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권도 국가대표 오혜리가 13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 태권도 미디어데이에서 발차기 연습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태권도 여자 국가대표 맏언니 67㎏급 오혜리(28·춘천시청)는 자신을 “천천히 오래 봐야 조금 친해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했지만 이 말은 절반의 진실만을 담고 있었다. 2016 리우올림픽 개막을 24일 앞두고 13일 서울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태권도 미디어데이에서 오혜리는 “이번 올림픽은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며 당찬 출사표를 던졌다.
이날 최대 관심사는 남자 태권도 국가대표 68㎏급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과 58㎏급 김태훈(22·동아대)이었다. 둘은 리우에서 금메달을 수확할 경우 올림픽,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대회, 아시아선수권대회 등 4대 메이저 대회를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을 달성하게 된다. 반면 오혜리는 이번이 올림픽 첫 출전이다. 아시안게임에도 나가본 적이 없다. 그럼에도 오혜리에게 한 번 다가온 취재진은 그를 쉽게 떠나지 못했다. 특유의 밝은 성격과 정확한 언변으로 사람을 사로잡는 힘이 있었다.
오혜리의 카카오톡 프로필엔 현재 ‘피그말리온 효과’라는 심리학 용어가 적혀 있다. 피그말리온 효과란 긍정적인 기대나 관심이 사람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한다. “물론 불운도 작용했겠지만 다 저의 불찰이 아니었을까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이 지금으로선 가장 중요합니다.” 뒤늦은 올림픽 첫 출전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참이었다.
오혜리는 2008 베이징올림픽 대표 최종선발전에선 황경선에게 밀렸고, 2012 런던올림픽 때는 대표 선발전 2주 전에 왼쪽 허벅지 근육이 파열돼 아예 경기에 나서지를 못했다. 중, 고, 대학교 때는 물론이고 실업팀에서도 모두 정상에 올라봤지만 정작 최고 무대인 올림픽 문턱 앞에선 번번이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는 “이젠 부상을 당하면 왜 다쳤는지를 연구한다”며 “첫 올림픽에 앞서 기분 좋은 긴장감을 유지하고 있다”고 했다.
13일 서울 노원구 태릉선수촌에서 열린 2016 리우올림픽대회 태권도국가대표팀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차동민(오른쪽부터), 이대훈, 김태훈, 오혜리, 김소희가 발차기하며 포즈를 취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올림픽 태권도 종목엔 8개의 금메달이 걸려 있다. 세계태권도연맹(WTF)은 리우올림픽부터 직전 해 12월 기준 올림픽 순위 6위권 선수에게 자동출전권을 부여한다. 이 때문에 오혜리, 이대훈, 김태훈을 비롯해 리우에 출전하는 남자 80㎏급 차동민, 여자 49㎏급 김소희 등 5명은 다른 종목에 비해 일찌감치 올림픽행을 결정짓고 올해 초부터 7개월간 태릉에서 훈련에만 몰두해왔다.
오혜리는 “초반 8주는 웨이트에 힘썼고 이후엔 스피드를 끌어올렸다”며 “이젠 시합이 얼마 남지 않아 최대한 몸을 가볍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는 “내가 가장 자신있는 앞발 공격에 중점을 두고 훈련하고 있다. 열 번이면 열 번 다 성공할 수 있도록 타점을 높이면서 상단 공격 적중률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오혜리를 전담 지도하고 있는 박계희 여자 태권도대표팀 코치는 “앞돌려차기에 이은 상단 공격, 상대를 붙여놓은 뒤 빠른 옆구리 공격은 다른 경쟁자들이 따라오기 어려운 기술”이라며 “오혜리에겐 기술보다 과욕을 부리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했다.
우리나라 국기인 태권도는 2000년 시드니 대회부터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이후 태권도는 한국 최고의 효자 종목 중 하나로 자리매김했다. 2012년 런던 대회까지 네 차례 올림픽에서 한국은 태권도에서 금 10, 은 2, 동 2개를 따냈다. 2008년 베이징에선 출전 선수 4명이 모두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때문에 견제도 심하다. 오혜리도 마찬가지다. 오혜리는 지난해 5월 러시아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금메달을 따내며 67㎏급 경계 대상 1호로 떠올랐다. “나는 이미 상대에게 전력이 다 노출됐다”는 오혜리는 “그럼에도 이번 기회로 ‘국내용 선수’라는 평가를 바꾸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오혜리는 2년 후인 2018 자카르타아시안게임을 자신의 마지막 국제대회로 보고 있다. 리우가 마지막 올림픽이란 얘기다. 올림픽에만 몰두해도 모자랄 시기지만 시종 범상치 않은 말솜씨에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올림픽 이후 진로는 무엇이냐고. 오혜리는 현재 한국체대에서 석사를 마친 상태다. “전 꿈이 많아요. 선수생활 하면서 느꼈던 부분을 후배들에게 전수해줄 수 있는 직업이나 스포츠심리로 박사학위를 받는 것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오혜리는 올림픽을 앞두고 아버지 기일에 맞춰 강릉에 자리한 산소를 다녀왔다고 했다. 자신이 태권도를 처음 시작한 초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병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가 늘 저를 지켜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올림픽에선 다 잊고 시합에만 집중할 생각입니다.” 오혜리는 세 자매 중 둘째이기도 하다. 자매간의 우애도 두텁다. “언니와 동생이 길몽을 꿀 때마다 다 너의 이야기다”라고 말해준다는 오혜리는 “가족이 제일 큰 힘이 되고 있다. 메달로 보답하고 싶다”며 웃어 보였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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