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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밥에 숨은 반지, 나의 프러포즈

등록 2013-02-15 20:39수정 2013-02-15 20:40

무럭무럭 자라는 태용이와 함께 찍은 전태풍 부부. 전태풍 제공
무럭무럭 자라는 태용이와 함께 찍은 전태풍 부부. 전태풍 제공
[토요판] 승부
전태풍의 편지
한국에 와서 네번째 맞이하는 설 명절을 지난주에 지냈어요. 이럴 때면 미국에 계신 부모님이 더욱 그리워요.

하지만 지금 제 곁에는 사랑하는 아내와 재롱둥이 아들이 있어서 외로움을 크게 달랠 수 있어요.

내친김에 오늘은 제가 한국에서 가정을 꾸린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정말 드라마틱해요. 아마도 운명이라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일 거예요.

대학을 졸업하고 7년간 유럽무대에서 뛰다가 어머니의 땅 한국에 온 것이 2009년 1월말께였어요. 모든 것이 낯설었어요. 2월1일에는 새로 도입한 혼혈선수 드래프트가 실시됐어요.(전 1순위로 선택됐어요.)

최종 결정까지는 일주일을 기다려야 했어요. 호텔방에서 주로 혼자 시간을 보내야 했어요.

얼마나 심심하던지, 온몸이 뒤틀리고….

그래서 컴퓨터를 켰어요. 평소 버릇대로 미국판 ‘싸이월드’인 ‘마이 스페이스’에 클릭했어요. 그랬더니 화면 한쪽에 현재 내 주변에 있는 친구들의 이름이 뜨는 거였어요. 정확히는 친구일 가능성이 높은 인물들의 이름이죠. 그런데 그 여러 이름들 가운데 익숙한 이름이 있는 거였어요. 아주 오래전에 알던 이름이죠. 제가 10살 때 알았던 소녀였어요.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전혀 떠올려보지 않았던 이름이었어요. 바로 미나 터너(32)였어요.

20년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코흘리며 다니던 한인교회가 떠올랐어요. 그때 전 미나의 오빠와 친구였어요. 우리 둘은 어머니가 한국인, 아버지는 흑인이라는 공통점이 있었어요. 그리고 저와 미나 오누이는 같은 초등학교에 다녔어요. 우리 셋은 한인교회에 3년간 같이 다니기도 했어요.

외할머니와 살아서 영어보다 한국어에 익숙했던 저는 사실 초등학교 시절 늘 외롭고 힘들었어요. 학교에서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왕따를 당했어요. 같은 반 아이들은 저를 ‘오레오’라고 놀릴 정도였어요. 오레오는 하얀 크림이 사이에 들어간 검은색 쿠키인 거 아시죠.

그 당시 미나 오빠와 놀 때면 한살 어린 미나는 “같이 놀아줘”라며 따라붙었어요. 우리는 “싫어, 넌 저리 가”라며 타박했고, 그러면 미나는 울면서 집에 가곤 했어요. 미나 오빠와는 그때 비디오게임과 농구, 미식축구 등을 함께 하며 많은 시간을 보냈어요. 당시 전 미나에게 조금도 관심이 없었어요. 어릴 때 여자들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으니까요.(미안해, 미나.)

그런 미나가 제가 묵었던 이태원 근처에 있는 것으로 컴퓨터 화면에 표시됐어요. 그래서 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나를 아는 미나인가요?”라고 메시지를 보냈어요. 그런데 놀랍게도 5분도 안 돼 답변이 왔어요. “반가워요, 오빠.”

와우! 얼마나 반가웠겠어요. 전 즉시 답변을 보냈어요. “오늘 만날 수 있어?”

그로부터 2시간 뒤 전 이태원 큰길가에서 미나를 기다렸어요. 좀 기다리니까 한 아가씨가 제 앞으로 다가오는 겁니다. 제 가슴은 터질 것 같았어요. 너무도 아름다운 여인이 저를 향해 밝고 환한 미소를 보이고 있었어요. 20년 전 제가 보았던 그런 코흘리는 미나가 아니었어요. 성숙한 미나였어요.

특히 웃을 때 벌어진 입술 사이로 보이는 가지런하고 하얀 치아는 정말 매력적이었어요.

우린 근처 카페로 갔어요. 아마도 우리가 사랑에 빠진 것은 단 10초도 안 된 것 같아요. 보자마자 전 미나에게 푹 빠졌으니까요.

미나는 2006년 미국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남아메리카 여행을 3개월 다녀온 뒤 도시 설계와 조경 관련 일을 하다가 한국에 왔어요. 어머니 나라를 더 늦기 전에 알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학원에서 영어 강사를 하며 한국의 이곳저곳을 여행 다니던 중이었어요.

미국 교회에서 처음 만났고
미국 사이트에서 찾은 그 이름
미나 터너가 한국에 산대요
20년만에 만나 첫눈에 반해서
결혼하고 2세도 낳았어요
이런 게 운명같은 사랑이죠?

미나 역시 한국 땅에서 만난 제가 무척이나 반가웠나봐요. 우리는 자주 만났고, 자연스럽게 연인 관계로 발전됐어요.

케이씨씨(KCC)에서 선수 생활을 하게 된 저는 외롭고 힘들 때마다 미나로부터 힘과 용기를 받곤 했어요.

전 미나에게 프러포즈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2009년 12월, 길거리에는 크리스마스캐럴이 울려 퍼지고 있을 때 전 미나에게 저녁을 사주겠다고 약속했어요. 장소는 이미 몇차례 가본 서울 목동의 한 횟집. 안면 있는 주방장에게 부탁했어요. 초밥 안에 반지를 넣어달라고 했죠. 이벤트를 준비한 거죠.

마침내 반지를 넣은 초밥이 미나 앞에 놓였고, 미나는 초밥을 먹다가 반지를 발견했어요.

전 즉시 자리에서 일어나 미나 옆에 무릎을 꿇고 부드럽게 속삭였어요. “윌 유 매리 미?”(Will you marry me?) 미나는 웃으면서 곧바로 대답했어요. “오케이.”

그렇게 저의 프러포즈는 사전에 기획한 대로 척척 진행됐고, 우리의 사랑은 깊어만 갔어요.

마침내 사랑은 결실을 맺었어요. 결혼을 하게 된 거죠. 결혼식은 미국에서 했어요. 미나와 저희 부모님이 모두 미국에 계시기 때문이죠.

2010년 6월1일 로스앤젤레스의 애너하임 힐스컨트리클럽에서 열린 결혼식에는 당시 같은 팀에서 땀을 흘리던 하승진과 강병현이 결혼을 축하해 주기 위해 미국에까지 왔어요. 좋은 친구들이죠. 저와 동갑내기거든요. 그리고 무서운 허재 감독님도 함께 오셨어요. 너무 고맙고 반가웠어요.

미나는 제가 부족한 점을 잘 보완해줘요. 전 주변을 잘 정리하지 못하는데 미나는 정리정돈의 고수예요. 전 기분나면 이런저런 물건을 마구 사는데 미나는 정말 짠순이예요. 헛돈을 쓰지 않아요.

그리고 지난해 5월, 마침내 우리 사랑의 결정체인 아들 태용이가 태어났어요. 검을 태(兌)에 용 용(龍). 영어로는 블랙 드래건이죠. 남자다운 이름 아닌가요? 영어 이름은 ‘에이스’(Ace)죠. 뭘 하든지 최고로 하라는 소망이 들어간 이름이죠.

물론 생긴 것은 저를 많이 닮았어요. 힘도 좋고 씩씩하게 기어 다녀요. 가끔 경기 중에도 태용이의 웃는 모습이 떠올라 집중이 어려울 때도 있어요.

저는 태용이가 크면 농구를 가르치고 싶어요. 마치 저의 아버지가 저에게 농구를 가르치셨던 것처럼 아들에게 정성껏 농구를 가르칠 거예요. 아들이 싫어한다면? 물론 포기해야죠. 제 욕심대로 아들을 키울 수는 없잖아요.

다음 편지 때는 유럽 선수 시절 이야기를 해드릴게요. 한밤중에 폴란드의 술집 앞에서 30여명의 깡패들과 싸운 이야기도 해드릴게요. 흥미진진한가요?

정리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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