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꿍쳐 놓았던 허벅지 힘을 폭발시키자 ‘전율’했다

등록 2012-06-26 19:57수정 2012-07-16 16:25

마라톤 국가대표 정진혁(22·건국대) 선수
마라톤 국가대표 정진혁(22·건국대) 선수
D-30 런던올림픽 가는 신세대 마라토너
‘이봉주 키즈’ 정진혁, 즐겁게 뛴다…기다려라 런던 포그!
한국기록 2분8초차 현역1위
육상 800m·1500m로 단련
지구력 더해 스피드도 갖춰

“이 선배 보며 달리고 또 달려
내가 그 자리 와 있어 즐겁다
런던서 역전의 추억 현실될것”

마지막 한바퀴. 꿍쳐 놓았던 허벅지 힘을 폭발시키기 시작한다. 한명을 따라잡고, 또 한명을 따라잡고…. 소년은 ‘라스트 게임’을 은밀히 즐겼다. 막판 스퍼트로 순위를 뒤집는 것. 온몸에 짜릿한 전율이 흐른다. 그래, 승부는 막판이다. 그것도 아슬아슬한 뒤집기.

남들은 고생했다고 위로하지만 소년은 속으로 너무 즐거웠다. 그 어떤 도움 없이 오로지 몸으로만 바람을 가르고, 남을 앞지르고, 결승점을 통과하는 즐거움은 사춘기 소년을 너무도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인간의 고통을 극대화한다는 육상 800m와 1500m는 그의 무대였다. 국내 중·장거리 최고 강자로 우뚝 섰을 때 서서히 새로운 목표가 다가왔다. 마라톤이었다.

“나는 이봉주 키즈다. 이봉주 선배를 보며 달리고 또 달렸다. 어느덧 내가 그 자리에 와 있다. 즐겁다. 너무 즐겁다.”

마라톤 국가대표 정진혁(22·건국대) 선수는 달리는 것이 즐겁다. 언론이 결승점에 고통스러운 표정으로 골인하는 마라톤 선수를 강조하는 것이 불만이다. 그에겐 달리는 것이 곧 즐거움이었다. 충남 예산의 웅산초등학교에는 유일한 운동부가 육상부였다. 100m, 200m, 멀리뛰기, 높이뛰기 등 모든 종목이 소년의 무대였다.

예산중학교 1학년 때부터 중거리 선수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그 기억은 잊을 수 없다. 고교(삽교) 2학년 때 전국체전에 출전했다. 몸 상태는 최고조였다. 경쟁자들을 막판에 한명씩 제치기 시작했다. 경쟁선수들을 모두 등 뒤로 따돌렸을 때 결승점은 나를 반겼다.” 결국 그는 ‘마라톤 사관학교’로 불리는 건국대에 스카우트됐다.

그의 장점은 스피드. 황영조나 이봉주 선수는 지구력이 장점이었다. 그러나 지구력만으로는 현대 마라톤의 선두에 설 수 없다. 타고난 스피드가 있어야 2시간5분대에 들어갈 수 있다. 신세대 마라토너 정진혁 선수는 그 스피드를 지니고 있다. 그가 지금까지 마라톤 풀코스 42.195㎞를 완주한 것은 불과 5번. 그러나 그는 2시간9분28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 이는 국내 역대기록 7위이면서 현역 랭킹 1위이다. 선배 마라토너들이 고교 졸업 후 실업팀에 들어가 마라톤에 일찍 몰두하며 조로한 반면, 정진혁 선수는 대학에서 중·장거리를 몸에 익히며 뒤늦게 마라톤에 뛰어들었다. 이는 마라톤 강국인 케냐나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정통적인 성장 코스이다. 온몸의 근육에 스피드 인자가 굳게 달라붙어야 세계 정상에 접근할 수 있다. 이제 이봉주 선수의 기록(2시간7분20초·한국 최고기록)에 2분4초 차로 접근했다. 세계 기록 2시간3분38초(케냐 패트릭 마카우)는 아직 넘볼 수 없지만 성장 가능성은 충분하다. 정진혁 선수는 지난 한달 중국 쿤밍의 해발 1800m의 저산소 고지에서 지구력 훈련을 했고, 현재는 일본 홋카이도 지토세에서 마무리 훈련 중이다.

“마라톤 승부는 30㎞ 이후에서 나온다. 세번째로 풀코스에 도전했을 때 35㎞ 지점에서 처지며 우승을 놓쳤다. 자꾸 어릴 때 즐기던 ‘라스트 게임’의 즐거운 추억이 떠오른다. 런던 마라톤에서 그 즐거움이 현실화될 것이다.”

현실적인 런던올림픽 목표는 10위 안에 드는 것. 그러나 비가 자주 오는 런던의 날씨는 정진혁 선수에겐 기회이다. 케냐 등 아프리카 선수들은 습도가 높으면 기량이 뚝 떨어지기 때문이다.

“경기 당일 비가 오면 정진혁은 메달도 가능하다. 그는 진정으로 달리는 것을 즐기는 희귀한 선수이다.” 정진혁 선수를 마라토너로 발굴, 육성한 황규훈 대한육상경기연맹 전무 겸 부회장의 말이다.

글·사진 이길우 선임기자 niha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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