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2관왕 기보배 인터뷰
8강에서 탈락한 이성진(27·전북도청)은 결승을 앞두고 초조해 하는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에게 다가갔다. 그는 “함께 있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포옹했다. 기보배는 “언니 몫까지 다하겠다. 자신있다”고 화답했다. 기보배가 금메달을 딴 뒤 울고 있는 그에게 언니 최현주(28·창원시청)와 이성진은 “축하한다”며 따뜻하게 끌어안았다.
3일 새벽(한국시각) 런던올림픽 양궁 경기가 열린 영국 런던의 로즈 크리켓 그라운드. 여자 단체전과 개인전을 석권한 한국의 세 낭자는 경기가 끝난 뒤 홀가분한 마음으로 <한겨레>와 인터뷰를 했다.
개인전과 단체전을 석권하면서 한국 선수단에서 처음으로 2관왕에 오른 기보배(24·광주광역시청)는 긴장한 탓에 “간밤에 잠을 잘 못잤다”고 털어놓았다.
- 금메달을 딴 소감은?
“내가 이렇게 운이 좋은 아이인지 몰랐다. 욕심부리지 않은 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 지난해 세계선수권 때 실패를 맛보고 마음을 다잡고 다시 시작했다. 선배들한테 너무 죄송했다(울음) 이제는 당당하게 선배들 앞에 설 수 잇을 것 같다. 그게 가장 기쁘다.”
- 컨디션은 어땠나.
“개인전이 열리기 이틀 전까지 감이 오질 않아서 걱정을 많이 했다. 점점 감을 찾아 다행이었다.”
- 어제 잠은 잘 잤나?
“잘 못 잤다. (긴장이 돼서) 중간중간에 몇번 깼다.
- 바람 때문에 힘들지 않았나.
- 최현주, 이성진 선수가 탈락한 뒤 혼자 남았을 때 심경은?
“최대한 신경쓰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언니들이 떨어진 것을 보면 경기에 지장이 있을까봐 언니들 경기를 일부러 안봤다.”
- 결승전 마지막 한 발이 8점이 되는 바람에 슛오프까지 갔는데 그때 심경은?
“항상 바람이 변수였다. 당황했다. 다시한번 기회가 있다는 마음으로 슛 오프에 임했다.”
- 슛오프 때 8점을 먼저 쏜 뒤 아이다 로만(멕시코)이 쏠 때 심경은?
“슛오프에 들어갈 때는 그동안 훈련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사실 큰 부담은 없었다. 그런데 내가 쏘기 직전에 바람이 불어서 많이 당황했다. 8점을 쏘고 놀랐는데, 우리 국민들은 얼마나 놀라셨을까 생각했다. 너무 긴장해서 마지막에 아이라 선수가 쏘는 것은 일부러 보지 않았다.”
- 금메달이 확정된 직후 어떤 생각이 들었나.
“저에게 금메달을 주시려고 좋은 일 있었던 것 같다.”
- 기보배 선수가 쏜 8점과 아이라 선수가 쏜 8점의 차이는 어느 정도인가.
“간격은 1㎝ 정도? 그 이상일 것 같다. 나는 9점에 가까운 아슬아슬한 8점이고, 아이라는 8.2점 정도다. 나랑 차이 많이 났다.”
- 바람 때문에 힘들지 않았나.
“바람이 불 때는 공격적으로 타임을 짧게(빨리) 쏘는 게 관건이다. 그런데 슛오프 때는 너무 공격적으로 쐈다.”
- 언니들한테 하고 싶은 말은?
“태릉선수촌에서 100일 가까이 동고동락하면서 힘들고 어려운 과정이 많았다. 그런데 저만 (개인전) 메달을 따서 미안하다.”
- 오늘 많이 운다. 어떤 의미의 눈물인가.
“기쁨의 눈물이고, 같은 팀원들 생각하면 아쉽고 미안해서 계속 복받친다. 저 혼자만 메달을 따게 되서…(울음)”
- 앞으로 뭐할 것인가.
“내일 남자 단체전 응원가서 목청터지게 응원하겠다.”
- 한국에 돌아가서 계획은?
“팀에 복귀해서 전국체전 준비를 해야 하니 어깨가 무겁다. 한국 선수들은 실력이 비슷하다.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라는 편견을 버려달라.(웃음)”
그는 이번 대회 한국선수단 첫 2관왕이 된 소감을 묻자 (2관왕을 의식하지 못한 듯 하다가 기자의 설명을 듣고) “영광스럽다”며 환하게 웃었다.
단체전 금메달의 일등공신 최현주(28·창원시청)는 “어깨가 부서질 때까지 활을 쏘고 싶다”고 당차게 말했다.
- 이번 대회를 통해 자신감을 얻었나.
“미운오리새끼에서 백조가 됐다는 <한겨레> 기사를 봤다. 시합 나오기 전에는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것인데 올림픽에서 내 몫을 한 것 같아 너무 행복하다.”
- 이번 대회 자신의 성적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을 때 몇 점을 줄 수 있나.
“단체전에서는 솔직히 100점 만점일 때 80점만 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런데 생각했던 것보다 다행히 잘 돼서 100점 만점을 줘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다. (금메달을 딴 것은) 친구들이 너무 잘 싸줘서 잘 된 것이다. 개인전은 너무 예상하지 못한 결과가 나와서 50점? 너무 일찍 떨어졌고 제 기록보다도 못 쐈기 때문이다.”
- 아쉬움은 없나.
“솔직히 단체전 (금메달을) 못따고 개인전만 땄다면 더 실망스러웠을 것이다. 하지만 단체 메달을 따서 이 아쉬움이 덜하다.”
- 앞으로 어떤 선수가 되고 싶나.
“몸관리를 더 잘 해서 높은 기록을 쏘고 싶다. 기록이 좋지 않았을 때 운이 없어서 그랬다는 말이 나올 수 있도록 그런 실력을 갖고 싶다.”
- 앞으로 목표는?
“제 인생의 목표를 이제 막 세웠고 솔직히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어깨가 좋지 않지만 어깨가 부서질 때까지 쏘고 싶다.
2004 아테네올림픽에 이어 두 차례 올림픽 단체전 금메달을 딴 이성진(27·전북도청)은 “런던이 좋은 추억으로 남을 것 같다”고 했다.
- 경기가 다 끝났는데 기분이 어떤가.
“홀가분하기도 하고, 후회되기도 한다.”
- 런던에 대한 기억은?
“제 생애 마지막 올림픽이기 때문에, 다시는 오지 않을 시간이기 때문에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좋은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 4년 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는 도전할 생각 없나.
“사실 여기까지 온 것도 기적이다. 리우는 도전은 해보겠지만 솔직히 자신은 없다.(웃음) 몸이 그렇게 좋지는 않아서….”
- 그래도 도전은 계속된는 건가?
“그렇다. 도전은 계속된다.”
런던/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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