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리우올림픽에 사상 처음 출전하는 난민대표팀 유도선수 욜란데 마비카가 지난 5월27일(한국시각) 브라질 리우에 위치한 유도 훈련장에서 굵은 땀방울을 쏟아내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콩고 출신 마비카는 제2차 콩고내전이 발발한 1998년 10살의 나이로 가족과 생이별했다. 리우/AP 연합뉴스
욜란데 마비카(28)와 포폴레 미셍가(24)에게 조국은 생지옥과 같았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이어진 2차 콩고전쟁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많은 인명피해를 냈다. 집단학살과 강간, 고문과 질병 등으로 400만명이 넘게 사망하고 2500만명의 난민을 남겼다. 마비카와 미셍가도 전쟁이 발발한 1998년 가족과 생이별했다.
몸에 깊이 새겨진 전쟁의 상흔을 지워내려 이들은 유도를 시작했다.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끔찍했던 기억이 자꾸만 엄습해 견딜 수가 없었다. 죽기 살기로 운동했다. 그렇게 그들은 3년 전 콩고 유도 국가대표에 발탁돼 브라질 리우에서 열린 제29회 세계유도선수권대회에 참가했다. 기회였다. 국제 무대 데뷔 기회가 아니라 지옥에서 탈출할 기회. 대회 도중 이들은 당시 머물던 숙소에서 도망쳤다. 방향도 목적지도 없었다.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다. 신이 도왔을까. 리우 현지 자선단체와 극적으로 연이 닿았다. 이 단체의 도움으로 지금은 리우 북부에 정착해 제2의 유도 인생을 살고 있다.
이들에겐 올해 극적인 일이 한 번 더 펼쳐진다. 마비카와 미셍가는 ‘난민대표팀’ 소속으로 스포츠 최대 축제에 출전한다. 리우올림픽의 공식 슬로건은 ‘새로운 세상’을 뜻하는 ‘뉴 월드’(NewWorld).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슬로건에 맞게 고통을 겪는 난민들이 올림픽에 출전해 희망을 되찾을 수 있도록 ‘난민대표팀’을 구성했다. 그리고 지난달 3일 선수 10명을 최종 선발했고 마비카와 미셍가도 함께 뽑혔다.
올림픽 사상 최초로 난민대표팀으로 2016 리우올림픽에 출전하는 선수들. 이들은 내전을 피해 자유를 갈구하며 난민이 됐고 올림픽에서 미래의 희망을 위해 뛴다. UN난민기구 누리집 갈무리
난민대표팀은 콩고의 마비카, 미셍가를 포함해 시리아 2명, 에티오피아 1명, 남수단 5명으로 구성됐다. 종목별로는 육상 6명, 수영과 유도 각 2명이다. 난민대표팀의 운영 예산은 모두 국제올림픽위원회가 부담한다. 난민대표팀은 리우올림픽 개막식에서 개최국 브라질 앞에서 오륜기를 들고 입장할 예정이다. 토마스 바흐 국제올림픽위원회 위원장은 “난민대표팀은 전세계에 희망의 상징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마비카와 미셍가는 올림픽 출전이 가시화 단계에 이른 지난 4월26일(한국시각) <아에프페>(AFP)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가족을 먼저 언급했다. 마비카는 “난민대표가 돼 가장 기쁜 건 내 소식을 가족들에게 전달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라며 “브라질에 온 이후 가족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고 말했다. 미셍가 역시 “내가 경기하는 모습을 가족들이 본다면 꼭 연락해주길 바란다”며 “하루빨리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고 전했다.
난민대표팀 소속 콩고 출신 포폴레 미셍가가 지난 5월27일 브라질 리우에서 유도 연습에 열중하고 있다. 미셍가는 1998년 발발한 콩고내전으로 가족과 이별해야 했다. 이후 가족의 소식도 접하지 못했다. 미셍가를 포함해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이번 리우올림픽에 사상 처음 난민대표팀을 구성해 3종목에 10명의 선수를 출전시킨다. 리우데자네이루/AP 연합뉴스
생존을 넘어, 유도는 이들이 세상을 대하는 태도까지 변화시켰다. 꼭 올림픽 출전 때문만은 아니다. 이들의 유도 지도를 맡은 제라우두 베르나르지스 코치는 둘과 처음 만났을 당시를 이렇게 회상했다. “동료를 적으로 생각했다.” 콩고에선 유도 경기에서 지면 며칠간 독방에 갇혀 지내야 했다. 식사는 평상시의 절반만 나왔다. 매일이 생존을 건 혈투였다. “처음에 이들을 어떻게 훈련시켜야 할지 몰랐다”는 베르나르지스 코치는 “훈련은 전쟁이 아니란 걸 일깨워주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이제 둘은 동료들과 웃으며 유도를 즐긴다. 마비카는 말한다. “유도는 저에게 결코 돈을 주진 않았지만 강인한 심장을 선물해줬어요.”
시리아 출신의 수영선수 유스라 마르디니(18) 역시 마찬가지다. 10개월 전 이 소녀는 살기 위해 바다를 헤엄쳤다. 시리아 내전 때문이다. 그리스로 가려면 에게 해를 건너야 했다. 20여명이 간신히 고무보트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무게를 감당하지 못한 보트가 바다 한가운데서 침몰할 위기에 빠졌다. 마르디니와 그의 언니는 결단을 내렸다. 바다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3시간 반을 헤엄쳤고 기적같이 육지에 당도했다.
마르디니는 시리아의 수영장이 “폭탄을 맞아 천장이 뚫려 하늘이 보이는 상태였다”고 했다. 그래도 수영을 놓을 순 없었다. 그는 현재 독일의 지역 수영 클럽에서 올림픽을 준비 중이다. 마르디니는 “물 안에서는 난민, 시리아인, 독일인이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좋은 성적을 거두고 싶다”고 말했다.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종교나 인종적 차별을 넘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자는 목적 아래 1894년에 시작됐다. 122년이 흘렀지만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적어도 스포츠에서만큼은 차별을 지워내자는 출범 목표는 유효하다. 2016 리우올림픽에 난민대표팀이 출전하는 이유다.
권승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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