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태균의 편지
감독이 갑작스레 경질되고
구단도 시즌 포기 분위기에서
팀보단 개인성적에 더 신경
안타를 칠 욕심에 나쁜 공에도
방망이가 그냥 막 나갔어 그래도 야구만 생각했던 한 해
후회같은 건 전혀 없어
모두 끝났으니 다시 시작이지 효린아, 어느덧 2012시즌이 다 끝났구나. 포스트시즌이 한창이지만 올해도 아빠 팀은 4강에 들어가지 못했단다. 올해는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힘이 부치는구나. 아무래도 선수층이 엷은 게 큰 것 같아. 아빠 기분은 어떻냐고? 이상하리만치 속이 후련하단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복잡하고 힘들었던 시즌이어서 그런가.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마음? 이제 모든 게 끝났으니 다시 시작할 일만 남았겠지. 마침 한국시리즈에서 10차례 우승하신 김응용 감독님이 새로 오신다고 하시니 팀 체계가 잡혔으면 좋겠구나. 시즌 4할에 대한 미련은 그다지 없단다. 4할 칠 실력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던 거겠지. 그게 아빠 실력이고, 우리 팀이 꼴찌한 것도 우리 팀 실력이고. 새로운 감독님 밑에서 잘 준비해서 내년에는 7등이라도 했으면 싶다. 내년에는 엔씨(NC)마저 1군에 들어와서 9개 팀이잖아. 사실 꼴찌 하던 팀이 한순간에 4등으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아. 7등, 6등 하다가 4등 하고 그러는 거지. 거물급 신인이 들어오거나 자유계약선수(FA) 영입으로 팀 전력이 상승하지 않는 이상 팀 순위가 올라가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해. 1등 하다가 꼴등 하기는 쉬워도, 꼴등 하다가 1등 하기는 쉽지 않거든. 1등 하다가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꼴등 하다가 1등 하는 것은 한순간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야. 막판에 4할이 왜 좌절됐느냐고? 하긴 시즌 마지막 타율(0.363)을 보니 진짜 많이 미끄러지기는 했네. 9~10월 타율이 0.244였으니까. 지금 와서 말하자면, 8월 말에 솔직히 ‘멘붕’(멘탈붕괴) 상태였어. 한마디로 정신줄을 놨지. 한대화 감독님이 갑작스레 경질되고 구단도 시즌을 포기하는 쪽이었으니까. 감독이 시즌 끝까지 중심을 잡아주는 것과 그렇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선수들의 체감온도는 정말 달라. 나 또한 프로 데뷔 처음으로 감독 중도 경질을 경험했는데, 말 그대로 맥이 딱 풀리면서 머릿속이 깜깜해지더라. ‘이 와중에 내가 야구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가’, ‘감독님이 나갔는데 내가 무슨 염치로 안타 치고 웃고 얘기할 수 있지’ 등등 온갖 잡생각이 다 들었어. 팀 사령탑이 잘못되는 건 100% 선수 책임이니까. 선수가 야구 잘했으면 감독이 중도에 왜 사임하겠니. 선수들이 결국 못했으니까 감독이 책임을 지는 거지.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거야. 감독이 작전을 내도 선수들이 수행하지 못하면 이기지 못하잖아? 그 시기에는 운동장에 나가기도 싫고 정말 몸이 축축 늘어져서 잠만 자고 싶고 그랬어. 사실 내가 8월까지 4할 타율 언저리에 머물 수 있던 것은 나 때문이 아니었어. 4할을 치려고 친 게 아니라 팀을 생각하다 보니 4할이 됐던 거지. 4번 타자이다 보니 2회 선두타자로 나올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내가 치거나 볼넷을 골라서 출루해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어. 주자 있을 때면 내가 무조건 해결하려고 했고. 어떻게든 상대 투수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나쁜 공에는 참고 그랬지. 상대 투수는 절대 좋은 공을 던지지 않았는데도 집중하고 독하게 야구를 했어. (부연설명: 허구연 <문화방송> 야구해설위원 등 전문가들은 김태균의 앞뒤로 조금 더 강한 타자들이 있었다면 올해 4할은 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화 타선이 약해서 투수들의 견제가 김태균에게만 몰렸는데도 타격 1위 성적을 거둔 것은 그래서 대단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감독님 경질되고 그러는 거 겪다 보니까 지금껏 팽팽하게 유지했던 긴장감이나 마음가짐이 한순간에 풀려버렸어. 어차피 끝났는데 내가 바동거려봤자 달라지는 게 있나 싶었던 거지. 허탈감이랄까, 의욕상실이랄까.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져버렸어. 나도 팀 성적보다는 개인 성적에 더 신경쓰게 됐지. 그러다 보니 볼넷보다는 어떻게든 안타를 치고 싶어졌어. 상대 투수들은 예전처럼 똑같이 좋은 공을 잘 안 던졌는데도 나는 내 성적을 올리기 위해 볼카운트 3(볼)-0(스트라이크)이어도 그냥 휘둘렀지. 비슷하면 그냥 방망이가 막 나갔어. 좋은 공을 못 치니까 타율도 떨어졌고. 내 스스로 무너져버린 거야. 누굴 탓할 것도 없어.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그래서 후회 같은 것은 전혀 없어. 야구를 대충 한 것도 아니고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그리고 또 한번의 깨달음이 있었지. 역시 야구는 개인플레이하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을 부리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구나 하는 거. 그래도 후반기에 들어서 욕심을 내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막판 즈음에서 어느 정도 감이 오더구나. 내년 시즌에 대한 희망을 미리 봤다고나 할까. 그래서 기대감도 생긴단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일본에서 1년 반 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타격 기술이 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반대야. 일본에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내 스윙 메커니즘을 완전히 잃어버렸거든. 기술적으로 망가진 상태였다고 봐야 해. 하지만 힘든 일본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게 있었어.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이니까 야구 하는 거였고, 잘하면 좋고 못하면 말고 하는 생각이 강했거든. 그런데 일본에서는 야구를 잘하고 싶어도 못했으니까. 일본에서 실패하고 돌아와서 괜히 나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던 네 엄마(김석류 전 아나운서)한테도 미안했고. 그 미안함을 갚기 위해서라도 정말 올해 야구를 잘해야겠다 싶어서 어느 때보다도 야구만 생각했던 한 해였던 것 같아. 야구 때문에 밥을 맛있게 먹고, 야구 때문에 잠도 못 이루고 밥도 못 먹던 날이 숱하게 많았거든. 오죽하면 아빠 얼굴에 기미, 뾰루지가 가실 날이 없었겠니.
다음주에는 문학구장으로 포스트시즌 구경이나 가야겠어. (정)근우가 얼마나 잘하는지 봐야지. 예전에도 다른 팀의 포스트시즌 경기 현장에 가곤 했어. 야구를 보는 것도 야구선수가 해야 할 일이니까. 다른 선수들의 수비 모습이나 타격하는 것을 보면 야구 보는 시야가 넓어지는 것도 같아. 내년 시즌에는 우리도 가을야구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지.
이제 효린이도 15일이면 만 한 살이 되는구나. 14일 돌잔치 기대되니? 태어나서 눈만 깜빡이던 효린이가 1년 동안 뒤집고 기고 서고 하는 과정을 배운 것처럼 아빠도 올해 한 움큼 더 자란 것 같구나. 한화도 마찬가지 아닐까. 걸음마 배우는 아이처럼 한 단계 한 단계 발전해 나가면 나날이 희망이 쌓여서 기적도 일궈낼 수 있겠지. 독수리가 비상하는 날, 효린이도 야구장에 있었으면 좋겠구나. 아빠도, 효린이도 다 같이 힘내자. 그럼 안녕~. <끝>
정리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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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끝났으니 다시 시작이지 효린아, 어느덧 2012시즌이 다 끝났구나. 포스트시즌이 한창이지만 올해도 아빠 팀은 4강에 들어가지 못했단다. 올해는 다를 줄 알았는데 역시 힘이 부치는구나. 아무래도 선수층이 엷은 게 큰 것 같아. 아빠 기분은 어떻냐고? 이상하리만치 속이 후련하단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복잡하고 힘들었던 시즌이어서 그런가. ‘드디어 끝났구나’ 하는 마음? 이제 모든 게 끝났으니 다시 시작할 일만 남았겠지. 마침 한국시리즈에서 10차례 우승하신 김응용 감독님이 새로 오신다고 하시니 팀 체계가 잡혔으면 좋겠구나. 시즌 4할에 대한 미련은 그다지 없단다. 4할 칠 실력이 안 되니까 어쩔 수 없던 거겠지. 그게 아빠 실력이고, 우리 팀이 꼴찌한 것도 우리 팀 실력이고. 새로운 감독님 밑에서 잘 준비해서 내년에는 7등이라도 했으면 싶다. 내년에는 엔씨(NC)마저 1군에 들어와서 9개 팀이잖아. 사실 꼴찌 하던 팀이 한순간에 4등으로 올라가기는 쉽지 않아. 7등, 6등 하다가 4등 하고 그러는 거지. 거물급 신인이 들어오거나 자유계약선수(FA) 영입으로 팀 전력이 상승하지 않는 이상 팀 순위가 올라가는 것은 어렵다고 봐야 해. 1등 하다가 꼴등 하기는 쉬워도, 꼴등 하다가 1등 하기는 쉽지 않거든. 1등 하다가 떨어지는 것은 한순간이지만, 꼴등 하다가 1등 하는 것은 한순간일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야. 막판에 4할이 왜 좌절됐느냐고? 하긴 시즌 마지막 타율(0.363)을 보니 진짜 많이 미끄러지기는 했네. 9~10월 타율이 0.244였으니까. 지금 와서 말하자면, 8월 말에 솔직히 ‘멘붕’(멘탈붕괴) 상태였어. 한마디로 정신줄을 놨지. 한대화 감독님이 갑작스레 경질되고 구단도 시즌을 포기하는 쪽이었으니까. 감독이 시즌 끝까지 중심을 잡아주는 것과 그렇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선수들의 체감온도는 정말 달라. 나 또한 프로 데뷔 처음으로 감독 중도 경질을 경험했는데, 말 그대로 맥이 딱 풀리면서 머릿속이 깜깜해지더라. ‘이 와중에 내가 야구를 열심히 해야 하는 건가’, ‘감독님이 나갔는데 내가 무슨 염치로 안타 치고 웃고 얘기할 수 있지’ 등등 온갖 잡생각이 다 들었어. 팀 사령탑이 잘못되는 건 100% 선수 책임이니까. 선수가 야구 잘했으면 감독이 중도에 왜 사임하겠니. 선수들이 결국 못했으니까 감독이 책임을 지는 거지. 야구는 선수들이 하는 거야. 감독이 작전을 내도 선수들이 수행하지 못하면 이기지 못하잖아? 그 시기에는 운동장에 나가기도 싫고 정말 몸이 축축 늘어져서 잠만 자고 싶고 그랬어. 사실 내가 8월까지 4할 타율 언저리에 머물 수 있던 것은 나 때문이 아니었어. 4할을 치려고 친 게 아니라 팀을 생각하다 보니 4할이 됐던 거지. 4번 타자이다 보니 2회 선두타자로 나올 때가 많았고 그때마다 내가 치거나 볼넷을 골라서 출루해야지 하는 생각이 강했어. 주자 있을 때면 내가 무조건 해결하려고 했고. 어떻게든 상대 투수와의 싸움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나쁜 공에는 참고 그랬지. 상대 투수는 절대 좋은 공을 던지지 않았는데도 집중하고 독하게 야구를 했어. (부연설명: 허구연 <문화방송> 야구해설위원 등 전문가들은 김태균의 앞뒤로 조금 더 강한 타자들이 있었다면 올해 4할은 쳤을 것이라고 말한다. 한화 타선이 약해서 투수들의 견제가 김태균에게만 몰렸는데도 타격 1위 성적을 거둔 것은 그래서 대단하다고 평가받는다.) 그런데 감독님 경질되고 그러는 거 겪다 보니까 지금껏 팽팽하게 유지했던 긴장감이나 마음가짐이 한순간에 풀려버렸어. 어차피 끝났는데 내가 바동거려봤자 달라지는 게 있나 싶었던 거지. 허탈감이랄까, 의욕상실이랄까. 그때부터 모든 게 달라져버렸어. 나도 팀 성적보다는 개인 성적에 더 신경쓰게 됐지. 그러다 보니 볼넷보다는 어떻게든 안타를 치고 싶어졌어. 상대 투수들은 예전처럼 똑같이 좋은 공을 잘 안 던졌는데도 나는 내 성적을 올리기 위해 볼카운트 3(볼)-0(스트라이크)이어도 그냥 휘둘렀지. 비슷하면 그냥 방망이가 막 나갔어. 좋은 공을 못 치니까 타율도 떨어졌고. 내 스스로 무너져버린 거야. 누굴 탓할 것도 없어. 내가 선택한 것이니까. 그래서 후회 같은 것은 전혀 없어. 야구를 대충 한 것도 아니고 정말 열심히 했으니까. 그리고 또 한번의 깨달음이 있었지. 역시 야구는 개인플레이하면 욕심이 생기고, 욕심을 부리면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구나 하는 거. 그래도 후반기에 들어서 욕심을 내면서 여러 가지 시도를 해봤는데 막판 즈음에서 어느 정도 감이 오더구나. 내년 시즌에 대한 희망을 미리 봤다고나 할까. 그래서 기대감도 생긴단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일본에서 1년 반 동안 선수생활을 하면서 타격 기술이 늘었다고 하지만 오히려 반대야. 일본에서 나름대로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내 스윙 메커니즘을 완전히 잃어버렸거든. 기술적으로 망가진 상태였다고 봐야 해. 하지만 힘든 일본 생활을 하면서 느낀 게 있었어. 한국에 있을 때는 내가 지금껏 해왔던 것이니까 야구 하는 거였고, 잘하면 좋고 못하면 말고 하는 생각이 강했거든. 그런데 일본에서는 야구를 잘하고 싶어도 못했으니까. 일본에서 실패하고 돌아와서 괜히 나 때문에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좋지 않은 소리를 들었던 네 엄마(김석류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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