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승부] 앤디 머리 vs 노박 조코비치
▶ 로저 페더러(32·스위스)의 쇠퇴가 뚜렷해진 남자프로테니스(ATP) 투어 남자단식은 바야흐로 ‘3강 체제’다. 올해 4대 그랜드슬램대회 중 호주오픈은 노박 조코비치(26·세르비아), 프랑스오픈은 라파엘 나달(27·스페인), 윔블던은 앤디 머리(26·영국)가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나달이 ‘클레이코트의 황제’인 점을 고려하면, 하드나 잔디코트 불문하고 강세를 보이며 ‘신 라이벌’로 최근 급부상한 조코비치와 머리의 대결이 향후 더욱 관심을 끌 전망이다. 오는 26일 시작되는 시즌 마지막 그랜드슬램대회인 유에스(US)오픈을 앞두고 둘의 대결사를 정리해봤다.
시계를 1년 전으로 돌려보자. 지난해 7월8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올잉글랜드클럽에서 열린 2012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전. 경기 뒤 시상식에서 한 사나이가 느닷없이 눈물을 펑펑 쏟아내 영국인은 물론, 전세계 테니스팬들의 눈시울을 덩달아 뜨겁게 했다. 주인공은 만 25살로 ‘영국의 희망’으로 불리던 앤디 머리(당시 세계랭킹 4위). 머리는, 31살로 쇠락해간다는 소리를 듣던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한테 1-3(6:4/5:7/3:6/4:6)으로 졌다. 1세트를 따냈을 때만 해도 그가 우승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노련한 황제의 플레이에 휘말려 허망하게 내리 3세트를 내주고 무너졌다. 분패한 머리는 시상식에서 “패했지만 그래도 우승이 가까워지고 있다. 다시 노력할 것이다. 정말 어렵다”고 말하며 흐느꼈다.
1936년 프레드 페리 이후 76년 만에 영국인 윔블던 남자단식 챔피언 탄생을 기대했던 영국인들로서는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 경기였다. 이날 케이트 미들턴 영국 왕세손비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 앨릭스 퍼거슨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감독, 축구스타 데이비드 베컴 부부가 센터코트 관중석에서 눈길을 끌었다.
이날 머리의 눈물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힘겹게 역전승을 거두고 2010 호주오픈 우승 이후 2년6개월 만에 다시 그랜드슬램대회(영국 윔블던, 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유에스오픈 등 네가지 대회를 일컫는 말)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게 된 페더러. 그는 경기 뒤 잔디코트 위에 드러누워 하염없는 눈물을 흘렸다. “이룰 수 없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이 한번에 이루어지니 믿을 수가 없다. 마법 같은 순간이다.” 그가 이날 이룬 윔블던 남자단식 7차례 우승은, 피트 샘프러스(미국)의 최다 우승 기록과 동률이었기에 감격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영국, 머리 덕분에 77년 만의 윔블던 우승
그리고 1년 뒤인 올해 7월7일 같은 장소. 머리는 이번에도 결승전 무대에 섰다. 영국은 캐머런 총리까지 다시 관중석에 등장하는 등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머리의 상대는 세르비아의 영웅 노박 조코비치. 세계랭킹 2위로 올라선 머리였지만, 동갑내기 세계 1위 조코비치는 너무나 버거운 상대였다. 승부는 예상과 달리 3-0(6:4/7:5/6:4) 머리의 완승으로 끝났다. 머리가 강력한 서비스와 스트로크로 잘 싸웠다. 조코비치가 앞선 4강전에서 후안 마르틴 델 포트로(세계 8위·아르헨티나)와 맞서 무려 4시간43분 동안의 혈투를 벌인 것이 독이 됐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스코틀랜드 출신이었지만 77년 만에 다시 윔블던 남자단식을 제패한 영국 선수가 됐다. 여자단식을 포함하면 1977년 버지니아 웨이드 이후 36년 만의 영국 선수 윔블던 단식 우승이었다. 캐머런 총리는 “머리가 기사작위(knighthood)를 받을 만하다”며 그의 업적을 치하하기도 했다. 윔블던 3회 우승을 포함해 7개의 그랜드슬램대회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남자테니스 전설’ 존 매켄로(54·미국)는 <비비시>(BBC)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2~4년 머리를 깨기는 정말 어려울 것이다. 올해 유에스오픈도 그가 우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내놨다.
폭격 피해 외국서 훈련했던
세르비아 출신 조코비치
그의 세계랭킹 1위 비결은
힘 낭비 않는 경기 스타일
4~5시간 혈투 승리의 원천 스코틀랜드 희대 총기사건
트라우마를 뛰어넘은 머리
강한 서비스와 스트로크에
뛰어난 순발력까지 갖춰
최근 멘털도 더 강력해져 머리의 2013 윔블던 우승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최근 5년 동안을 보면 ‘빅4’가 세계 남자테니스 무대를 쥐락펴락했다.(표 참조)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머리다. 지난해의 경우를 보자. 호주오픈은 조코비치, 프랑스오픈은 나달, 윔블던은 페더러, 유에스오픈은 머리가 우승했다. ‘4마리 용’의 위력을 보여준 한 해였다. 런던올림픽에서는 머리가 페더러에게 복수전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빅4 중 올해 들어 페더러의 추락은 걷잡을 수 없다. 페더러는 윔블던 2회전에서 무명인 세르게이 스타호프스키(우크라이나)에게 덜미를 잡혀 윔블던 최다 우승(8회) 도전에 실패했다. 그가 윔블던에서 조기 탈락한 것은 2002년 1회전에서 탈락한 이후 11년 만이며, 그랜드슬램대회에서 조기 탈락한 것도 2003년 프랑스오픈 1회전 탈락 이후 10년 만이다. 세계랭킹도 5위로 추락해 ‘테니스 황제’의 위용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달이 프랑스오픈 우승으로 건재를 과시했지만, 윔블던 1회전에서 스티브 다르시(벨기에)한테 져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나달은 왼쪽무릎 부상이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된다. 윔블던에서도 붕대를 감고 나왔을 정도. 페더러와 나달이 주춤하는 사이, 조코비치와 머리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당분간 양강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코비치와 머리는 정규투어에서 19번 만났다. 상대전적에선 머리가 8승11패로 열세다. 그랜드슬램대회 결승에서는 2승2패로 균형을 맞췄다. 둘의 그랜드슬램 첫 대결은 2011년 호주오픈 결승전이었고 조코비치가 먼저 웃었다. 그해 1월30일 멜버른파크에서 열린 남자단식 결승에서 조코비치는 머리를 3-0(6:4/6:2/6:3)으로 완파했다. 2008년 호주오픈에서 조윌프리드 총가(프랑스)를 누르고 그랜드슬램대회 첫 우승 감격을 누린 뒤 3년 만에 같은 무대에서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 조코비치는 이날 우승으로 페더러와 나달이 구축해온 ‘양강 구도’를 무참히 깨버렸다. 세계랭킹 3위의 반란이었고, 둘의 그늘에 가려 있던 조코비치가 마침내 세계 정상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조코비치는 그해 프랑스오픈은 나달한테 우승을 내줬지만, 윔블던과 유에스오픈까지 제패해 테니스 인생에서 최절정기를 맞았다. 조코비치와 머리는 2012 유에스오픈 결승에서 다시 만났고, 머리가 반격에 성공했다. 9월1일(현지시각)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머리가 ‘디펜딩 챔피언’ 조코비치를 3-2(7:6/7:5/3:6/2:6/6:2)로 꺾은 것이다. 무려 4시간54분 동안의 혈투였다. 앞서 윔블던 결승에서 페더러에게 패했던 머리로서는 그랜드슬램대회 생애 첫 우승이었다. 프레드 페리 이후 76년 만에 영국 선수로는 처음 그랜드슬램대회 정상에 오른 선수가 됐다. 이날 결승전은 역사에 남을 대혈전이었다. 1세트 4-2로 머리가 앞선 상황에서 54차례 랠리가 펼쳐졌고, 타이브레이크(12-10)까지 이어지는 혈전이었다. 1·2세트를 빼앗긴 조코비치는 빠른 움직임과 철벽같은 리턴으로 3·4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하지만 머리는 5세트 첫번째 조코비치의 서비스게임을 따내면서 분위기를 바꾼 뒤 대혈투의 승자가 됐다.
조코비치, 영양사의 결정적인 역할
“머리가 악마같이 끈질겼던 조코비치를 누르고 역사적인 승리를 따냈다”(), “마라톤 매치 끝에 머리와 영국의 긴 우승 가뭄이 해갈됐다”(<뉴욕 타임스>)는 현지 언론의 평가가 나왔다.
둘은 올해 1월27일 저녁 멜버른파크 로드레이버 아레나에서 열린 2013 호주오픈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다시 만났다. 결과는 조코비치의 3-1(6:7/7:6/6:3/6:2) 승리. 지난해 유에스오픈과 같은 대혈투는 없었고, 3시간40분 만에 경기가 끝났다. 호주오픈 통산 4번째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조코비치는 경기 후 두 손을 불끈 쥐었고, 코트 위의 야수처럼 한참 동안 포효했다. 남자 선수로는 호주오픈 사상 처음으로 단식 3연패의 ‘역사’를 만들어낸 그였다. 이때까지 거둔 통산 6차례 그랜드슬램대회 우승 중 4번이 호주오픈에서 이뤄졌다. 반면 머리는 호주오픈 준우승만 3번째로 이 대회와 악연임을 다시 한번 절감해야 했다.
1, 2세트는 연속해서 타이브레이크 접전을 벌일 정도로 둘은 팽팽히 맞섰다. 3세트부터 승부의 추가 조코비치한테 기울었다. 긴 랠리가 이어지면서 머리의 오른발에 물집이 잡혔고 머리는 결국 압박붕대를 하고 코트에 나섰다. 4세트에서는 왼쪽다리 근육 경련까지 일어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 이틀 전 4강전에서 페더러와 4시간 넘는 접전을 벌인 탓이었다.
올해 두번째 그랜드슬램대회인 프랑스오픈에서 둘은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4강까지 진출한 조코비치로서는 매우 아쉬운 대회였다. 우승했으면 ‘커리어 그랜드슬램’(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 유에스오픈을 석권하는 것)의 위업을 달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조코비치는 4강전에서 통산 8번째 프랑스오픈 우승을 노리는 나달한테 2-3(4:6/6:3/1:6/7:6<3>/7:9)으로 졌다. 호주오픈 4회, 윔블던과 유에스오픈에서 각각 1회 등 우승을 차지한 조코비치였지만, 클레이코트의 제왕 나달한테는 당할 수 없었다. 이어 열린 윔블던에서 조코비치와 머리는 다시 만났고, 조코비치는 앞서 언급했듯이 다시 머리에게 패하고 말았다.
조코비치와 머리는 어떻게 세계적 스타로 성장했을까?
조코비치가 테니스 라켓을 잡고 꿈을 키우던 어린 시절. 당시 유고슬라비아였던 그의 조국 세르비아는 발칸반도의 화약고였다. 12살이던 1999년. 나토(NATO: 북대서양조약기구)군의 폭격이 3개월이나 계속되자, 조코비치는 공포에 떨며 밖에 나가지도 못하고 물이 빠진 수영장에서 온종일 테니스 연습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머리와 조코비치는
정규투어에서 19번 만났다
전적에선 머리가 8승11패
그랜드슬램대회 결승에서는
2승2패로 균형을 맞췄다 우열 가리기 힘든
동갑내기 세계랭킹 1, 2위
오는 2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2013 유에스오픈
올해 마지막 그랜드슬램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전쟁과 포화 속의 나라에서 살았지만 조코비치는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때문에 테니스 스타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1987년 5월22일 베오그라드에서 축구 선수이자 스키 선수였던 아버지 스르잔과 역시 스키 선수였던 어머니 디야나 사이에서 3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삼촌 고란 역시 테니스 선수였다. 부모는 낮에는 스키 레슨, 밤에는 식당을 운영하며 번 돈을 모두 아들의 테니스 교육에 쏟아부었다. 4살, 8살 터울의 두 남동생 역시 형의 뒤를 이어 프로테니스 선수가 되기 위해 운동하고 있다. 4살 때 테니스를 시작한 조코비치는 6살 때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근처의 코트에서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테니스 ‘레전드’이자 유명한 여자 코치였던 옐레나 겐치치의 눈에 띈 게 테니스 인생에 중대 전환점을 맞는다. 1990년대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최강자로 군림했던 모니카 셀레시, 고란 이바니셰비치를 키워낸 그는 조코비치를 처음 본 순간 “모니카 셀레시 이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아이”라며 기뻐했다. 이후 6년 동안 조코비치를 지도하며 그의 타고난 재능에다 다양한 기술을 접목시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줬다. 그가 조코비치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지 않았다면 조코비치는 세르비아를 대표하는 테니스 스타로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코비치는 스승 옐레나 겐치치의 권유로 독일의 필리치 테니스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난다. 그 당시 얀코 팁사레비치, 아나 이바노비치, 옐레나 얀코비치 등 같은 또래의 세르비아 출신 선수들은 폭격을 피해 외국에서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런 어려움을 뚫고 이후 모두 세계적인 스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조코비치는 매우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경기 중 때론 흥분해 심판한테 거세게 항의하기도 하지만, 그런 성격이 잘 나타난다. 특히 동료 선수들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마리야 샤라포바(러시아) 등의 서비스 동작을 흉내 내어 팬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 글자(Djo)와 농담하는 사람(Joker)을 합해 ‘조커’(Djoker)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2011년 호주오픈 우승 전까지만 해도 조코비치는 가끔 페더러나 나달을 이기기도 했지만, 파워가 부족하고 체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었다. 둘의 그늘 아래 가려 3인자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정규투어(남자프로테니스 투어, ATP)에서도 2010년에는 불과 2회 우승에 그쳤다. 그러나 2011년 들어서는 확 달라지며 세계 정상급 반열에 올랐다. 프랑스오픈을 제외한 그랜드슬램대회 3회 우승을 포함해 무려 10회 우승이나 올린 것이다. 영양사 이고르 체토예비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영양사는 조코비치에게 피자나 파스타 등 가공한 탄수화물이 포함된 음식을 멀리하도록 권고했다. 알레르기 테스트 결과, 조코비치는 글루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알레르기 체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조코비치는 글루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 결과 만성피로·소화불량 등 그를 괴롭히던 잔병들이 사라졌고, 신체기능이 눈에 띌 만큼 좋아졌다는 것이다.
외가에서 물려받은 머리의 운동신경
조코비치 스스로도 정규투어 및 그랜드슬램대회에서의 잇단 우승의 일등공신으로 영양사를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부모의 영향에서 벗어난 것도 한 요인으로 꼽기도 한다. 아들의 투어 대회 때마다 동행했던 부모가 2011년부터는 동행하지 않았기에 조코비치가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 좋은 경기력을 보였다는 분석이다.
여자친구 옐레나 리스티치도 큰 힘이 되고 있다. 조코비치보다 한살 연상인 그는 타고난 미인이다. 어릴 때부터 테니스를 배웠고 엘리트 선수가 되기 위해 스포츠고교에 진학했지만 조코비치와는 달리 운동선수로서의 길은 포기하고 이탈리아의 대학에 진학했다. 조코비치와는 고교 시절 처음 만났고, 테니스를 함께 하며 급속도로 친해졌다고 전해진다. 조코비치의 중요한 투어 대회는 거의 동행하고 있다. 조코비치는 그를 가리켜 “내 인생 최고의 후원자이자 에너지의 원천이며, 항상 나를 평온하고 안정한 상태로 만들어준다”고 한다.
세르비아는 인구 700만명, 2012년도 1인당 국민소득은 우리의 절반에 채 못 미치는 1만달러에 불과한 소국임에도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들이 많다. 조코비치는 이에 대해 “우리를 여기까지 오게 한 것은 시스템이 아니다. 그냥 우리들 자신과 가족들 때문이다. 그게 다”라고 했다. 부모들의 헌신적인 지원과 선수들의 노력을 꼽았다.
조코비치가 세계랭킹 1위에 오른 비결은 경기 스타일로 보면 ‘힘을 들이지 않고 치는 스트로크’에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동작이 크고 어깨에 힘을 줘 스트로크를 하는 나달과는 대조적이다. 힘을 크게 소모하지 않는 경기 스타일 때문에 머리나 나달 등과 5세트까지 4~5시간의 대혈투를 벌이고도 그랜드슬램 우승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조코비치가 노래 잘 부르는 가수가 4~5분간 높낮이를 구사하면서 자연스럽게 노래를 소화하듯, 임팩트 때 힘을 주고 쓸데없는 힘 낭비를 하지 않는 경기 스타일을 보인다며 그게 그의 강점이라고도 한다. 그는 올해 머리와의 윔블던 결승에서 비록 졌지만 타고난 리턴 능력, 그리고 상대 허를 찌르는 드롭발리(볼을 네트 앞에 짧게 떨어뜨리는 플레이) 등 현란한 기술로 그가 왜 세계랭킹 1위인지 분명히 보여줬다. 강한 멘털이 무엇보다 강점이다.
1996년 3월13일, 스코틀랜드의 던블레인에 있는 한 초등학교에서 희대의 총기사건이 발생했다. 40대의 한 남자가 총을 들고 학교로 진입해 학생들과 교사를 사살한 사건이다. 당시 이 학교에 다니고 있던 만 9살의 머리는 탁자 밑에 숨어 위기를 모면했다. 머리는 이 사건 때문에 심한 트라우마를 겪다가 12년이 지난 뒤에야 자신의 자서전을 통해 이런 사실을 밝혔다.
머리는 스코틀랜드 던블레인에서 아버지 윌과 어머니 주디 사이에서 태어났다. 5살 때부터 테니스를 시작했다. 일찍 테니스를 시작하게 된 것은 프로테니스 선수였던 어머니의 영향 때문이었다. 11~15살 때까지 머리를 가르쳤던 리언 스미스는 이렇게 회고했다. “머리 같은 아이는 처음 봤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승부기질이 강했다.” 형 제이미의 영향이 컸다. 한 살 위의 형과 함께 테니스를 쳤던 머리는 형한테 지기를 무척이나 싫어했고, 늘 강한 승부욕을 불태웠다. 형한테 지면 더욱 열심히 공을 쳤다.
외할아버지가 스코틀랜드의 프로풋볼리그에서 선수로 활약했고, 어머니도 프로테니스 선수였던 것을 보면, 그의 운동신경은 외가 쪽에서 물려받은 것으로 보인다. 특히 15살 때, 고향의 프로축구 명문 구단인 글래스고 레인저스로부터 입단 제의를 받을 만큼 축구에도 소질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형 제이미는 2007년 윔블던 혼합복식 우승 타이틀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형택 “5.5 대 4.5로 머리가 이길 것”
영국 페더레이션컵 대표팀 코치이기도 한 어머니 주디는 머리가 2013 윔블던 남자단식 우승을 차지하자 “던블레인의 작은 클럽에서 윔블던 남자단식과 혼합복식 챔피언을 탄생시켰다”고 좋아했다. 주디는 과거 마르티나 힝기스(스위스)의 어머니처럼, 아들의 경기 때마다 선수초청석에 등장해 눈길을 끈다. 올해 윔블던에서도 결승전 때 주디의 모습이 자주 화면에 비치기도 했다. 기가 센 어머니로 영국에서는 알려져 있는데, 본인은 “난 엄격하지만 아들의 독립성을 해칠 정도로 심하지 않다”고 했다. 스코틀랜드 주니어대표팀 코치 등을 역임했던 어머니가 머리의 실력 향상에 도움이 됐음은 분명해 보인다. 머리가 1896년 해럴드 머호니 이후 스코틀랜드 출신 첫 윔블던 남자단식 챔피언이 된 것도 어머니 영향이 컸다고 볼 수 있다.
머리의 첫사랑이자 현재의 여자친구인 킴 시어스도 든든한 버팀목이다. 머리가 18살 때 만났는데 상당한 미인으로 머리와 함께 영국팬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경기장에 늘 나타나 머리를 응원한다.
머리는 과거 서비스&발리 스타일로 그랜드슬램을 평정한 피트 샘프러스나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함을 갖춘 페더러 등처럼 화려한 플레이를 펼치는 선수는 아니다. 그러나 서비스가 강하고, 베이스라이너(바깥쪽 코트라인 깊숙한 곳에서 스트로크를 주로 구사하며 좀처럼 네트에 접근하지 않는 플레이어)로서 스트로크와 리턴 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조코비치와의 올해 윔블던 결승에서는 이런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스트로크 싸움에서 밀린 조코비치가 드롭발리로 괴롭혔지만 네트까지 전력질주해 이를 받아내 점수로 연결했고, 조코비치의 강스매싱도 뛰어난 순발력으로 받아내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전에 벌어진 조코비치와의 그랜드슬램 결승에서는 처음에 잘 치다가 후반 급격한 체력 저하로 실수를 연발하며 자멸하는 모습도 보였지만 이번에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체력싸움에서 밀린 조코비치와 당당하게 스트로크 싸움을 벌이기보다는 드롭발리 등 변칙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여줬다.
물론 머리가 올해 윔블던 우승을 차지했다고 그의 시대가 왔다고 단언하는 것은 좀 성급한 판단이라 할 수 있다. 조코비치가 비록 패했지만 여전히 강한 멘털과 빈틈없는 리턴 능력, 강인한 체력 등으로 건재하기 때문이다. 올해 프랑스오픈을 제패한 나달도 있다.
이제 우열을 가리기 힘들어진 동갑내기 라이벌 조코비치와 머리. 둘은 올해 하나 남은 그랜드슬램대회를 벼르고 있다. 26일 미국 뉴욕 플러싱메도의 빌리 진 킹 내셔널테니스센터에서 시작되는 2013 유에스오픈이다. 하드코트인 만큼 이에 강한 머리와 조코비치가 우승을 다툴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랭킹 1, 2위여서 시드배정상 결승에서 만날 수 있다.
2000년과 2007년 유에스오픈 16강까지 올랐던 이형택 감독 겸 선수에게 전망을 물어봤다. 그는 2000년엔 피트 샘프러스한테 져 아쉽게 8강에 오르지 못했고, 2007년엔 32강전에서 앤디 머리를 누르고 16강에 오른 바 있다. “5.5 대 4.5로 머리가 앞선다고 본다. 머리는 그동안 멘털이 약한 게 단점이었는데 이반 렌들을 코치로 맞이하면서 강해졌다. 지난해 런던올림픽과 유에스오픈, 올해 윔블던에서 우승하면서 만년 2인자에서도 벗어났다. 기술적으로 조코비치한테 안 떨어지고, 서비스는 오히려 더 강하다. 결승에 오르기까지 얼마나 쉽게 혹은 어렵게 올랐느냐도 변수가 될 것이다. 일단 머리가 유리하지 않나 생각한다.”
하드코트인 호주오픈, 잔디코트인 윔블던에 이어 둘이 다시 하드코트인 유에스오픈 결승에서 만난다면 올해 그랜드슬램대회 대미를 장식하는 명승부가 예상된다.
김경무 선임기자 kkm100@hani.co.kr
세르비아 출신 조코비치
그의 세계랭킹 1위 비결은
힘 낭비 않는 경기 스타일
4~5시간 혈투 승리의 원천 스코틀랜드 희대 총기사건
트라우마를 뛰어넘은 머리
강한 서비스와 스트로크에
뛰어난 순발력까지 갖춰
최근 멘털도 더 강력해져 머리의 2013 윔블던 우승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 최근 5년 동안을 보면 ‘빅4’가 세계 남자테니스 무대를 쥐락펴락했다.(표 참조) 페더러, 나달, 조코비치, 머리다. 지난해의 경우를 보자. 호주오픈은 조코비치, 프랑스오픈은 나달, 윔블던은 페더러, 유에스오픈은 머리가 우승했다. ‘4마리 용’의 위력을 보여준 한 해였다. 런던올림픽에서는 머리가 페더러에게 복수전을 펼치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빅4 중 올해 들어 페더러의 추락은 걷잡을 수 없다. 페더러는 윔블던 2회전에서 무명인 세르게이 스타호프스키(우크라이나)에게 덜미를 잡혀 윔블던 최다 우승(8회) 도전에 실패했다. 그가 윔블던에서 조기 탈락한 것은 2002년 1회전에서 탈락한 이후 11년 만이며, 그랜드슬램대회에서 조기 탈락한 것도 2003년 프랑스오픈 1회전 탈락 이후 10년 만이다. 세계랭킹도 5위로 추락해 ‘테니스 황제’의 위용은 끝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달이 프랑스오픈 우승으로 건재를 과시했지만, 윔블던 1회전에서 스티브 다르시(벨기에)한테 져 탈락하는 수모를 당했다. 나달은 왼쪽무릎 부상이 치명적 약점으로 지적된다. 윔블던에서도 붕대를 감고 나왔을 정도. 페더러와 나달이 주춤하는 사이, 조코비치와 머리는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다. 당분간 양강체제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조코비치와 머리는 정규투어에서 19번 만났다. 상대전적에선 머리가 8승11패로 열세다. 그랜드슬램대회 결승에서는 2승2패로 균형을 맞췄다. 둘의 그랜드슬램 첫 대결은 2011년 호주오픈 결승전이었고 조코비치가 먼저 웃었다. 그해 1월30일 멜버른파크에서 열린 남자단식 결승에서 조코비치는 머리를 3-0(6:4/6:2/6:3)으로 완파했다. 2008년 호주오픈에서 조윌프리드 총가(프랑스)를 누르고 그랜드슬램대회 첫 우승 감격을 누린 뒤 3년 만에 같은 무대에서 다시 정상에 오른 것이다. 조코비치는 이날 우승으로 페더러와 나달이 구축해온 ‘양강 구도’를 무참히 깨버렸다. 세계랭킹 3위의 반란이었고, 둘의 그늘에 가려 있던 조코비치가 마침내 세계 정상으로 우뚝 서는 순간이었다. 조코비치는 그해 프랑스오픈은 나달한테 우승을 내줬지만, 윔블던과 유에스오픈까지 제패해 테니스 인생에서 최절정기를 맞았다. 조코비치와 머리는 2012 유에스오픈 결승에서 다시 만났고, 머리가 반격에 성공했다. 9월1일(현지시각)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머리가 ‘디펜딩 챔피언’ 조코비치를 3-2(7:6/7:5/3:6/2:6/6:2)로 꺾은 것이다. 무려 4시간54분 동안의 혈투였다. 앞서 윔블던 결승에서 페더러에게 패했던 머리로서는 그랜드슬램대회 생애 첫 우승이었다. 프레드 페리 이후 76년 만에 영국 선수로는 처음 그랜드슬램대회 정상에 오른 선수가 됐다. 이날 결승전은 역사에 남을 대혈전이었다. 1세트 4-2로 머리가 앞선 상황에서 54차례 랠리가 펼쳐졌고, 타이브레이크(12-10)까지 이어지는 혈전이었다. 1·2세트를 빼앗긴 조코비치는 빠른 움직임과 철벽같은 리턴으로 3·4세트를 따내며 승부를 원점으로 돌렸다. 하지만 머리는 5세트 첫번째 조코비치의 서비스게임을 따내면서 분위기를 바꾼 뒤 대혈투의 승자가 됐다.
노박 조코비치
정규투어에서 19번 만났다
전적에선 머리가 8승11패
그랜드슬램대회 결승에서는
2승2패로 균형을 맞췄다 우열 가리기 힘든
동갑내기 세계랭킹 1, 2위
오는 26일 미국 뉴욕에서
열리는 2013 유에스오픈
올해 마지막 그랜드슬램의
승자는 누가 될 것인가 전쟁과 포화 속의 나라에서 살았지만 조코비치는 부모의 헌신적인 뒷바라지 때문에 테니스 스타의 꿈을 키울 수 있었다. 1987년 5월22일 베오그라드에서 축구 선수이자 스키 선수였던 아버지 스르잔과 역시 스키 선수였던 어머니 디야나 사이에서 3형제 중 맏이로 태어났다. 삼촌 고란 역시 테니스 선수였다. 부모는 낮에는 스키 레슨, 밤에는 식당을 운영하며 번 돈을 모두 아들의 테니스 교육에 쏟아부었다. 4살, 8살 터울의 두 남동생 역시 형의 뒤를 이어 프로테니스 선수가 되기 위해 운동하고 있다. 4살 때 테니스를 시작한 조코비치는 6살 때 부모가 운영하는 식당 근처의 코트에서 당시 유고슬라비아의 테니스 ‘레전드’이자 유명한 여자 코치였던 옐레나 겐치치의 눈에 띈 게 테니스 인생에 중대 전환점을 맞는다. 1990년대 여자프로테니스(WTA) 투어 최강자로 군림했던 모니카 셀레시, 고란 이바니셰비치를 키워낸 그는 조코비치를 처음 본 순간 “모니카 셀레시 이후 최고의 재능을 가진 아이”라며 기뻐했다. 이후 6년 동안 조코비치를 지도하며 그의 타고난 재능에다 다양한 기술을 접목시켜 세계적 스타로 발돋움하기 위한 발판을 마련해줬다. 그가 조코비치의 남다른 재능을 알아보지 않았다면 조코비치는 세르비아를 대표하는 테니스 스타로 탄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조코비치는 스승 옐레나 겐치치의 권유로 독일의 필리치 테니스 아카데미로 유학을 떠난다. 그 당시 얀코 팁사레비치, 아나 이바노비치, 옐레나 얀코비치 등 같은 또래의 세르비아 출신 선수들은 폭격을 피해 외국에서 훈련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이런 어려움을 뚫고 이후 모두 세계적인 스타로 명성을 떨치게 된다. 조코비치는 매우 쾌활하고 낙천적인 성격의 소유자이다. 경기 중 때론 흥분해 심판한테 거세게 항의하기도 하지만, 그런 성격이 잘 나타난다. 특히 동료 선수들의 흉내를 내는 것으로도 아주 유명하다. 마리야 샤라포바(러시아) 등의 서비스 동작을 흉내 내어 팬들을 즐겁게 하기도 했다. 그래서 그의 이름 앞 글자(Djo)와 농담하는 사람(Joker)을 합해 ‘조커’(Djoker)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2011년 호주오픈 우승 전까지만 해도 조코비치는 가끔 페더러나 나달을 이기기도 했지만, 파워가 부족하고 체력이 떨어진다는 평을 들었다. 둘의 그늘 아래 가려 3인자 정도에 만족해야 했다. 정규투어(남자프로테니스 투어, ATP)에서도 2010년에는 불과 2회 우승에 그쳤다. 그러나 2011년 들어서는 확 달라지며 세계 정상급 반열에 올랐다. 프랑스오픈을 제외한 그랜드슬램대회 3회 우승을 포함해 무려 10회 우승이나 올린 것이다. 영양사 이고르 체토예비치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0년 영양사는 조코비치에게 피자나 파스타 등 가공한 탄수화물이 포함된 음식을 멀리하도록 권고했다. 알레르기 테스트 결과, 조코비치는 글루텐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알레르기 체질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부터 조코비치는 글루텐 다이어트를 시작했다. 그 결과 만성피로·소화불량 등 그를 괴롭히던 잔병들이 사라졌고, 신체기능이 눈에 띌 만큼 좋아졌다는 것이다.
앤디 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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