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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넌 여자팀에 가서 뛰어라”

등록 2012-11-09 20:35

키 작은 혼혈아가 뭘 하겠냐며
중학교때 잠시 무시당했지만
제 실력이 모든 문제를 해결했죠
전 운동으론 천재인가봐요
눈 감고도 양손드리블을 해요
야구, 미식축구도 다 잘했어요
전태풍의 편지

프로야구 김태균 선수(한화 이글스)의 편지에 이어 미국에서 귀화한 프로농구 전태풍(32·고양 오리온스) 선수의 편지를 6회에 나눠 연재합니다. 전태풍 선수는 로스앤젤레스의 어린 시절부터 어머니 고향으로 건너와 대스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들려줄 예정입니다.

왜 제 이름이 태풍인지 아시나요?

저의 미국 이름은 토니 에이킨스죠. 미국 대학농구 최고의 포인트 가드로 날리던 토니였습니다.

어머니의 조국인 한국에 오면서 제 이름은 전태풍이 됐습니다. 전 이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어머니 성이 전씨여서 성을 전씨로 했고요. 이름은 다소 과격한 이미지의 태풍이라고 지었어요. 사촌 누님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태풍’, 그래요. 전 태풍 같은 삶을 살고 싶어요. 다 쓸어버리고 새로운 상황을 만들어내는 그런 태풍 말입니다.

저의 트레이드마크가 폭풍처럼 질주하는 현란한 드리블인 거 아시죠? 한국 농구판에 발을 들여놓으면서 저 나름대로 새겨 놓은 목표가 있어요. 그건 차차 말씀드리기로 하고, 막연하게나마 한국 프로농구판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야겠다는 의지는 분명했어요.

어땠나요? 제가 한국에 온 지 벌써 4년째네요. 과분한 여러분의 사랑을 촉촉이 느끼고 있어요.

사랑하는 아내를 만나 결혼도 하고, 보석 같은 아이도 낳고. 넘 좋아요. 한국 생활이.

사실 전 개그맨 기질이 다분해요. 주변 사람들을 즐겁게 만드는 해피바이러스 같은 존재로 살아왔고 살고 싶어요.

하지만 제 마음속에 아픔은 많이 있어요. 이 편지를 통해 힐링의 기회가 됐으면 좋겠네요.

우선 제 어릴 때 모습부터 말씀드릴게요.

아마도 여섯살 때였어요. 제가 살던 로스앤젤레스 한 공원이었어요.

당시 동네 아이들이 모여 함께 운동을 하고 있었어요. 대부분 제 또래 아이들이었죠. 어른들이 하는 야구를 모방한 티(T)볼이었어요. 무릎 높이의 나무에 말랑말랑한 공을 올려놓고 배트로 치는 거였죠. 투수와 포수가 없을 뿐 경기 방식은 야구와 비슷해요. 관중석에는 제 친구들을 데려온 부모님들이 자리잡고 있었어요. 그 가운데는 저의 아버지도 계셨죠. 아득한 기억이지만 적어도 30~40명의 어른들이 자식들의 앙증맞은 몸동작을 주의깊게 보고 있었죠.

드디어 제 차례가 왔어요. 저는 배트를 두 손에 쥐고 공을 쳤어요. 그런데 난리가 났어요. 갑자기 학부모들이 “와우, 인크레더블, 오마이 갓” 등등 함성을 지르는 거였어요. 그 소리가 너무 커서 저는 1루로 달리다가 관중석에 있는 아버지께 달려가 품에 안겨 마구 울었어요. 놀랐기 때문이죠.

아버지는 “얘야, 울음 그치고 얼른 운동장으로 돌아가거라” 하셨어요.

학부모들이 왜 소리 질렀는지 아세요? 제가 친 공이 장외 홈런이 된 겁니다. 또래 아이들이 친 것보다 두배 정도 멀리 날아간 거죠. 그러니 이를 보던 부모님들이 소리를 친 겁니다.

아마도 그때부터 스포츠 스타 전태풍은 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생각이 돼요.

아버지 주변에 있던 학부모들이 “저 아이는 보통 애가 아니다. 꼭 운동선수를 시켜라”라고 이구동성으로 이야기를 했고, 아버지는 저를 운동선수로 이끌기 시작한 것이죠.

내친김에 운동으로 주변을 놀라게 한 일을 더 소개할게요. 제 자랑이니까 그냥 들어주세요. ㅋㅋ

중학교 입학해서 농구를 하고 싶어 학교 농구단에 가서 “농구를 하고 싶다”고 했어요. 키도 그다지 크지 않았던 혼혈아이가 와서 농구 하겠다고 하니까 백인 담당 교사는 “이미 농구 선수 정원이 넘쳐 어렵구나. 미안하구나. 그러나 네가 정 하고 싶다면 마침 여자 선수팀에는 한 명이 모자라니 거기 가서 같이 하려무나”라고 이야기하는 겁니다. 여자아이들과 하라는 거였죠.

저는 성질을 꾹 참고 “네”라고 대답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여자들 틈에 끼어들었어요. 그리고 두 팀으로 나뉘어 경기를 했어요. 완전히 저의 독무대였죠. 경기 내내 저만 공을 갖고 놀았던 것 같아요. 그때에도 저의 드리블은 환상적이었거든요. 같이 경기하던 여학생들은 제가 공을 잡으면 그냥 구경했어요. 상대팀 아이들도 저의 레이업 슛에 손뼉을 칠 정도였으니까요.

멀리 바라보던 백인 교사가 경기를 마친 뒤 저를 불렀어요. 그리고 “남자팀에 자리가 났으니 당장 내일부터 운동을 같이 하자. 내일 오후 3시까지 꼭 나와라”라며 제 손을 꼭 잡는 겁니다. 이미 찼다던 남자팀의 선수 자리가 갑자기 생긴 거죠.

결국 그 중학교는 저의 활약에 힘입어 지역 리그 우승을 차지합니다. 학교 생긴 뒤 처음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전 운동에 관한 한 ‘천재’인 것 같아요. 농구뿐 아니라 야구, 미식축구 모두 잘했어요. 운동신경이 뛰어난 거죠. 저의 질풍 같은 드리블을 보시면 다들 감탄하시죠. 사실 눈을 감고도 양손 번갈아 드리블을 할 수 있어요. 왠지 아세요? 아버지의 유전자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 같아요.

사실 오늘의 저를 만든 이는 바로 아버지 주얼 에이킨스(64)입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오늘의 저를 만들었어요.

아버지의 고향은 조지아주의 깊은 시골. 무려 11형제의 장남이셨던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운동에 소질을 보이셨다고 합니다. 아버지의 다른 형제들도 다들 운동을 잘하셨대요.

아버지는 저와 같은 농구 선수 출신입니다. 명문 미시간대학 시절까지 명가드로 활약을 하셨어요. 저보다 키가 6㎝ 정도 크니까 농구 선수로는 그리 큰 키는 아니죠. 그래서 포인트 가드로 활약을 하셨어요. 대학 졸업 후 아버지는 미국 프로농구(NBA)에서 활약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시질 못했어요. 지명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죠. 그 뒤 아버지는 평범한 회사원으로 살아가시기 시작했어요.

농구에 대한 꿈을 접어둔 채 의류회사 직원으로 일하신 거죠. 아마도 당신이 이루지 못한 농구에 대한 꿈은 매우 컸을 겁니다. 덕분에 패션디자이너인 저의 어머니(전명순·63)를 운명적으로 만났고, 제가 태어났어요.

그리고 아마도 아버지의 좌절된 농구에 대한 열정이 저를 통해 다시 활활 타올랐을 겁니다.

아버지는 어린 저 때문에 직장에서 퇴출됩니다. 왜냐하면 직장보다는 저에게 농구를 가르치는 일에 몰두했기 때문이죠. 중학교 때 아버지는 매일 학교에 오셔서 농구를 가르쳐 주셨어요. 정식 농구 담당 교사가 있었는데, 그 교사가 아버지에게 학생 농구지도를 부탁한 거죠.

성격이 차분하고 다정다감한 아버지는 운동에 관한 한 너무 엄격했어요.

아마도 만족을 모르시는 분 같아서 사실 저는 불만이 많았어요. 한 경기에 50득점을 했지만 아버지는 칭찬에 인색했어요. “넌 더 넣을 수 있었는데…”라며 잘못한 점을 일일이 지적하시곤 했어요. 이런 아버지가 전 부담스러웠어요. ㅠㅠㅠㅠㅠ 다음 편지엔 더 재미있는 이야기 해드릴게요. 제가 여자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있었는지도. 정리 이길우 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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