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양궁 김우진(왼쪽부터), 구본찬, 이승윤이 6일 오후(현지시각)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삼보드로무 경기장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양궁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 미국을 꺾고 금메달을 획득한 뒤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올라 금메달을 들어 보이고 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원숭이띠인데, 올해가 원숭이의 해라서 운 좋게 금메달을 땄다고 생각하느냐?”
7일(한국시각) 한국 남자양궁 대표팀이 금메달을 목에 건 시상식이 끝나고, 이어진 기자회견장에서 한 미국 기자가 김우진(24·청주시청)에게 물었다. 십이간지 동물띠로 나이를 셈하지 않는 서구권의 기자가 어찌 보면 가볍게 농담 삼아 던진 질문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우진은 정색했다. “절대 운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준비를 많이 했고, 노력을 많이 했기 때문에 오늘의 결과가 있는 것이다.”
김우진이 정색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천재 신궁으로 불리던 그는 지난 4년간 바닥까지 추락했다가, 다시 세계 최정상에 올라오는 우여곡절을 겪었다. 그 과정에서 그를 붙잡은 것은 오로지 ‘노력’이었다.
김우진은 충북 옥천의 이원초 3학년 때부터 활을 잡았다. 어릴 때부터 소질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각종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고, 2007년 전국소년체전에선 3관왕을 달성했다. 충북체고 3학년 시절에 선발된 국가대표에서도 처음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국가대표로 처음 출전한 2010 국제양궁월드컵에서 개인전 우승을 했고, 2010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세계기록을 세우며 개인전과 단체전 금메달을 모두 석권했다. 이듬해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김우진은 개인·단체 2관왕을 달성했다. 대회마다 보여주는 압도적인 실력으로 2012 런던올림픽에서의 선전도 기대할 만했다.
하지만 김우진은 런던올림픽 최종 선발전에서 4위에 머물며 아쉽게 국가대표에서 탈락했다. 승승장구하던 김우진은 큰 충격을 받았다. 리우로 출발하기 전에 징크스를 묻는 질문에 그는 “원래 숫자 4를 싫어한다. 시합 전에는 숫자 4와 관계된 것은 피한다”고 답했을 정도로 4년 전 런던올림픽은 그에게 아픈 과거였다.
문제는 런던올림픽 직후였다. 마음을 다잡기가 어려웠고, 걷잡을 수 없는 슬럼프에 빠졌다. 어려서부터 1등만 해오던 김우진에게 찾아온 첫 시련이었다. 김우진은 당시에 대해 “전국체전에서 60명 중 55등을 할 정도로 부진했다. 다시 국가대표가 될 수 없을 것 같았지만, 지금 더 강해진 모습으로 리우에 왔다”고 말했다. 김우진은 2015년 초부터 다시 국제대회를 연달아 석권하며 압도적인 세계순위 1위를 달리고 있다.
수만번 활을 당기느라 굳은살이 박인 김우진의 왼손. 김우진은 리우올림픽 남자 양궁 주장을 맡고 있다. 권승록 기자
김우진이 앞장선 남자양궁 대표팀은 미국과의 결승전에서 6-0, 완승을 거뒀다. 4년 전 런던올림픽의 패배도 되갚았다. 한국인 이기식 감독이 이끄는 미국 대표팀은 4년 전 3, 4위전에서 한국을 꺾고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특히 이번 대회에서 눈에 띄는 대목은 올림픽을 경험한 적이 없는 90년대생 또래들이 일을 냈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 이전까지 남자양궁 대표팀은 맏형-중간-막내가 각각 3~5살 정도 차이나는 선수들로 구성됐다. 이번 대표선발 결과를 보고서 일각에서는 “올림픽을 치르지 않은 젊은 선수들로만 구성돼 결과가 우려스럽다”는 시각도 있었지만, 오히려 김우진은 “나이가 비슷해 의사소통이 자유롭고, 서로 허물이 없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쌓이면서 응집력도 좋아졌다”고 긍정적으로 봤다. 결과는 2008년 베이징 대회 이후로 8년 만에 남자양궁 단체전 우승이었다.
대회 첫날 예선에서 72발 합계 700점으로 4년 전 임동현이 세운 세계기록(699)을 경신한 김우진은 8일 저녁 9시부터 시작되는 개인전(결승전은 13일 오전 5시)에서도 금메달에 도전한다. 경쟁자로는 미국의 에이스인 엘리슨도 있지만, 무엇보다 팀 동료인 구본찬(23·세계 2위)이 위협적이다. 구본찬은 단체전 결승에서도 화살 6발을 모두 10점 만점에 적중시켰다. 한국 남자 양궁에서 개인전 우승자는 2012년 런던올림픽 오진혁(35)이 유일하다. 개인·단체전을 모두 석권한 남자 선수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우승한 저스틴 휴이시(미국)뿐이다. 김우진·구본찬·이승윤 중 누구라도 개인전에 우승하면 한국 남자 양궁의 첫 역사가 된다.
윤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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