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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이천수·정대세 부활이 K리그의 부활이다

등록 2013-03-22 20:28수정 2013-03-23 17:55

[토요판/승부]정대세 vs 이천수
2013년 케이(K)리그가 시작됐다. 올 시즌 케이리그는 여러모로 뜻깊다. 다방면에 걸친 새로운 시도가 성과를 낸다면, 한국 축구의 미래는 한층 더 밝아질 것이다. 여기, 케이리그 전성시대를 위해 뛰는 두 스타가 있다. 각기 남과 북을 대표했던 이 두 선수는, 각자의 전성기를 되찾기 위해 케이리그로 뛰어들었다.

2002년 월드컵 4강의 주역
거듭된 유럽 진출과 고배
팀과의 불화와 무단이탈
그리고 4년간의 임의탈퇴 공시
이천수가 인천으로 돌아왔다

일본서 태어나 한국여권을 가진
북한의 국가대표팀 선수
일본과 월드컵에서 도약했지만
독일의 지난 1년은 불안했다
정대세가 수원에 입단했다

올 시즌 케이리그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출발했다. 1983년에 출범한 한국 프로축구가 30년을 맞는 해이자, 오랜 숙원이던 1·2부 제도가 시행되는 첫해이기 때문이다. 30돌을 맞아 승강제를 도입한 케이리그는 클래식(1부, 14개 클럽)과 챌린지(2부, 8개 클럽)로 나뉘어 새로운 역사를 시작한다. 세계 축구계에서 승강제는 프로축구 리그의 인장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한국 프로축구는 지난 30년 동안 이날만을 위해 뛰어온 것이나 다름없다. 덕분에 올 시즌부터 축구팬들은 1부 리그 하위팀과 2부 리그 상위팀 간에 승격과 강등을 두고 벌이는 치열한 경쟁을, 위성중계가 아닌 동네 경기장에서 볼 수 있게 됐다. 외국에서나 가능할 것 같던 승강제의 묘미를 이제 한국에서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제도의 정비가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예측 불허인 대중의 관심은 도무지 만족할 줄을 모른다. 언제나 그 이상을 원하는 대중의 욕구에 대응하지 않는 사업은 성공할 리 없다. 팬이 없다면 존재 자체의 의미가 없는 프로스포츠라면 더더욱 그렇다. 그간 케이리그는 경기력과 행정 양 부문에서 꾸준한 향상을 거듭하며 좋은 성과를 거둬왔다. 흥행에서는 늘 물음표를 달고 다녀야 했다. 그래서 올 시즌은 매우 중요하다. ‘확 달라진’ 2013 케이리그가 성공의 열매를 맺으려면 이 변화를 확실하게 알릴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유명 스타의 존재는 매우 필요한 요소가 된다.

2013년 케이리그가 가장 큰 기대를 거는 것은 역시 이천수와 정대세다. 각각 한국과 북한의 월드컵 대표 선수로 전성기를 누렸던 둘은, 케이리그(이천수)와 제이(J)리그(정대세)에서의 성공을 뒤로한 채 떠난 유럽에서 나란히 고배를 마셨다. 네덜란드(이천수)와 독일(정대세) 무대에서 각기 다른 이유로 정착하지 못한 둘에게 올 시즌 케이리그는 자기 존재의 증명이자 부활의 무대다. 본인들이 원하든 그렇지 않든, 케이리그 부흥의 짐을 일정 부분 나눠 짊어져야 하는 중책까지 맡게 됐다. 박지성, 손흥민, 기성용, 구자철 등 대부분의 톱스타가 줄줄이 유럽으로 빠져나간 상황에서, 축구에 관심 없는 이들까지 주목하게 만드는 두 선수의 활약은 2013년 케이리그 흥행 안착에 결정적인 열쇠가 될 것이다.

기대 또는 선입견, 이천수를 둘러싼 시각

이천수의 복귀는 그 자체로 큰 이슈였다. 10대 시절부터 톡톡 튀는 발언과 빼어난 경기력으로 주목받았던 이천수는 2002년 월드컵을 거치면서 최고의 축구 스타 중 한 명으로 떠올랐다. 월드컵 4강의 신화 뒤로 사라진 노장 선수들이 점차 빛바랜 앨범처럼 서서히 커리어를 정리했다면, 아직 한창 젊었던 이천수는 월드컵이 남긴 여운을 즈려밟으며 자신의 존재감을 확장해 나갔다. 그 결과, 지난 2년의 공백기에도 불구하고 이천수는 여전히 케이리그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스타 선수로 남아 있다. 케이리그를 모르는 사람은 있을지언정, 이천수를 모르는 사람은 몇 없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단언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더욱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2년간의 공백은 이천수에 대한 팬들의 기대감을 증폭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최근 몇 년 동안 어수선했던 이천수의 행보도 그의 실력에 대한 신뢰를 분산시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박주영을 필두로, 기성용-이청용-구자철 등 케이리그가 배출한 톱스타급 선수들이 줄줄이 유럽을 향하는 과정에서 스타 부재에 시달렸던 케이리그 입장에서는 이천수의 복귀는 분명 환영할 만한 소식이다.

이천수는 지난 1년여의 시간 동안 사실상 선수 생활을 휴업중인 상태였다. 그 이유도 축구 선수로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여러 행동들, 이를테면 팀 무단이탈이나 코치와의 물리적 충돌 같은 사건으로 인한 임의탈퇴 공시였던 것을 고려하면 그의 복귀가 마냥 환영받을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중적 관심이 존재의 의미라 할 수 있는 프로스포츠에서 이천수만큼 화제를 끌어모을 인물이 없다는 사실은 케이리그의 한계이면서 희망일 수 있는 대목이다. 여하튼 이천수는 올 시즌 고향팀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케이리그에 복귀했고, 실전 투입을 앞두고 있다. 이천수에게 올 시즌은 케이리그 르네상스의 사명을 완수함과 동시에 자신의 건재를 입증해야 하는 의미를 담는다.

이천수의 선수 경력에는 부침이 있다. 프로 진출 뒤 성공가도를 달리다 2004년 스페인 리그에 진출한 바 있는 이천수는 레알 소시에다드와 누만시아를 거치는 동안 이렇다 할 만한 족적을 남기지 못했다. 씁쓸하게 돌아온 케이리그는 그에게 좁았다. 2005년 케이리그 후반기만 뛰면서도 압도적인 활약으로 소속팀 울산 현대를 케이리그 통합 챔피언에 올려놓은 것이다. 당시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 인천 원정을 떠나 홀로 해트트릭을 터뜨리며 팀 우승을 사실상 확정한 장면은 이천수 경력의 백미다.

케이리그를 평정한 이천수는 유럽에 재도전했다. 네덜란드 명가 페예노르트에 입단한 이천수는 다시 유럽 축구 정복에 나섰지만 공은 그의 생각대로 구르지 않았다. 네덜란드에서 머문 1년이 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천수는 단 4경기 선발 출전(교체 출전 8경기)에 그쳤고 골은 하나도 넣지 못했다. 다시 돌아온 한국도 이번엔 쉽지 않았다. 달라진 그의 자세가 문제였다. 케이리그 수원 블루윙즈로 임대된 그는 부진한 경기력에 불성실한 훈련 태도까지 겹쳐 제대로 출전 기회조차 얻지 못했고, 팀이 리그 정상에 오르는 동안 아무런 기여도 하지 못한 채 시즌 뒤 전남 드래곤즈로 재임대되기에 이른다.

전남과 함께 출발한 이천수의 2009년은 선악이 공존했다. 교체로 투입된 그는 팀이 1-6으로 참패한 에프시(FC)서울과의 개막전에서 경기 종료 직전 전남의 유일한 골을 넣었지만, 경기 도중 자신의 골을 오프사이드 판정한 심판에게 속칭 ‘주먹 감자’와 ‘총쏘기’ 동작을 취한 것이 문제가 돼 6경기 출전 정지의 사후 중징계를 받았다. 과거 비슷한 사례로 이미 징계를 받은 적이 있던 이천수의 이러한 행동은, 상대팀에서 뛴 후배 이청용이 같은 경기에서 도움 해트트릭을 기록한 것과 대비되어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켰다. 다수 여론이 그에게서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이천수의 전남 시절은 갈수록 꼬이기만 했다. 수원에서 전남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연봉을 한푼도 보장받지 못했던 이천수는 주위의 따가운 시선 속에 불만이 쌓여갔고 결국 전성기 기량을 펼치지 못한 채 방황했다. 급기야 코치와 다툼을 벌이는 등 문제가 발생한 뒤 팀에서 무단이탈해 구단의 동의 없이 사우디아라비아 리그로 떠났고 전남은 그에 대해 임의탈퇴 공시를 하기에 이른다. 이후 이천수는 사우디 리그와 일본 제이리그를 전전했지만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고 2011년 말 국내로 복귀한 뒤 임의탈퇴에 묶여 사실상 선수생활을 이어가지 못했다. 이천수는 전남이 지난 2월 임의탈퇴를 철회하고 인천으로 이적을 허가함으로써 4년 만에 가까스로 케이리그 복귀에 성공했다. 톡톡 튀는 20대였던 이천수는 이제 서른을 넘긴 모습으로 케이리그 클래식 데뷔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이제 자신을 향한 세간의 까다로운 시선을 딛고 제대로 공을 몰고 달려야 하는 입장이다.

모두가 그를 차갑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얼마 전, 구단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올 연말 결혼 계획까지 밝힌 이천수가 ‘풍운아’가 아닌 ‘밀레니엄 특급’ 시절의 경쾌한 공격수로 돌아오길 믿는 이들도 적지 않다. 이처럼 그를 바라보는 이들의 마음은 복잡다단하다. 긍정적인 기대와 부정적인 선입견이 공존하는 상황에서 이제 그는 더 이상 철부지 스타가 아니다.

자신의 미래, 가족의 미래, 나아가 케이리그의 미래까지 책임져야 할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올 시즌 케이리그 성공의 한 축을 담당해야 할 이천수의 복귀가 더욱 기다려지는 이유다.

각각 선수경력에 위기를 겪은
그들에게 올 시즌 K리그는
자신의 건재를 입증할 무대다
30년이 된 K리그한테 그들은
침체를 벗어날 흥행카드다

어린이날 수원에서 처음 만날
남과 북의 간판스타들
선수도 팬들도 가슴 뛴다
또 한번 전성시대는 가능할까
잊지 못할 승부는 가능할까

다국적 또는 무국적, 정대세의 독특한 이력

일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한국 여권을 가졌고, 북한 축구 대표팀 선수로 뛰는 정대세. 이른바 ‘자이니치’라 불리는 독특한 배경이 그의 전부는 아니다. 대학을 다니다 2006년 제이리그 가와사키 프론탈레 소속으로 일본 프로축구 리그에 데뷔한 정대세는 이후 3년간 매년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빼어난 공격력을 과시했다. 2008년과 2009년에는 2년 연속 14골을 뽑아내며 제이리그 득점 3위(2008년)와 6위(2009년)를 기록했다. 만만찮은 일본 제이리그에서 보여준 이런 꾸준한 활약은 그에게 북한 대표팀 발탁이라는 기회를 제공했다. 얼핏 한국, 일본, 북한 등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처럼 보였던 그의 대표팀 선택은, 그러나 본인의 증언에 따르면 대안이 없는 결정이었다. 어릴 적 ‘우리 학교’를 다니며 형성된 가치관, 그리고 그에게 대표팀 승선 제안을 했던 유일한 팀이 북한이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다른 결단을 고민할 필요가 없게 했다.

북한 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뒤 그의 행보는 거칠 것이 없었다. 2008년 동아시아대회 득점왕에 오르며 국제 무대에 이름을 알린 그는 역습 중심의 북한 대표팀의 공격 첨병으로 일찌감치 자리를 굳히며 명성을 쌓았다. 선수 경력의 정점은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본선에 북한 대표 선수로 참가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본선에서 브라질, 포르투갈 등 강호들을 상대한 북한 대표팀의 최전방에는 그가 있었고, 여기서 그는 경쾌한 몸놀림으로 세계 축구에 자신의 존재감을 알렸다. 뭐니 뭐니 해도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역시 본선 첫 경기 직전 의례 순서에 눈물을 흘리던 장면이다. 정대세의 눈물은 그의 남다른 출신 배경, 남북의 분단 등과 어우러져 국내뿐만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큰 관심을 모았다.

월드컵이 끝난 뒤 정대세는 독일 분데스리가 2부의 보훔에 입단하며 유럽 진출에 성공한다. 유럽에서의 첫 시즌은 나쁘지 않았다. 25경기에 출전해 10골을 터뜨린 정대세는 팀이 리그 3위를 차지하는 데에 크게 기여하며 독일 축구계에 강한 인상을 심는다. 비록 팀이 1부 리그 승격이 걸린 포스트 시즌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묀헨글라트바흐한테 패해 1부 리그 진입에 실패하긴 했지만, 유럽 데뷔 시즌의 기억으론 나쁘지 않은 한 해였다. 이듬해인 2012년 1월 정대세는 에프시쾰른 입단으로 꿈에 그리던 유럽 1부 리그 진입에 성공했다. 독일 분데스리가 1부에 진입한 정대세는, 그러나 리그에서 한 골도 뽑아내지 못하는 부진과 부상이 겹치며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쾰른에 머문 1년 동안 리그에서 단 10경기(2선발) 출전에 그친 정대세는 결국 아시아로 복귀를 모색했고 지난 2월 국내외에 큰 화제를 뿌리며 수원 블루윙즈로 소속을 옮겼다. 이번에는 그의 여권 발급지인 한국에서, 케이리그 제패를 노리며 새로운 도전에 나선 것이다.

정대세의 케이리그 입단은 축구계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에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정대세를 영입한 수원 블루윙즈의 홍보 담당자는 “하루에도 수십 곳에서 인터뷰 의뢰가 온다. 스포츠 매체뿐만 아니라 각종 기관지, 처음 들어본 매체에서도 인터뷰를 원해 전화 받느라 일을 못할 지경”이라고 하소연을 할 정도였다. 정대세를 둘러싼 관심의 크기가 큰 것은 그가 축구 선수여서만은 아니다. 한국과 일본, 북한이 절묘히 배합된 그의 성장 배경과 현역 북한 국가대표 선수라는 신분, 월드컵을 통해 각인된 스타플레이어의 이미지가 한데 어우러진 결과다. 실제로 정대세의 입국과 수원 블루윙즈 입단식 현장에는 축구 관계자나 언론사 기자들 외에도 정부 부처 요원들이 오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높은 관심은 30주년을 맞이한 케이리그에는 큰 호재가 아닐 수 없다. 축구계 밖의 관심이 크게 높아진 것이야말로 케이리그가 가장 바라는 바였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케이리그의 가장 큰 고민 중 하나는 시장이 협소하다는 점이었다. 이른바 ‘축구팬’이라 분류할 수 있는 상대적 소수의 그룹은 열정을 갖고 참여하지만, 일반 대중의 관심은 쉽게 팽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대세의 가세는 케이리그의 존재에 큰 관심을 갖지 않던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데에 성공했다. 북한 대표팀 공격수라는 신분과 월드컵을 통해 쌓인 명성이 더해져 만들어진 정대세라는 이름은, 지상파 예능 프로그램에 1시간 넘게 단독 출연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대중적인 친화력을 쌓은 상태다. 수원과 프로축구연맹 모두한테 정대세가 매우 중요한 흥행 카드이자 케이리그 르네상스를 이끌 주역으로 꼽히는 이유다.

기성세대의 우려나 편견과 달리, 젊은 세대들이 그를 비교적 빠르게 받아들인 것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수원 블루윙즈의 홈경기 때에 정대세는 전광판에 등장해 현장 진행자가 지정한 팬과 가위바위보 대결을 펼친다. 객석의 수천 관중들은 그의 이름이 새겨진 응원도구를 손에 들고 경기를 관전한다. 팬들이 직접 만들어 들고 오는 응원 팻말에 정대세의 이름이 매우 눈에 많이 띄는 것도 이채로운 대목이다. 북한 국가대표 선수라는 신분이 팬들에게 경계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더 이상 별다른 제약 요소가 되지 않는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정대세가 케이리그 르네상스의 주역으로 꼽히는 또다른 이유이기도 하다.

이변 꿈꾸는 인천, 옛날 꿈꾸는 수원

이천수와 정대세 모두에게, 2013년 케이리그는 인생의 전환점이다. 선수 경력의 위기를 뚫고 나와 권토중래를 꿈꾸는 두 선수는 올 시즌 케이리그를 통해 많은 것을 얻어내야 한다. 케이리그 역시 마찬가지다. 앞서 언급했듯 새로운 변화를 모색중인 케이리그는 30주년이라는 구호와 승강제 도입이라는 커다란 이벤트를 통해 그간의 침체를 딛고 일어서야 한다. 이를 위해 케이리그는 둘의 활약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성장 배경은 다르지만, 둘은 여러 면에서 공통점을 갖고 있다. 먼저, 그들은 팬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아는 타고난 흥행사들이다. 어릴 적부터 집중 조명을 받아온 이천수는 경기장 안팎에서 팬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를 정확히 꿰뚫는 몇 안 되는 선수 중 하나다. 팬들의 갈채를 부르는 화려한 질주와 호쾌한 슈팅은 물론이고, 자신만만한 인터뷰로 스스로 뉴스메이커가 되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정대세 역시 마찬가지다. 다소 투박한 인상과 달리 정대세는 매우 붙임성 있는 성격의 소유자다. 일본 시절부터 팬들과의 소통에도 적극적인 선수로도 알려져 있다. 널리 알려진 ‘인간 불도저’라는 별명은 스스로 작명한 것이며, ‘인민 루니’라는 한국 팬들이 지어준 별칭도 기꺼이 받아들인다. 프로 선수로서 자신의 가치를 최대한 인정받으려는 욕구가 강한 것도 두 선수가 가진 강점이다.

현 소속팀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큰 것 역시 올 시즌 둘의 활약이 중요한, 그리고 기대가 되는 이유로 꼽힌다. 이천수의 소속팀 인천은 시즌 초반 무서운 기세로 선두권에 진입했다. 이천수의 2002년 월드컵 동료이자 선배인 김남일-설기현이 본격적으로 가세하지 않은 상황에서 좋은 성적을 내고 있어 올 시즌 케이리그에 이변을 일으킬 팀으로 첫손에 꼽힌다. 벌써부터 신인왕 후보로 꼽히는 이석현의 존재도 흥미롭다. 3월 중 복귀 가능성이 높지 않은 이천수가 몸을 만드는 사이, 인천이 이천수에게서 기대하는 호쾌한 돌파와 값진 프리킥 골을 이석현이 이미 뽑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천수의 합류는 인천과 케이리그를 보는 재미를 더욱 배가시켜줄 참이다.

앞서 언급한 김남일-설기현과의 조합 역시 이천수가 인천의 주전으로 뛰는 순간을 고대하는 이들에게는 크게 관심을 끄는 대목이다. 벌써 11년이 흐른 2002년 월드컵의 기억은 한국 축구의 영원한 보루다. 이 셋이 함께 뛰는 경기는 그 자체로 케이리그에 귀한 에피소드로 남을 것이다.

반면, 수원의 정대세는 일찌감치 팀의 주전 공격수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은 상태다. 독일에서 뛰던 시절 실전 투입 기회가 적었던 탓에, 수원 합류 직전까지 몸 상태에 대한 걱정이 많았지만 막상 팀 훈련에 합류한 정대세의 몸은 관리가 상당히 잘되어 있었다. 수원의 서정원 감독이 “개막전부터 주전으로 내보낼 것”이라고 밝혔을 때는 모두가 반신반의했지만, 실제로 경기장에 투입되어 상대 문전을 헤집는 모습에선 감독의 기대가 허장성세가 아니었음을 모두가 느낄 수 있었다. 스타군단 레알 마드리드에 빗대어 ‘레알 수원’이라 불리던 과거에 비하면 거액의 스타급 선수가 적은 수원한테는, 스타성과 기량을 고루 갖춘 정대세의 존재가 더욱 값지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수원은 그에게 팀 색깔을 딴 ‘블루 불도저’라는 새로운 별명을 붙였고, 정대세는 최전방에서 나날이 완숙한 기량을 뽐내며 유쾌한 질주를 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 둘의 만남은 언제일까. 두 선수가 속한 수원과 인천의 시즌 첫 맞대결은 5월5일 어린이날이다. 수원 월드컵경기장에서 펼쳐질 이날의 승부는 벌써부터 큰 관심을 불러모은다. 각기 남과 북의 간판스타였던 둘은 올 시즌 케이리그를 통해 또 한번의 전성시대를 꿈꾸는 중이다. 개막 뒤 두 달여가 흐른 시점에서 만날 둘의 승부는 그래서 이 두 케이리그 대표 스타들의 최대치를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일지 모른다. 남다른 스타성을 갖춘 이천수와 정대세의 맞대결은 그래서 벌써부터 만원 관중에 대한 기대를 높이는 중이다. 어쩌면 다시 보기 힘들지 모를 둘의 승부가 올 시즌 케이리그 흥행의 밀알이 될 것인지, 그리고 자신들의 플레이를 지켜본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추억을 남겨주게 될 것인지, 벌써부터 축구팬들의 가슴은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서형욱 풋볼리스트 대표

MBC스포츠플러스 축구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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