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오른쪽) 노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이 8일 오후(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탁구 여자단식 4라운드에서 자국의 김송이가 대만 천쓰위를 상대로 공격을 성공시키자 박수를 치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연합뉴스
북한 여자탁구 김송이(22)와 대만 천쓰위의 2016 리우올림픽 개인단식 16강전이 열리기 30분 전인 8일(현지시각) 오후 3시30분.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이 경기가 열리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리우센트루 3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 부위원장은 경호원을 포함한 일행 10명을 대동하고 기자석 바로 밑 2층에 앉았다. 이곳은 기자들의 이동이 제한된 구역이다. 그의 주변엔 리우올림픽 보안을 담당하는 현지 군인과 경찰 5명도 추가로 배치됐다.
최 부위원장은 전날 북한의 가장 유력한 금메달 기대주였던 남자 역도 56㎏급 엄윤철(25)이 은메달에 그친 것 때문인지 경기 초반 다소 굳은 표정이었다. 경기 시작과 동시에 김송이가 실점 없이 6연속 득점에 성공해서야 얼굴이 밝아졌다. 양손을 얼굴까지 들어 박수를 쳤다. 북한 응원단 20여명도 경기장이 떠나가라 “송이! 송이! 송이!”를 외쳤다. 최 부위원장은 김송이가 실점해도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다. 다만 안타까운 듯 엷은 탄성을 내뱉으며 점수판을 바라봤다. 김송이가 접전 끝에 결국 세트스코어 4-2로 8강 진출을 확정짓자 그는 기립박수를 친 뒤 빠져나갔다.
최룡해 북한 노동당 부위원장(윗줄 왼쪽 셋째)이 8일(현지시각) 오후 2016 리우올림픽 북한 여자탁구 김송이의 개인단식 16강전이 열린 리우센트루 3관에 모습을 드러냈다.
최 부위원장이 이동하는 것을 보고 다가가서 “오늘 김송이의 8강 진출 어떻게 보셨냐”고 물었지만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길을 막아선 한 수행원은 “너 대체 어디서 온 거야?”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최 부위원장은 믹스트존(공동취재구역)에서 김진명 북한 탁구 감독을 격려했다. 최 부위원장이 돌아 나오는 걸 보고 “어제 엄윤철에겐 어떤 말을 해줬나”라고 물었으나 그는 무심히 얼굴을 돌리고 ‘올림픽 패밀리 하우스’로 향했다. 북한 응원단이 또다시 “대체 너 뭐 하는 놈이야?”라며 옷을 잡아챘다.
올림픽 패밀리 하우스 내부를 문틈 사이로 들여다봤다. 최 부위원장을 중심으로 북한 관계자 5명이 담소를 나눴다. 이어 땀에 머리가 젖은 김송이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갔다. 김송이에게 “평소에나 경기 전에 최 부위원장에게 어떤 말을 들었나” 하고 물었지만 이번에도 경호원들이 제지했다.
문틈 사이로 패밀리 하우스 내부를 살짝 엿보니 최 부위원장이 중앙에 위치한 의자에 혼자 앉아 있었고 김송이는 서서 이야기를 들었다. 최 부위원장은 웃고 있었지만 김송이는 뒷모습만 보여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다. 그렇게 30분을 대기했다. 간혹 북한 관계자들이 문을 열고 나왔고 표정은 어둡지 않았다. 최 부위원장은 끝내 나오지 않았다. 리우올림픽 관계자들에게 물으니 뒷문으로 나갔다고 했다.
최 부위원장은 전날 북한의 역도 영웅 엄윤철을 응원하기 위해 역도장을 찾았으나 엄윤철은 이날 세계신기록을 기록한 중국의 룽칭취안에게 밀려 은메달에 그쳤다. 그러자 최 부위원장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이날도 최 부위원장은 역도 스태프와 함께 취재진의 출입이 제한된 방에 들어가 20분여간 이야기를 나눴고 호통을 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4일(현지시각) 중국과 쿠바를 거쳐 리우에 도착한 최 부위원장의 공식 직함은 북한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겸 북한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 스포츠에 대한 관심이 각별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최 부위원장은 출국 전 “금메달 3개를 따 오겠다”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에게 보고했다가 김 위원장으로부터 “적어도 5개는 따 오라”는 주문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공교롭게도 김송이의 경기가 있었던 바로 옆 테이블에선 한국 전지희(24)와 싱가포르 위멍위(27) 간의 16강전이 벌어졌다. 전지희가 이겼다면 김송이와의 남북 대결이 펼쳐질 수도 있었다. 이날 한국 탁구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온 김종덕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1층에 자리해 최 부위원장과는 만나지 못했다.
리우데자네이루/글·사진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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