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 에워싼 은·동의 미소 2012 런던올림픽 양궁 여자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딴 기보배(가운데) 선수가 2일(현지시각) 런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은메달·왼쪽)과 마리아나 아비티아(동메달)와 함께 메달을 목에 건 채 서 있다. 런던/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양궁 감독 넷중 한명꼴 한국인
40년 걸린 기술 10년만에 익혀
국민 기대 여전해 ‘금 스트레스’
4년뒤 8연패 최고기록 장담못해
40년 걸린 기술 10년만에 익혀
국민 기대 여전해 ‘금 스트레스’
4년뒤 8연패 최고기록 장담못해
“휴~.”
2012 런던올림픽 단체전에 이어 개인전 금메달까지 차지하며 세계 최강의 자존심을 지킨 한국 여자양궁대표팀. 대회를 마치며 기쁨보다는 타이틀을 지켰다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어야만 했다. 반면, 한국인 이웅(사진) 감독의 지도 아래 은·동메달을 일궈내며 역사상 첫 양궁 메달을 거머쥔 멕시코는 흥분의 도가니였다.
기보배(24·광주시청)는 2일 밤(현지시각) 여자개인전 결승에서 멕시코의 아이다 로만과 세트점수 5-5(27:25/26:26/26:29/30:22/26:27) 동점을 이룬 뒤, 슛오프 한 발 싸움에서 간신히 이겨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기보배가 먼저 8점을 쏘고, 아이다 로만도 8점을 쏘았지만, 기보배의 화살이 좀더 과녁 중앙에 1㎝ 정도 가깝게 꽂히며 운명이 갈렸다. 아이다 로만이 마지막 격발에서 실수하지 않았다면 금메달은 그의 몫이 될 뻔했다.
백웅기 한국 여자대표팀 감독은 “4년 뒤 누가 대표팀 감독을 맡을지 모르지만 다른 나라의 도전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부담감이 클 것”이라고 했다. 그는 불면증과 감기 몸살에 어금니가 빠질 정도로 심한 금메달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선수들도 그동안 선배들이 쌓은 업적을 이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가장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기보배는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실패를 맛본 뒤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했다. 그때 선배들한테 너무 죄송했다”며 울먹였다. 그는 이어 “이제는 선배들 앞에 당당하게 설 수 있을 것 같다. 그게 가장 기쁘다”고 했다.
한국 여자양궁은 1988년 서울올림픽에서 단체전이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뒤 금메달을 한번도 놓치지 않으며 이번 대회까지 7회 연속 우승을 이어갔다. 만약 4년 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서 단체전 금메달을 딴다면 올림픽 역사상 최고기록인 미국 육상 남자 400m 계주의 8회 연속 금메달과 타이가 된다. 그만큼 부담감은 더 크다. 박채순 여자팀 코치는 “양궁은 당연히 금메달을 따는 것으로 안다. 못 따면 역적이고, 따봐야 본전이다”라고 했다.
세계의 도전은 거세다. 여자양궁은 지난해 이탈리아 토리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 개인전에서 30년 만에 노메달의 수모를 당했다. 단체전에서도 준결승에서 인도에 져 동메달에 그쳤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올림픽부터 이어온 올림픽 개인전 연속 금메달 기록도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깨졌다.
한국의 적은 ‘한국’이다. 이번 대회 출전 40개국 가운데 11개국 감독이 한국인이다.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한국에 ‘토리노의 굴욕’을 안긴 인도는 임채웅 감독이 오랫동안 지도한 팀이다. 이번에 돌풍을 일으킨 멕시코도 이웅 감독이 1997년부터 15년이나 지도했다. 그는 “세계 양궁의 전력평준화가 급속도로 진행돼 이제는 실력이 종이 한장 차이”라고 했다. 이 감독은 이번 쾌거 뒤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한테서 직접 축하 인사를 받았다. 베이징올림픽 여자개인전 결승에서 한국의 박성현을 꺾은 중국의 장쥐안쥐안은 한국인 지도자가 조련한 선수로 알려졌다.
남자도 마찬가지. 한국의 올림픽 4회 연속 남자단체전 금메달을 좌초시킨 지도자는 한국인이다. 준결승전에서 한국의 발목을 잡은 미국 사령탑은 1990년대 한국 대표팀을 이끌다가 호주를 거쳐 미국에 정착한 이기식 감독이고, 미국을 꺾고 우승한 이탈리아 사령탑도 한국인 석동은 감독이다.
외국에 진출한 한국인 지도자들은 한국에서 배운 양궁을 그 문화에 맞게 훈련법을 개발해 급성장하고 있다. 이웅 감독은 “긴장할 때도 근육을 평소처럼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는 특수훈련을 개발했다”고 말했다.
현재 남녀 세계랭킹 1위도 한국 선수가 아니다. 남자는 브래디 엘리슨(미국)이고, 여자는 디피카 쿠마리(인도)이다. 외국에 나간 한국인 지도자들은 “이제 한국 선수와 마주칠 때 더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다.
백웅기 감독은 “한국 지도자들이 외국에 나가 지도하면서 한국이 40년 걸려 쌓은 기술을 다른 나라는 10년 정도에 소화해 쫓아오고 있다”고 아쉬워했다.
런던/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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