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희숙이 21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펜싱 여자 플뢰레 개인전 결승에서 우승한 뒤 태극기를 높이 들고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고양/김성광 기자 flysg2@hani.co.kr
플뢰레서 2인자 꼬리표 떼고 금
남자 사브르 구본길도 2연패
남자 사브르 구본길도 2연패
1-3으로 뒤지고 있을 때 전희숙(30·서울시청)이 갑자기 마스크를 벗었다. 그리고 헝클어진 머리를 다시 묶었다. 고개를 젖힌 목 뒤로 긴 머리가 출렁이자 관중석에서 환호가 터져 나왔다. 그의 행동엔 이유가 있었다. 남현희(33·성남시청)와의 대결 초반 생각했던 대로 경기가 안 풀리는 이유에 대해 곱씹어볼 여유가 필요했다. “언니의 페이스가 좋아 긴장했어요. 여기에서 침착하지 못하면 다시 2인자 소리를 들을까봐 마음가짐을 가다듬었죠.”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경기의 흐름이 바뀌었고 전세는 뒤집혔다.
전희숙은 21일 경기도 고양체육관에서 열린 펜싱 여자 플뢰레 개인전 준결승에서 강력한 우승 후보 남현희를 이긴 뒤 결승에서 중국의 리후이린마저 15-6으로 꺾으며 금메달을 차지했다. 전희숙에게 남현희는 동료이자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는 도하아시안게임과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남현희와 함께 단체전 금메달을 일궈냈다. 하지만 광저우대회 개인전 준결승에서 남현희에게 1점 차로 아쉽게 지며 동메달에 머무른 아픈 기억이 있다. “그 경기 때문에 정신이 번쩍 들었고 더 열심히 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는 남현희가 임신과 출산으로 공백기를 가지는 동안 실력을 꾸준히 유지하며 세계 랭킹 8위에 올랐다. 그리고 마침내 남현희를 넘어섰다.
전희숙은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라 최선을 다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대표팀에 뽑히지 못해 지병이 악화돼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고 자책해왔다. 이어 방송인 왕배(30)와의 열애 사실도 밝혔다.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면 공개하기로 했어요. 아직 사귄 지 별로 안 돼 예쁘게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동메달을 따낸 남현희는 “초반에 앞서나갈 때 방심했고, 5월에 다친 무릎 상태도 안 좋다”고 패인을 말했다.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선 구본길(25)이 결승에서 김정환(31·이상 국민체육진흥공단)을 15-13으로 꺾고 금메달을 따내며 아시안게임 2연패를 달성했다. 한국은 이틀 동안 펜싱 남녀 네 종목에서 금메달 4개를 휩쓸었고 은메달 3개와 동메달 1개를 따냈다.
고양/이재만 기자 appletr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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