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2013시즌 프로농구 최우수감독상을 받은 문경은 에스케이(SK) 감독이 7일 서울 마포의 한 커피숍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문 감독은 선수 생활 막바지 5년 동안의 후보 경험이 선수들을 모두 아우르는 그의 이른바 ‘형님 리더십’의 거름이 됐다고 밝혔다.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한겨레가 만난 사람]
2012~2013 최우수감독상
프로농구 문경은 SK 감독
2012~2013 최우수감독상
프로농구 문경은 SK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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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심 상해도 지금 생각하면 소중한 재산 -그래도 톱스타 안 부러운 인기를 누렸잖아요. “운동은 힘들었지만, 농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고 재미있던 시기였어요. 2학년 때 갑자기 유명해지면서 3, 4학년 땐 인기가 최고점을 찍었어요. 브로마이드를 500원에 팔고 제 얼굴이 있는 책받침이 나오고. 서대문우체국에서 팬레터를 자루에 담아 트럭으로 갖다 줬어요. 2, 3학년 땐 제 것이 가장 많았는데, 4학년 되니 큰오빠 이미지가 되면서 상민과 지원에게 밀렸죠.(웃음)” -이상민, 우지원과 꽃미남 3인방으로 불렸는데, 은근 경쟁도 있었겠어요. “당시에는 농구가 하루가 멀다 하고 스포츠신문 1면에 났어요. 누가 1면에 더 많이 나오나 장난삼아 내기하고 그랬죠.” 1981년 서울 답십리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시작한 문경은은 연세대(90학번)를 거쳐 1997년 프로에 입단했다. 삼성, 신세기, 전자랜드, 에스케이에서 슈터로 명성을 날렸다. 2009~2010시즌을 끝으로 은퇴하기 전까지 프로 13시즌 통산 610경기에서 평균 15.3득점을 기록했다. 전매특허인 3점슛은 1669개로 역대 1위. “특출난 엉덩이 근육의 힘으로” 통산 40%면 특급으로 꼽히는 3점슛 성공률이 39.5%에 이른다. 영화배우 실베스터 스탤론을 닮아 ‘람보 슈터’로 불리며 신동파, 이충희, 김현준으로 연결되는 슈터의 계보를 이었다. -감독님 이후 슈터의 대가 끊겼어요.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오면서 토종 슈터의 입지가 좁아졌어요. 외국인 선수 두명이 20득점씩 하니까. 요즘은 똑똑한 가드 한명에 좋은 외국인 선수 두명 있으면 우승한다잖아요. 안 좋은 거죠. 화려한 농구는 나와도 국내 센터들이 포워드로 전향하면서, 국내 슈터가 사라지게 되죠. 선수들의 연습량이 부족한 것도 이유죠. 우리 땐 매일 1000개씩 던졌는데, 지금은 100~200개가 고작이니.” -감독으로 늘 선수 곁에 있다 보면 요즘 선수들의 부족한 부분도 보이겠어요. “근성이 약해요. 우리 때는 슛이 안 들어가면 수비라도 열심히 해서 만회하려고 했는데 요즘은 바로 좌절해요. 변기훈은 뭐가 잘 안되면 한없이 멘털이 붕괴돼요.(웃음) 김선형도 패스 실수하면 말은 아무렇지 않다면서 얼어 있어요. 이게 안되면 저걸로라도 만회하겠다는 각오를 다져야 하는데. 우리 때는 맞기 싫어서라도 안 그랬죠.(웃음)” -부러운 것도 있으시죠. “운동만 할 수 있는 환경은 부럽죠. 저 같은 감독을 만난 게 행운이죠.(웃음) 전 저와 한 약속만 지키면 다 들어줘요. 클럽 가서 술 사주세요 그러면 사주고, 여자친구들 불러서 같이 회식도 하고.” 인생을 계획대로 산다는 그는 “40살에 은퇴해 45살에 감독이 되는” ‘로드맵’보다 3년 빠른 우리 나이로 42살에 목표를 달성했다. 전력 분석 코치, 2군 감독을 거쳐 2011~2012시즌 감독 대행, 지난해 1990년대 학번 중에서 가장 먼저 프로 감독이 됐다. 경험이 적다는 우려는 성적으로 날려버렸다. 전임자의 실패를 밟지 않으려고 감독 첫해 체질 개선에 나섰다. 가능성 있는 신인들이 중심이 된 ‘젊은 에스케이 디엔에이’를 새로 심었다. 여러 감독 장점 적은 노트 ‘한가방’
패한 날 입은 양복은 바로 세탁소에 -감독 첫해에 승승장구하니 시샘하는 세력도 있어요. “알죠.(웃음) 그럴 수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운이 많이 따랐던 시즌이었고. 그러나 54경기 고생하며 정규리그 1위 한 게 챔프전 4연패로 씻겨 내려간 건 아쉬워요. 그게 선수들에게 가장 미안해요.” -감독은 처음 맡았지만 준비를 오래 했잖아요. “2001년부터 감독님들에게 배웠던 패턴이나 생각들을 메모해 놓은 노트가 한가방이에요. 지금도 들춰봐요. 여러 감독님의 장점도 배우려고 노력했어요. 최희암(전 연세대) 감독님에게는 적성 농구를, 유도훈(전자랜드) 감독님에게는 선수 구성부터 장악하는 법 등 철저한 준비를 배웠죠. 이상범(KGC인삼공사) 감독님은 최연소 감독을 해봐서 그런 경험들이 도움됐어요. 유재학(모비스) 감독님은 작은 체구인데도 선수들에게 믿음을 주잖아요. 전창진(KT) 감독님은 호랑이 같은데도 선수들 얘기 들어보면 늘 우리 감독님이 최고라고 말하니까, 대체 무슨 방법이 있을까 닮고 싶죠.” -그렇게 준비했는데 감독대행 첫해는 꼴찌였어요. “말 그대로 대행이라 제 색깔을 낼 수 없었어요. 그래도 6강은 자신 있었기에 힘들었죠. 한 갑 피우던 담배를 하루 두 갑씩 피웠어요. 부상 탓도 했는데 부상 안 당하는 것도 지도자의 숙제잖아요. 정식 감독이 되고 가장 먼저 체력 코치와 상의해 6주간 농구공 안 만지고 체력만 다지게 했어요. 우리 팀이 올해 큰 부상 없이 한 시즌을 마친 것도 그 교훈 때문이죠.” -그 힘든 순간을 어떻게 이겨냈어요? “정말 힘들면 숙소에 혼자 있어요. 그냥 멍하니 있어요. 선수 시절 가장 힘들 때가 38살 때였어요. 자유계약선수가 됐는데 찾는 곳이 없어 그만둬야 할 위기가 왔죠. 그때도 아내와 소파에서 몇 시간을 멍하니 있었어요.” -대행 꼬리표를 떼자마자 젊은 감독답게 관행을 깬 작전을 몰아붙였어요. “수비력 보완에 집중했어요. (보통 2가드-2포워드-1센터가 정석인데) 1가드-4포워드로 바꾼 게 성공했죠. 선배 감독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걱정도 했지만 도전정신으로 밀어붙였어요. 선수들이 원하는 걸 하게 하는 ‘적성 농구’로 능률을 올렸어요. 슈팅 가드였던 선형은 공 갖고 노는 것을 좋아해 공을 가장 오래 잡고 있는 포인트가드를 맡겼고, 민수는 싫어하는 몸싸움을 무조건 시키지 않고 평소 원하던 외곽슛을 던지게 해줬어요. 단 조건을 걸었죠. 민수에게는 안에서 나오는 공은 무조건 던지고, 가드가 주는 것은 던지지 말라고 정해줬어요. 공격만 하고 싶어하는 선수에겐 수비 역할 분담만 해주면 어떤 공격도 허락한다고 했죠.” 다음 시즌은 무서운 형님 리더십
그래도 규율규정은 선수들과 합의 -벤치 선수까지 보듬는 ‘형님 리더십’은 어떻게 나온 걸까요? “팀의 간판 선수로만 뛰다가 은퇴했으면 선수들의 마음을 보듬는 법도 몰랐을 거예요. 35살부터 은퇴할 때까지 5년 동안 거의 벤치 생활을 했는데 그때 처음 벤치 선수들의 고충을 알게 됐어요. 아까 말한 38살 때 선수를 관둬야 할 위기에서 기적적으로 연봉 6000만원에 계약했는데, 39, 40살 2년은 사실상 15년 차이 나는 선수들의 스파링 상대였어요. 자존심도 상하고 힘들었지만 지금 생각하면 감독으로서 재산이 된 거죠.” -리더십의 원조는 아버지라고? “하하. 아버지가 동네에서 방범대장이세요. 친목회 회장, 청소년선도위원회 회장 등 온갖 감투를 다 쓰세요. 제가 선수 때 세탁소를 하셨는데 세탁협회 동대문지구 회장도 하셨어요.” -그 리더십으로 아내도 얻었잖아요. “그거에 우리 와이프가 혹했죠.(웃음) 처음 연애할 때 친구들 모임에 데리고 갔는데, 제가 분위기를 주도하니까, ‘이 남자 멋있구나’ 생각했대요. 스키장에서 발레파킹을 기다리다 아내를 보고 첫눈에 반했는데, 저를 잘 몰랐어요. 연애할 때도 시합 보러 와서 3점슛 넣고 쳐다보면 다 난리 났는데 혼자만 가만있었어요. 결혼한 지 15년 됐으니 이젠 좀 솔직해지라고 (알면서 모른 척한 거 아니냐고) 물어도 정말 몰랐다고 해요.” -다음 시즌 형님이 무서워진다고요? “형님 리더십이 바뀌는 건 아니지만 규정을 강화했어요. 작년에는 부상 선수가 아프면 쉬게 했는데 아픈 것도 자기 관리를 잘못한 걸로 간주해 환자들은 무조건 2군에 보낼 거예요. 훈련에 늦게 나오면 벌금 5만원이었는데 이제는 2군에 내려보낸다거나, 두세배는 더 혹독해져야 진짜 모래알 조직에서 벗어나지 않겠어요?” -선수들이 반발하면 어쩌죠? “에이, 모든 규정은 선수들과 사전에 합의하죠. 제가 달리 형님이겠어요? 하하.” “캠핑카로 미국을 횡단하는 로망”을 가슴에 품고 산다는 그는 지난 14일 선수들의 웨이트트레이닝을 위해 미국으로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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