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한수가 18일 오전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레슬링 국가대표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영화 <300> 보셨죠? 300명의 전사들이 방패를 들고 3만 군대를 상대하잖아요. 뒤로 물러나면서도 칼로 찌르면서 버텨내잖아요.”
19일 서울 태릉선수촌 레슬링장.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66㎏급 류한수(28·삼성생명)가 첫 올림픽 출전을 앞두고 “요즘 꿈을 꾸는 것만 같다”며 한참 자신의 전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상대를 이기고 싶단 생각에 덤벼들어도 상대가 피해버리면 내가 오히려 쉽게 당할 수 있어요. 반면 방패를 든 것처럼 철저히 나를 방어하면서 조금씩 상대를 무너뜨리면 상대가 단번에 무너지진 않아도 난 안 죽을 수 있죠.” 류한수는 자신의 최대 장점인 ‘지구력’을 살리는 쪽을 택했다고 했다. 단기전보다 장기전이 류한수에겐 더 유리하다는 판단에서다. 안한봉 남자 레슬링 그레코로만형 대표팀 감독 역시 류한수의 가장 큰 장점으로 ‘지구력’을 꼽았다.
류한수가 올림픽까지 가는 길은 멀고도 험했다. 이 또한 지독한 ‘지구력’이 필요했다. 류한수는 올해로 국가대표 경력 10년차다. 태릉에서 훈련파트너로만 9년간 활동했다. 이번 리우올림픽이 2001년에 선수생활을 시작해 15년 만에 오르는 첫 올림픽 무대다. 2012년 런던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같은 소속팀 동료이자 그해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김현우(28·삼성생명)에게 밀려 눈물을 삼킨 기억이 생생하다.
류한수가 18일 오전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레슬링 국가대표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선전을 다짐하는 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중의 인지도는 낮지만 레슬링계에서 류한수는 이미 실력을 인정받은 최정상급 선수다.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할 경우 박장순, 심권호, 김현우에 이어 한국 레슬링 사상 4번째 그랜드슬램을 기록하게 된다. 전망도 밝다. 최근 4년간 류한수는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다. 2013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세계선수권에서 한국 선수로는 14년 만에 처음 금메달을 따냈고 2014년 아시안게임과 2015년 아시아선수권도 차례로 석권했다.
절정의 류한수가 외려 걱정됐는지 한국 레슬링계의 전설 심권호가 훈련장에 찾아와 후배에게 짓궂은 장난을 치며 조언을 건넨다. “연습에 너무 욕심내서 지금부터 힘을 다 쏟지 마라. 본 게임 시작 일주일 전부터 몸을 서서히 끌어올려서 경기 직전에 최고의 컨디션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대선배의 가르침에 꼿꼿한 자세로 “네. 꼭 메달 따오겠습니다”라고 응수하는 류한수다.
태릉선수촌에서 레슬링 종목은 가장 고된 훈련을 소화하는 것으로 악명이 높다. 그런 줄 알면서 왜 레슬링을 택했냐고 묻자 “그러게요. 내가 이걸 왜 시작한 걸까요?”라고 반문하며 장난기 섞인 웃음을 지어 보인 류한수는 “그래도 탈진할 때까지 연습하고 나면 금메달에 한 걸음 더 다가간 듯한 느낌이 든다. 그 기분이 너무 좋다”고 답했다.
한국 레슬링 대표팀은 생과 사의 경계를 넘나드는 ‘사점 훈련’을 실시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근지구력과 체력을 동시에 극대화시키기 위한 극한 처방이다. 이날 류한수는 무게 300㎏의 초대형 타이어를 뒤집고 40㎏ 역기를 40회 들어 올리더니 20㎏ 케틀벨을 각각 양손에 들고 하늘 높이 치켜 올렸다. 평소엔 커다란 통나무를 어깨에 짊어지고 들어 올리는 훈련도 병행한다.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체력이 고갈된 상태에서 스파링이 이어진다. “참아내야 합니다. 그래야 올림픽이란 큰 무대에서 연습한 대로 몸이 움직일 수 있어요.”
한국은 리우올림픽 레슬링에 총 5명이 출전한다. 류한수를 포함해 그레코로만형에선 75㎏급 김현우와 59㎏급 이정백(30·삼성생명), 자유형에선 86㎏급 김관욱(26·광주남구청)과 57㎏급 윤준식(25·삼성생명)이 메달을 노린다. 한국 레슬링은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을 시작으로 2012년 런던올림픽까지 금 11개, 은 11개, 동 13개를 획득했다. 2008년 베이징 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지 못했지만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 김현우가 금메달을 수확했다.
류한수는 4년 전 자신의 올림픽 출전을 좌절시켰던 친구 김현우와 함께 리우행에 오른 것이 큰 힘이 된다고 했다. “(김)현우랑 가면 느낌이 좋아요. 2013년, 2014년, 2015년 현우랑 같이 금메달을 따냈어요. 외국 나가면 방도 같이 쓰고요.” 한국 레슬링의 올림픽 성적은 결국 이 두 동갑내기의 활약 여부에 달렸다. “전사의 각오로 싸우고 오겠습니다.” 둘의 출사표가 믿음직스럽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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