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식(오른쪽)이 9일 오전(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탁구 남자단식 4라운드(16강전)에서 세계 1위 중국의 마룽한테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쉽지 않은 경기지만 네 이름 석 자를 국민들에게 확실히 알릴 수 있는 기회다.”
세계 탁구 남자 단식 최강자(세계 1위) 마룽(28·중국)과의 개인 단식 16강전을 2시간여 앞두고 정영식(24)이 연습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강문수 탁구 대표팀 총감독이 다가와 말했다. 안재형 남자 대표팀 감독은 “(정)영식이의 장점인 백핸드가 통한다면 또 모른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단체전 메달을 더 바라보고 있다”고 털어놨다.
정영식은 묵묵하게 연습장 한켠에서 이번 올림픽을 위해 새로 마련한 탁구화를 신고 몸을 풀었다. 그는 세간의 평가에 대해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탁구는 중국이 최강이니까 동메달만 따도 대단하다고 하는데 다시 말하지만 내 목표는 분명히 금메달”이라면서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한 테이블 건너에선 마룽도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런 마룽을 들여다보던 이철승 코치는 “정말 잘 친다”며 일탄식을 내뱉었다. 화려하고 민첩한 몸놀림과 강한 스매싱은 연습장에서조차 위압감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경기 전 정영식과 마룽은 서로의 훈련을 수시로 확인했다.
9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리우) 리우센트루 경기장은 귀가 찢어질 듯한 함성으로 가득 찼다. 16강전에 개최국 브라질 선수가 출전했기 때문인데 이에 더해 한국과 중국 응원단까지 응원 경쟁에 가세했다. 정영식은 “조용한 경기장보다는 나를 주목하면서 환호해주는 팬들이 많을 때 난 더 경기를 잘하는 스타일이라 문제없다”고 말했다.
그래서였을까. 정영식은 이미 판을 꿰고 있었다는 듯 마룽을 상대로 1, 2세트를 모두 따냈다. 이변이었다. 정영식은 마룽과의 과거 두 경기에서 모두 패했다. 경기 전 정영식은 “지난 한 달간 마룽의 경기 영상을 보고 또 보면서 마룽을 분석했다”고 말한 터. 정영식의 소속팀 사령탑이자 올림픽 개인 단식 동메달리스트인 김택수 감독은 “마룽이 이처럼 당황한 표정은 여태껏 본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마룽은 역시 세계 최강이었다. 정영식의 수를 읽고 내리 4세트를 가져갔다. 정영식에게도 기회는 있었다. 세트스코어 2-3으로 뒤진 6세트엔 9-4까지 앞섰지만 결국 11-13으로 역전패했다. 정영식은 경기 뒤 “마룽이 나를 읽었다는 생각에 당황해 내 플레이를 하지 못한 게 패인”이라고 했다. 김택수 감독은 “중국과의 경기에선 9점을 낸 뒤 10점으로 가는 그 1점이 정말 이상하리만치 잘 안 난다”고 했다.
세트스코어 4-2로 분패한 정영식은 수건에 얼굴을 파묻고 눈물을 흘렸다. 이철승 코치가 그를 위로했지만 쏟아지는 눈물을 막을 수는 없었다.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 선 정영식은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정말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는다. 좋은 선수가 되려면 이런 큰 시합을 이겨야 한다”고 했다. 이어 그는 “마룽을 꺾고 스타가 되고 싶었다. 그만큼 노력했다”고 했다.
정영식은 태릉선수촌에서 불을 가장 먼저 켜고 가장 마지막에 끄는 연습벌레로 유명하다. 이번이 올림픽 첫 출전이라 대중적인 인지도는 높지 않지만 이미 한국 남자 탁구계의 최강자로 이름이 높다. 올림픽이라는 큰 무대에서 투혼을 발휘해 세계 1위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는 점 하나만으로 그는 박수 받아 마땅했다. 마룽은 경기 뒤 정영식에 대해 “아직 어리고 잠재력이 많다. 상대하기 어려운 선수였다”고 평가했다.
정영식-이상수-주세혁이 힘을 합하는 단체전은 13일 시작된다. 본래 한국 탁구는 단체전에 더 주안점을 두고 훈련했다. 김택수 감독은 “4강 진출 땐 중국전이 예상된다. 오늘 영식이의 경기를 보니 자신감을 찾은 것 같다”며 “정영식은 집념과 의지가 강한 노력파”라고 말했다.
리우데자네이루/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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