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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펑펑 울린 너, 뭘 믿고 이렇게 재밌니

등록 2016-07-25 17:59수정 2016-07-25 19:20

[통통스타] 여자농구 대표팀 막내 박지수

195㎝ 박지수 등장 자체가 하나의 사건
첫 성인무대설 땐 실력 발휘 못해
리우 최종예선서 일취월장
더블더블 맹활약했으나 결국 탈락
엉엉 울었지만 한국농구 가능성 봐
“초등학교 때처럼 농구가 재밌어요”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센터 박지수가 경기도 분당경영고 체육관에서 공을 들고 포즈를 잡고 있다. 성남/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한국 여자농구 대표팀 센터 박지수가 경기도 분당경영고 체육관에서 공을 들고 포즈를 잡고 있다. 성남/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프랑스 낭트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여자농구 최종예선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지 한 달. 대표팀 막내 센터 박지수(18·분당경영고)는 차분히 자신의 지난 1년을 복기하고 있었다. “박지수의 성장이 최종예선의 가장 큰 소득 중 하나”라는 위성우 여자농구 대표팀 감독의 평가부터 ‘지수야, 정말 감동적이었어. 역시 너가 최고야!’라고 적힌 손편지를 전해준 반 친구들에 이르기까지, 하나같이 칭찬 일색이었지만 박지수는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다. ‘대체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박지수가 성인대표팀에서 본격적으로 뛰기 시작한 건 2015년 중국 우한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대회부터였다. 정선민-정은순 이후 대형 빅맨의 부재에 허덕이고 있던 한국 여자농구에 195㎝ 장신 센터 박지수의 등장은 하나의 사건이었다. 박지수는 2년 전 청소년대표로 세계선수권대회에 나가 튄공잡기와 슛블록 부문에서 1위에 오르며 세계 무대에서 기량을 인정받은 상태였다. 하지만 실질적인 성인대표팀 데뷔 무대에서는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이후 1년간 박지수는 괴로웠다. “여태까지 농구를 해오면서 가장 힘든 시간이었어요. 어떻게 해도 농구가 되질 않았어요.”

그러나 지난달 13일부터 일주일간 진행된 올림픽 최종예선을 겪으며 박지수는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는 농구가 제일 재밌어요. 초등학교 2학년 때 처음 농구공을 잡고서 림을 향해 던졌을 때처럼요.” 지난달 20일 벨라루스전에서 패해 올림픽 본선 진출이 좌절되자 하염없이 눈물을 쏟아내던 박지수는 이제 없었다. 한 달 뒤 만난 박지수는 최선을 다해 실패해본 자만이 지어 보일 수 있는 행복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변화의 단초는 대표팀 합숙훈련이 시작된 지난 4월말 충북 진천선수촌에서부터 움트고 있었다. “이 정도면 되겠다 싶으면 감독님은 항상 그 이상을 주문하셨어요. 정말 빌고 싶을 정도로요.” 그래도 꾹 참았던 건 여자농구의 올림픽 진출은 어림도 없다는 시선들 때문이다. 여자농구 대표팀은 변연하, 이미선, 신정자 등 베테랑들의 은퇴와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심각한 전력 누수를 보였다.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려울 거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요.”

그러나 한국 여자농구는 결과물을 내놓지는 못했다. 기적 같은 드라마를 써내며 8강에 올랐지만 최종 순위 결정전에서 패하며 6위를 기록했다. 본선 티켓은 5위까지 주어졌다. 경기 뒤 박지수는 공식 인터뷰가 불가능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 “우리가 해냈다는 걸 결국 보여주지 못했으니까요.” 한국에선 ‘그래도 장하다! 한국 여자농구!’라는 응원이 쇄도했지만 박지수는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잘못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번 최종예선에서 한국이 치른 5경기 중 3경기에서 양 팀 최다 튄공잡기를 기록하며 맹활약했다.

박지수는 이번 최종예선을 농구 인생의 전환점으로 보고 있다. “성인대표팀 훈련은 차원이 달랐어요. 어느 정도로 훈련해야 세계에서 겨룰 수 있는지 느낄 수 있었죠. 그만큼 성장할 수 있었어요.” 이어 박지수는 덧붙였다. “농구가 뜻대로 되지 않아 1년간 많이 힘들었는데 이번 대회로 저도 한국 농구도 해낼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농구가 다시 좋아졌어요.” 박지수가 웃음을 되찾은 이유다.

박지수는 농구 센터 출신 아버지와 배구선수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운동선수로의 성장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운동하다 보면 학교를 잘 못 다녀요. 친구들이랑 학교 끝나고 떡볶이도 사 먹고 싶고 수련회도 가고 싶었는데 그런 기억은 거의 없어요.” 박지수가 아쉬운 듯 농구공을 손으로 쓸어넘겼다. 하지만 지금의 위치 역시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했다. “대신 저는 농구로 다른 친구들은 가지기 어려운 추억을 만든 거 아닐까요?(웃음)”

한국여자농구연맹(WKBL)은 10월 중순 신인드래프트를 열 예정이다. 이를 앞두고 박지수 영입전이 뜨겁다. 그를 영입하는 팀은 향후 10년간 리그 우승이 보장돼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기회가 된다면 더 큰 무대에서도 뛰어보고 싶어요.” 박지수는 지금 새 농구화를 찾고 있다. 그간 신어온 농구화가 단종됐기 때문이다. 박지수가 신게 될 새 농구화는 어떤 무늬를 그리게 될까. 그 무늬는 고스란히 한국 여자농구의 무늬가 되지 않을까.

성남/권승록 기자 roc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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