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올림픽 전면 출전금지 위기에 몰렸던 러시아가 육상과 역도를 제외한 거의 전 종목에서 기사회생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24일(현지시각) 스위스 로잔에서 긴급 집행위원회를 열어 러시아선수단의 리우올림픽 출전을 종목별 국제경기연맹이 결정하는 방안을 채택했다. 토마스 바흐 아이오시 위원장은 “세계반도핑기구(WADA) 독립위원회 보고서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CAS)의 결정, 올림픽 헌장 등을 참고해 각 경기연맹이 (출전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러시아선수단에 집단 책임이 있고, 시간적 제약으로 조사가 다 미치지 못한 점을 고려하면 무죄 추정 원칙을 적용받을 수 없지만, 모든 인간에게 부여되는 기본권을 고려할 때 항변 기회는 주어져야 한다”고 밝혔다.
이날 집행위원회는 세계반도핑기구와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가 러시아의 조직적인 도핑 위반을 제재한 직후에 러시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는 상황에서 긴급하게 열렸지만, 예상외로 관대한 처벌에 나왔다. 아이오시는 논란을 의식한 듯 누리집에 장문의 결정문을 발표했다. 이 결정문에는 “알렉산드르 주코프 러시아체육회 위원장이 국제기구가 러시아 선수들의 도핑 문제를 다각도로 검토하도록 적극적으로 협력했고, 러시아의 전면적인 개혁을 약속했다. 러시아 선수들은 각 경기연맹에 자신의 도핑 샘플을 제공하고, 중재재판소의 전문가의 검증을 거친 경우에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있다”고 적었다. 기자회견에서 “징계가 너무 약한 것이 아닌가”라는 질문을 받았지만, 바흐 위원장은 “결정문을 한번 읽어보라. 이번 결정의 취지는 러시아 선수들이 올림픽에 출전하려면 엄격한 자격 요건을 갖춰야 한다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아이오시의 결정으로 러시아의 리우행은 사실상 가능해졌다. 육상 외에 러시아의 출전금지 징계를 내린 종목연맹은 역도가 유일하다. 국제역도연맹(IWF)은 지난 6월에 러시아, 카자흐스탄, 벨라루스에 1년간 국제경기에 참가하지 못하도록 징계했다. 25일(한국시각)에도 유도, 테니스, 사이클, 태권도, 다이빙 등의 연맹에서 “러시아 선수들의 출전에 문제가 없다”는 발표가 뒤따랐다. 세계랭킹 상위권이 전부 러시아 선수들인 체조 종목 역시 지난 세계반도핑기구의 조사보고서에서 언급된 사례가 없어 출전이 예상된다.
하지만 이번 결정으로 아이오시는 리더십 타격이 불가피해졌다. 아이오시는 지난 6월에 국제육상연맹의 출전금지 결정에 반박하면서 “금지약물을 사용하지 않은 러시아 육상 선수는 국기를 달고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다”고 밝혔지만, 한 달 만에 자신의 결정을 뒤집은 셈이 됐다. 또한 아이오시는 한 번 도핑에 걸린 러시아 선수들이 자격정지 기간인 2년이 지났더라도 올림픽 출전을 금지했다. 이는 ‘도핑에 대해 이중처벌을 금지’한 국제스포츠중재재판소의 판례에 반한다. 이 판례에 근거해 올림픽 출전이 가능해진 박태환과는 달리 러시아 선수들은 불이익을 받는 셈이다.
특히 아이오시는 이번 도핑 파문의 도화선이 된 내부고발자인 율리야 스테파노바(러시아 중장거리 육상선수)의 올림픽 출전을 금지해 논란을 키웠다. 앞선 국제육상경기연맹이 스테파노바의 출전을 예외적으로 허용한 것과는 정반대의 결정이다. 세계반도핑기구의 올리비에 니글리 사무총장은 “스테파노바의 출전금지는 장래 내부고발자의 용기를 꺾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비탈리 뭇코 러시아 체육부 장관은 이날 아이오시의 결정을 “균형적이고 객관적”이라며 환영했다.
윤형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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