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속 2m. 육상에선 선수들의 기록이 공식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바람의 세기다. 24일 인천아시안게임 양궁 리커브 남녀 예선라운드가 열린 계양아시아드양궁장엔 초속 2m의 강풍이 불었다. 소멸된 태풍 ‘풍웡’의 간접 영향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국 선수들은 끄떡없었다. ‘오조준’ 실력이 뛰어난 그들에게 바람은 오히려 다른 선수들과의 변별력을 높여준 호재였다.
한국 남녀 대표팀은 단체전 예선에서 모두 1위를 차지하며 본선 16강에 올랐다. 남자 선수들은 개인전 예선 1~4위를 휩쓸었다. 2명이 출전하는 개인전 본선엔 대한양궁협회 선발 규정에 따라 예선 1위 이승윤(19·코오롱)과 2위 오진혁(33·현대제철)이 올라갔다. 3명이 출전하는 단체전 16강엔 3위 구본찬(21·안동대)이 두 선수와 함께 나간다. 여자부에선 예선 1위 정다소미(24·현대백화점)와 2위 장혜진(27·엘에이치)이 개인전 본선에 진출했고, 13위 주현정(32·현대모비스)은 두 선수와 단체전 16강에 함께 나간다.
전날 태풍 영향에 대한 우려가 있자 장혜진은 “차라리 바람이 세게 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능한 모든 상황에 대해 적응훈련을 해온 선수들은 바람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과녁의 정가운데가 아닌 옆을 조준하고 쏘는 오조준 기술에 자신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장영술 대표팀 총감독은 “50m와 30m는 단거리 경기라서 상대적으로 바람의 영향을 덜 받을 것”이라고 했지만 이날 바람의 세기는 정조준이 가능한 정도를 넘어섰다. 경기 뒤 이은경 여자팀 코치는 “선수들이 바람을 많이 고려하며 활을 쐈다”고 말했다.
계양아시아드양궁장은 북쪽을 향해 활을 쏘는 구조로 지어졌다. 남쪽은 관중석으로 막혀 있고 나머지 세 면은 개방돼 있다. 이날의 북동풍은 사선에 선 선수들의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불었다. 경기 뒤 구본찬은 “바람이 은근히 무거웠다. 과녁의 10점이 아니라 약간 오른쪽의 8점이나 7점 부분을 향해 활을 쐈다”고 말했다. 바람이 매우 심할 땐 과녁의 5점 이하로 조준하기도 한다.
강풍이 불면 몸이 바람에 맞서려 힘을 주기 때문에 흔들림이 생긴다. 무게 중심을 하체에 두고 움직임을 최소화해야 한다. 구본찬은 “평소와 다르게 양 다리의 간격을 조정했다. 같은 바람이라도 선수마다 오조준하는 방식은 다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날 장혜진은 과녁의 8~9점을 조준했고, 키가 173㎝인 정다소미는 활시위를 당기는 힘이 세 오조준을 많이 하지 않았다.
펄럭거리는 옷은 활시위에 닿으면 미세한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피해야 한다. 이날 그리 덥지 않은 날씨에도 많은 선수들이 반팔 옷을 입었다. 긴팔 옷을 입더라도 팔에 쫙 달라붙는 옷이었다. 날씨가 추워 긴 옷을 입을 땐 소매를 핀으로 고정한다.
경기 중 바람의 방향은 수시로 달라졌다. 어느 순간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이 정반대로 바뀌었다. 1970~80년대 세계 양궁의 전설이었던 김진호(53) 한국체대 교수는 활시위를 당기면서 경기장에 설치된 풍향기가 흔들리는 모습을 파악했다. 계양아시아드양궁장은 풍향기가 경기장 양 끝에 있어 선수들이 보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과녁 위에 삼각형 모양의 노란 깃발이 꽂여 있어 조준과 동시에 풍향·풍속을 체크할 수 있다.
인천/이재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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