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결승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한국 축구대표팀이 경기가 끝난 후 라커룸에서 환호하고 있다. 한국축구협회 유튜브 갈무리
웃통 벗고 얼음물 끼얹고 막춤…이렇게 좋을 수가!
2일 인천아시안게임 남자 축구 결승전 연장 후반 종료 직전 터진 임창우의 결승골은 ‘축제’의 시작이었다. 선수들은 주심의 종료 휘슬과 함께 그라운드에서 한데 엉켜 환호를 질렀다.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라커룸에 뛰어들어가면서도 목이 터져라 소리를 질렀다. 시상식 복장으로 갈아입기 위해 라커룸에 들어가서도 서로 물을 끼얹으며 춤을 추고 얼싸안았다.
이들이 기뻐해야 할 이유는 충분했다. 금메달의 기쁨과 함께 20명의 대표팀 선수 전원은 병역특례 혜택을 받게 됐다. 와일드카드(23살 이상)로 뽑힌 박주호(27), 김신욱(26), 김승규(24)도 모두 군 미필자들이다. 온라인에선 ‘대표팀의 금메달이 확정된 2일 밤 가장 우울한 곳은 경찰청과 상무일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돌았다.
유럽파 박주호·김진수를 비롯해 국외 리그에서 뛰는 7명의 선수에겐 향후 소속팀과의 재계약 협상이나 이적을 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 사라졌다. 박주호는 내년 겨울 국내로 돌아와 경찰청에 입대할 예정이었다. K리그 소속 선수들 또한 2년의 시간을 번 덕분에 국외 진출과 이적 등을 추진하는 데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넓어졌다. 무엇보다 가장 큰 소득은 축구선수로서 황금기인 20대 초중반에 2년의 시간을 ‘덤으로’ 얻었다는 점이다. 이번 대회 3골을 넣는 등 맹활약한 덕분에 A대표팀에 처음 승선한 김승대(포항)의 나이는 23살에 불과하다. 향후 10년 가까이 공백 없이 축구에 전념하면서 대표팀 주축으로 활약할 수 있는 기회를 잡은 셈이다.
선수들은 결승전이 끝난 뒤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도 활기가 넘쳤다. 결승골의 주인공인 임창우는 “얼떨떨하고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실감이 안 난다”는 말을 반복했다. 그는 축구대표팀에서 유일한 K리그 챌린지(2부 리그) 소속(대전)이다. 2010년 울산 현대에 입단했지만 A대표팀 주전 측면 수비수 이용에 밀려 출장 기회를 잡지 못했고 올 시즌을 앞두고 대전으로 이적했다. “발등에 아무런 느낌이 없었다”고 골 장면을 설명한 그는 “A대표팀(승선)도 욕심을 내보고 싶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와일드카드로 뽑힌 ‘형님’들도 흥분을 감당하지 못했다. 박주호, 김신욱, 김승규는 지난 브라질월드컵에서 누구 못지않게 마음고생이 컸던 선수들이다. 박주호는 부상 탓에 한 경기에도 나가지 못했고 김승규, 김신욱은 주전 경쟁에서 밀려 준비된 기량을 보여주지 못한 아픔이 있다. 라커룸에서 김승규를 격하게 끌어안았던 박주호는 “마치 시간이 멈춘 것 같다. 아직 잘 모르겠고 멍한 상태지만 좋은 건 분명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조별예선부터 결승전까지 7경기 동안 한 골도 내주지 않은 골키퍼 김승규는 금메달을 만지작거리며 “같이 와일드카드로 뽑힌 신욱이 형과 주호 형에게 고맙다. 주호 형은 정말 그라운드에서 열심히 뛰었고 신욱이 형은 부상으로 쉬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많이 기도해주고 몸도 같이 풀었다. 브라질대회는 아픔의 월드컵이었지만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연장 후반 투입돼 결승골이 나오는 데 큰 기여를 한 김신욱은 “다리가 아팠지만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광종 대표팀 감독은 결승전이 끝난 뒤 기자회견에서 “김신욱의 상태가 썩 좋은 편은 아니다. 다행히 결승전에서 도움을 줬기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김신욱은 “감독님이 나를 아낀 이유는 내가 경기를 못 뛸 정도로 아팠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웃었다.
인천/박현철 기자, 연합뉴스 fkcool@hani.co.kr
2일 열린 남자 축구 결승전에서 연장전 끝에 북한을 1-0으로 이겨 금메달을 딴 한국 대표팀이 시상식 뒤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인천/이정우 선임기자 wo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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