고 했다.
대한유도회 관계자는 “안창림의 체중 조절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했다. 정상으로 가는 길에 방해가 될 선수인 천적 오노 쇼헤이(일본)와의 4강 대결만을 생각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둡다’는 말처럼 발밑의 선수를 보지 못하면 낭패를 당한다. 한국스포츠개발원의 박상혁 박사(스포츠심리학)는 “선수들의 자만감은 큰 꿈과 동의어다. 목표 의식을 강화하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다. 하지만 당장 해야 할 일에 집중하는 성찰이 수반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안창림은 특히 심리상담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심리훈련을 받는다고 모두 안정감을 찾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목표를 구체화하고, ‘왜 메달을 따려고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고, 경기 상황에 따라 이기는 것보다는 ‘지지 않겠다’는 식으로 마음을 정하는 등 상황을 관리할 경우 위험은 줄어든다. 거울을 보듯 자신을 객관화하고, 목표를 말로 구체화하는 훈련이 중요한 이유다. 김우진의 경우 심리적으로 흔들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는 개인전에 들어가기 전에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전력을 다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식의 표현에서 선수의 마음 상태가 들떠 있다는 단서를 잡는다. 박상혁 박사는 “준비된 선수는 경기 전이나 후나 똑같다”고 했다.
올림픽에 출전한 상위권 선수들의 능력은 큰 차이가 없다. 한순간 방심하면 4년간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올림픽 무대에서는 심리나 운 등 변수가 큰 작용를 한다. 김병준 교수는 “언론의 관심이 지나칠 경우에 선수한테 악영향을 주는 경우가 있다. 스마트폰이 발달한 시대에서 선수들은 뉴스를 즉각적으로 접한다. 선수는 주변의 기대감과 별개로 스스로 마음을 다스리고 자기 실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평정심을 유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창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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