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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스포츠일반

독설이여 영원하라

등록 2012-03-02 22:25수정 2012-04-18 11:00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의 앨릭스 퍼거슨(왼쪽)과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 평균 재임기간이 3년이 채 못 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십수년 넘게 지휘봉을 잡고 있는 둘은 전세계 축구사를 통틀어 최고의 축구감독으로 추앙받아 왔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FC의 앨릭스 퍼거슨(왼쪽)과 아스널의 아르센 벵거 감독. 평균 재임기간이 3년이 채 못 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십수년 넘게 지휘봉을 잡고 있는 둘은 전세계 축구사를 통틀어 최고의 축구감독으로 추앙받아 왔다.
[토요판] 승부 / 퍼거슨 vs 벵거
▶ “나의 꿈은 타이틀을 모으는 게 아니라 가장 완벽한 축구가 그라운드 안에서 5분만이라도 지속되는 것을 보는 것이다.”(벵거) “나이가 들면 열망은 사그라질 수 있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 지금까지 나한테 그런 징후가 있던 적은 없었다.”(퍼거슨) 지금은 잠시 ‘휴전’ 상태지만 여전히 ‘배가 고픈’ 둘이기에 아직 이들의 승부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후반 추가시간 애슐리 영이 8번째 골을 성공시켰을 때 중계 카메라는 짓궂게 아르센 벵거(62) 아스널 감독을 비췄다. 입술을 깨물며 표정을 일그러뜨린 그는 초점 없는 시선으로 그라운드를 응시하고 서 있었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2시간을 달려와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트래퍼드 한편에 자리잡은 아스널 팬들은 절규라도 하듯 두 손을 머리에 움켜쥔 채 고개를 숙였다. 2011년 8월29일, 2-8 치욕적 패배. 그날, 벵거의 아스널은 뛰고자 하는 욕망이 거세된 팀 같았다. 그리고 지난 1월23일. 아스널은 안방에서 맨유를 다시 만났다. 후반 36분 대니 웰벡의 결승골로 맨유가 2-1로 앞선 채 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자 6만석이 꽉 들어찬 에미리츠 스타디움은 일순 정적에 휩싸였다. 마치 1997년 이후 10년 가까이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를 양분해온 맨유와 아스널의 라이벌 관계가 이날로써 완전히 마침표를 찍기라도 한 것처럼. 2009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보면 최근 10경기에서 아스널은 맨유를 상대로 단 1승(1무8패)밖에 챙기지 못했다. 앨릭스 퍼거슨(70) 맨유 감독은 여느 때처럼 외투 깊숙이 손을 넣은 채 벵거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며 알듯 모를듯 한 묘한 미소를 띠고서 돌아섰다. ‘여보게 친구, 이젠 더 이상 적수가 못 되겠구먼.’

퍼거슨과 벵거.

그 이름만으로 더는 설명이 필요 없는 금세기 최고의 축구 감독이다. 평균 재임기간이 3년이 채 못 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십수년 넘게 지휘봉을 잡아온 둘은 전세계 축구사를 통틀어 최고로 추앙받아 왔다. 국제축구역사통계재단(IFFHS)이 지난 2월 감독·선수·기자 등 축구 전문가를 상대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퍼거슨은 평점 166점을 얻어 최고 감독 자리에 올랐고, 벵거가 퍼거슨에 단 1점 모자라는 165점으로 그 뒤를 따랐다. 승부사 조제 모리뉴(레알 마드리드·154점)가 3위, 2002년 한·일월드컵에서 한국을 4강에 올려놓은 거스 히딩크는 이들보다 점수가 한참 모자라는 112점으로 5위에 머물렀다.

한 팀서 각각 25년, 15년 지휘
“맨유가 역사를 망쳐놨다”
“아스널은 최악의 루저”
경찰까지 개입했던 그 설전

입이 근질거리면 일본 축구나 떠들어라?

승부의 세계에서 성적표는 곧 감독의 살생부다. 1986년 11월6일 론 앳킨슨 감독 후임으로 맨유의 지휘봉을 잡은 퍼거슨은 25년 동안 크고 작은 37개의 대회를 석권하며 전설을 써내려왔다. 1996년 10월1일 아스널 역사상 최초로 외국인 감독으로 부임한 벵거 역시 15년 동안 11개의 타이틀을 따내고 아스널에서 가장 성공한 감독으로 자리매김했다. 둘이 장수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지금은 벵거의 아스널이 주춤하면서 잠시 ‘휴전’ 상태에 놓여 있으나, 그동안 퍼거슨과 벵거의 충돌은 언제나 전쟁 그 이상이었다.

둘은 처절한 승부 앞에서 항상 서로를 향해 으르렁댔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지독히도 닮은꼴이다. 둘 모두 이방인 꼬리표를 달고서 순혈주의 의식이 강한 잉글랜드에서 성공 신화를 써냈다. 첼시나 맨체스터 시티처럼 천문학적인 돈을 퍼부어 스타를 데려오기보다는 유망주를 길러내 스타로 키우는 철학도 공통점이다. 또 특유의 카리스마로 개성 강한 스타들을 장악하고, 전체를 위해 희생할 준비가 덜 된 선수는 과감하게 내치는 점도 닮았다. “팀보다 큰 선수는 없다”는 퍼거슨의 말과 “성공에 앞서 하나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는 벵거의 말은 그래서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들이 함께 달려온 15년 동안 프리미어리그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축구 리그로 우뚝 섰다. 퍼거슨과 벵거의 승부 속으로 들어가보자.

그들의 독설은 이렇게 시작됐다. “일본에서 온 풋내기가 잉글랜드 축구에 대해 뭘 알겠는가?” 퍼거슨은 1996년 9월 아스널이 일본 J리그 나고야 그램퍼스 감독이었던 벵거를 새 사령탑에 앉히자 콧방귀를 뀌었다. 당시 잉글랜드 언론도 “아르센이 누구?”(Arsene Who?)라며 프랑스 출신의 벵거를 조롱하기 일쑤였다. 하지만 벵거는 과거 AS모나코(프랑스)와 나고야 감독 시절부터 다른 팀 감독과의 미묘한 심리 플레이를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줄 아는 지휘관이었다. 프리미어리그 새내기 감독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당시 맨유는 챔피언스리그와 프리미어리그를 오가는 빡빡한 일정 속에 선수들의 체력이 바닥난 상황이었다. 퍼거슨은 잉글랜드프로축구연맹에 프리미어리그 기간 연장을 요구했다. 한데 벵거가 갑자기 “터무니없다. 퍼거슨 말대로라면 프리미어리그는 비웃음을 살 것”이라고 말했다. 격노한 퍼거슨은 “쥐뿔도 모르는 풋내기가 설친다. 입이 근질거리면 일본 축구에 대해서나 떠들어라”라고 응수했다. 천하의 퍼거슨 앞에서 어지간한 담력이 아니라면 꼬리를 내리는 게 정상이지만, 벵거는 달랐다. “퍼거슨은 쓸데없는 핑계 거리를 찾을 생각일랑 접고, 경기에나 집중하라”며 되레 강하게 나왔다. 2008년 벵거의 일대기 <아르센 벵거>(한국어판은 2010년 출간)를 펴낸 영국의 스포츠작가 톰 올드필드는 “퍼거슨이 호적수를 제대로 만났다”고 했다.

퍼거슨과 벵거는 둘이 들어올린 우승 트로피만 놓고 보면 라이벌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전세계 최고 프로 구단인 맨유와 아스널에서 각각 역사상 가장 성공한 지휘관으로 불리는 둘을 팬들은 최고의 앙숙으로 기억하고 있다. 둘의 살벌한 설전이 또 하나의 관전 포인트로 자리잡았기 때문이다.

퍼거슨은 벵거 부임 첫해인 1996~1997 시즌 프리미어리그 아스널과의 맞대결을 모두 챙기고 우승을 차지하며 ‘말만 앞세운’ 벵거의 코를 납작하게 눌렀다. 하지만 퍼거슨의 웃음이 노기로 바뀌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벵거는 1997년 여름 이적시장에서 마르크 오버르마르스와 에마뉘엘 프티, 니콜라 아넬카를 데려와 팀 재구축(리빌딩)에 나섰고, 서서히 ‘영원한 제국’ 맨유를 옥죄기 시작했다.

퍼거슨-벵거 우승 횟수 (※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르센이 누구야?”에서 “프랑스 혁명”까지

1997~1998 시즌이 중반을 향해 치닫던 1997년 11월2일. 맨유와의 리그 안방경기를 앞두고 벵거는 호기롭게 외쳤다. “지금 나는 분개를 느낀다. 도대체 모두 맨유, 맨유만 외칠 뿐이다. 이 나라에 축구팀이 맨유밖에 없는가. 곧 우리의 진정한 힘을 보여주겠다.” 그리고 일주일 뒤인 11월9일 맨유는 아스널의 홈 하이베리를 찾았다. 2-2로 맞선 후반 37분. 잉글랜드팀 주장 출신의 미드필더 데이비드 플랫이 극적인 헤딩골을 터뜨리고 결국 아스널이 3-2로 이겼다. 이 경기는 훗날 프리미어리그 역사를 논할 때 일대 변곡점으로 손꼽히는 경기다. 벵거가 프리미어리그 입성 뒤 처음으로 퍼거슨을 꺾은 날이면서, 동시에 맨유의 독주 시대가 종언을 고한 날이기도 했다.

아스널은 기세를 몰아 그해 맨유와의 맞대결을 모두 이기고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잉글랜드축구협회(FA)컵까지 쓸어 담았다. 벵거는 아스널에서 외국인 감독으로 처음 ‘더블’(프리미어리그·FA컵 우승)을 달성한 감독에 이름을 아로새겼다.

“아르센이 누구야?”라며 조롱을 퍼부었던 언론은 슬그머니 “프랑스 혁명”(French Revolution)이라고 치켜세우기 바빴다. 스포츠 평론가 정윤수씨는 당시의 아스널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벵거 감독은 미드필드를 완벽하게 장악해 상대팀의 혈관을 모조리 터뜨린 뒤 티에리 앙리에게 종지부를 찍게 함으로써 맨유를 몰아세웠다. 철저히 무릎 아래 패스로 일관하며 결정적인 순간에 앙리와 베르흐캄프가 한 방을 터뜨린다. 그들의 스피드는 전후반 합쳐 90분 이상 뛰도록 독려하는 벵거 감독의 ‘속도전’의 개가다.”

비록 벵거와의 화해 무드가 조성된 뒤이긴 하지만 2007년 퍼거슨은 자서전 <매니징 마이 라이프>(Managing My Life·한국어판 <무한인생경영>)를 통해 당시의 벵거를 이렇게 평가했다. “시즌 막판 그들은 무려 10번의 승리를 챙겼다. 정말 대단한 팀이 아니고선 잉글랜드처럼 거친 플레이가 판치는 지옥의 리그에서 그런 초인적인 괴력을 발휘할 수 없을 것이다. 벵거 감독은 영국 선수와 외국 선수를 결속력 있고 의욕 만점의 팀으로 융합해냈다는 점에서 아무리 칭찬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훗날 퍼거슨의 평가와는 무관하게 아스널이 1997~1998 시즌 프리미어리그 우승을 차지하면서 둘의 관계는 더욱 악화됐다. 1999년 4월14일. 퍼거슨과 벵거는 FA컵 준결승에서 다시 만났다. 1-1로 맞선 후반 종료 직전. 페널티킥 지점에 공을 놓은 아스널의 데니스 베르흐캄프가 잠시 숨을 골랐다. 양팀 팬들도 함께 숨을 멈췄다. 베르흐캄프가 찬 공은 골문 구석으로 정확하게 날아가는 듯했으나 어느새 맨유의 문지기 페테르 슈메이셸의 손이 날아와 막아냈다. 결국 승부는 연장으로 넘어갔고, 연장도 거의 끝나가던 후반 14분 라이언 긱스가 60m 넘게 단독 드리블에 이어 마법 같은 왼발 슛으로 지옥 같은 승부를 끝냈다. 경기가 끝난 뒤 퍼거슨은 벵거에게 악수를 청했으나 벵거가 이를 무시한 채 라커룸으로 향했고, 퍼거슨은 즉시 “벵거는 영예롭게 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며 비난했다. 그해 퍼거슨은 FA컵 우승, 프리미어리그 우승과 함께, 바이에른 뮌헨을 극적으로 꺾고 챔피언스리그 트로피마저 들어올리며 잉글랜드 클럽 가운데 최초로 ‘트레블’(3관왕) 위업을 달성했다. 퍼거슨은 영국 왕실로부터 기사 작위를 받은 뒤 “내 축구 인생의 절정은 3관왕을 달성한 때였다. 하지만 그때가 마지막 정상에 오른 순간이라고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 생각은 내 본능에 반한다. 경기에서 승리하겠다는 내 열망은, 숨쉬는 것처럼 내 마음대로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그것은 내가 숨쉬는 것처럼 당연한 것이어서 그런 열망이 사라지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베컴 폭행 사건 vs 대영제국 4등 훈장

21세기에 접어든 뒤에도 둘은 서로를 향한 독설을 거둬들이지 않았고, 맨유와 아스널전은 숱한 화제를 낳았다. 축구 스타 데이비드 베컴 역시 라이벌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축구 인생의 오점을 남겨야 했다. 2003년 2월15일. 맨유와 아스널은 FA컵 5라운드에서 만났다. 경기는 아스널의 2-0 승리로 끝났지만, 이튿날 신문 헤드라인을 장식한 이는 벵거와 골을 넣은 실뱅 빌토르드(윌토르)가 아니라 퍼거슨과 베컴이었다. 경기가 끝난 뒤 화가 난 퍼거슨이 라커룸에서 축구화를 걷어차 베컴의 눈두덩을 맞힌 것이었다. 피까지 줄줄 흘린 베컴도 퍼거슨을 향해 소리를 높였고, 긱스와 뤼트 판니스텔로이 등이 나서서 말려야만 했다. 퍼거슨 감독이 직접 사과했으나 결국 그해 여름에 베컴은 퍼거슨을 등지고 레알 마드리드에 새 둥지를 틀었다. 반면 벵거는 그해 FA컵 2연패에 성공하면서 ‘대영제국 4등 훈장’을 받았다.

터질듯 말듯 하던 화약고는 2003~2004 시즌이 막 닻을 올린 2003년 9월21일 비로소 폭발했다. 맨유의 판니스텔로이가 아스널의 주장 파트리크 비에라와 공중공을 다투다 비에라를 엉덩이로 눌렀다. 화가 난 비에라가 판니스텔로이에게 위협적인 동작을 취하자 판니스텔로이는 이를 즉시 주심에게 알렸고, 비에라는 결국 퇴장을 당했다. 0-0으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지만, 경기가 끝난 뒤 둘의 신경전은 이어졌다. 아스널의 마틴 키언이 판니스텔로이의 뒤통수를 가격하자, 두 팀 선수들이 한데 뒤엉켜 패싸움으로 번졌다. 퍼거슨은 “아스널의 폭력성이 만천하에 드러났다”며 불만을 드러냈고, 이 사건으로 퍼거슨과 벵거의 관계는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고 말았다. 하지만 외부의 쏟아지는 비난에도 벵거는 선수들을 감싸고돌았고, 아스널은 이후 더 단단해졌다. 결국 벵거는 그해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38경기(26승12무) 무패 우승의 신화를 창조했다.

아스널은 여세를 몰아 2004~2005 시즌 초반 9경기도 승승장구하며 2002~2003 시즌 마지막 2경기를 포함해 프리미어리그 사상 최장인 49경기 무패 행진을 이어갔다. 이제 기념비적인 50경기 무패 달성을 위해 남은 건 단 1경기였다. 하지만 하필 상대가 맨유였다. 2004년 10월24일 맨유의 홈인 올드트래퍼드에서 둘이 만났다. 경기 전 벵거는 라커룸에 모인 선수들에게 “기념비적인 50경기 연속 무패 기록을 달성하기에 맨유는 더없이 좋은 먹잇감이다. 보기 좋게 꺾고서 기록을 이어나가자”고 독려했다. 하지만 결과는 맨유의 2-0 승리로 끝났고, 경기가 끝난 뒤 그 유명한 ‘뷔페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사달은 0-0으로 맞선 후반 18분 웨인 루니가 얻어낸 페널티킥에서 비롯됐다. 느린 화면을 다시 봐도 명백한 할리우드액션이었다. 하지만 주심은 그대로 페널티킥을 인정했고, 판니스텔로이가 이를 성공시켰다.

퍼거슨의 얼굴에 피자 한 조각이 날아온 건 맨유 선수들이 막 라커룸의 뷔페 식당으로 향할 때였다. 복도에서 분을 삭이지 못한 채 식식거리던 아스널 선수들은 함포사격이라도 하듯 ‘적진’을 향해 피자를 퍼부었다. 그중 한 조각이 적장의 얼굴에 정통으로 맞았고 온갖 토핑이 파편처럼 검은 양복으로 튀었다. 지휘관의 굴욕에 이성을 잃은 맨유 선수들이 곧바로 토마토 수프와 포도주로 ‘응사’했고, 상황이 종료됐을 땐 양쪽 모두 우스꽝스러운 몰골만 남았다. 경기 뒤 벵거는 “맨유가 역사를 망쳐놨다”며 흥분했고, 퍼거슨은 “아스널이 최악의 루저라는 사실을 스스로 증명해 보인 날”이라고 비아냥댔다. 이듬해, 퍼거슨과 벵거의 설전이 극단으로 치닫자 영국 경찰이 직접 나서 자제를 요청할 정도였고, 결국 벵거 감독은 “퍼거슨이 시비를 걸더라도 앞으로 침묵으로 대응하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맨유 프리미어리그 독주시대
아스널의 49경기 무패신화
승리 열망은 숨쉬기와 같았다

‘아스널의 무관’ 속에 앙숙관계도 희석되나

아스널이 2004~2005 시즌 FA컵 우승 이후 6시즌 넘게 무관에 그치면서 퍼거슨과 벵거의 앙숙 관계도 희석되는 모습이다. 퍼거슨과 벵거는 각각 칠순과 환갑을 넘기면서 독설도 거둬들였다. 실수에 좀더 관대해지고 이해심도 더 깊어졌을 터다. 벵거는 지난해 11월 취임 25돌을 맞은 퍼거슨에 대해 “더 무슨 말이 필요 있나? 25년 동안 최고의 무대에서, 그리고 한 클럽에서 이런 일을 해낸 사람은 없었으며 물론 앞으로도 나오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퍼거슨은 최근 성적 부진으로 비난 여론에 휩싸인 벵거에 대해 “벵거는 15년간 아스널과 함께했다. 그는 아스널을 클럽 역사상 최고의 팀으로 만들었다. 지난 6년간 무관이었다고 해서 그의 업적이 지워지진 않는다”고 말했다.

퍼거슨과 벵거. 둘의 가시 돋친 설전은 언제나 볼썽사납게 끝났지만 이들의 경쟁의식이 프리미어리그의 질적 향상을 가져왔다는 평가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들은 강인한 근성, 빠른 판단력과 통찰력, 동료와의 끈끈한 관계를 무기 삼아 프리미어리그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축구 리그로 키워냈다. 밥 먹듯 처절한 승부를 벌이는 정글 속에 살고 있어도, 결국 그들 역시 우리네 모습과 다를 바 없다. 축구만 아는 냉혈한이 아니라 따뜻한 피가 흐르는 인간이었다.

“경기에서 지고 집에 온 날은 언제나 속이 무겁고 쓰리다. 아무리 노력해도 끔찍한 감정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오랜 경험을 통해 겨우 패배의 아픔과 함께 사는 법을 터득했다. 그러고 나니 가정생활도 좀 편해졌다.”(벵거)

“내가 나고 자란 고향의 노동자들이 가장 소중히 여긴 건 의리였다. 나는 먼 훗날 이웃간의 정이 넘치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 비록 그곳은 고된 삶의 연속이었지만 그 안에는 늘 인간의 훌륭한 가치가 생생하게 숨쉬고 있었다.”(퍼거슨)

김연기 기자 ykkim@hani.co.kr

둘 다 이방인 출신…스타보다 유망주 선호

도저히 같은 하늘을 덮고 잘 수 없을 것만 같은 퍼거슨과 벵거지만 성장 배경은 꼭 닮았다. 둘 모두 이방인 출신으로 잉글랜드에서 지도자로서 성공시대를 열었다. 퍼거슨은 1941년 마지막날 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 있는 쇠락한 항구 마을의 항만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잉글랜드 최고 클럽을 25년 넘게 통치한 이가 앵글로색슨족의 침입으로 영국 북부 산악지방으로 쫓겨간 켈트족의 후예라는 점이 역설적이다.

퍼거슨은 유년 시절 학업과 공장 견습공 일을 함께 하면서 축구 선수의 꿈을 키웠다. 이 때문에 근면과 성실은 그의 염색체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퍼거슨은 2007년 펴낸 자서전 <매니징 마이 라이프>에서 “나는 선수들을 잘 다룬다거나 소속팀에 충실하고 헌신적인 분위기를 만든다는 소리를 자주 듣는다. 전부 고향의 노동자들 틈에서 자란 어린 시절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적었다.

벵거는 1949년 10월22일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의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벵거의 아버지 알퐁스는 자동차 부품 사업체를 운영하면서 펍(선술집)을 함께 경영했다. 어린 시절 아버지가 경영하던 펍에서 자주 놀았던 벵거는 훗날 펍에서 자신의 축구 철학이 완성됐다고 말했다.

아스널의 첫 외국인 출신 감독인 벵거는 선수 기용에서도 철저하게 다국적 원칙을 고수했다. 벵거는 2005년 2월14일 크리스털팰리스전에서 엔트리 16명을 모두 외국인 선수로 제출했다. 외국인 일색의 선수 구성은 프리미어리그 역사상 처음이었다. 주변에서 “아스널이 정녕 잉글랜드 클럽이 맞느냐”고 비아냥거렸지만 벵거는 “선수를 평가하는 기준은 오직 실력이지 국적이 아니다”라고 일갈했다.

둘은 알려지지 않은 유망주를 길러내 스타로 키우는 철학도 닮은꼴이다. 부임 초기 퍼거슨은 5명의 스카우터를 불러놓고 맨체스터 시내 지도를 편 뒤 담당 구역을 정해줬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나는 맨체스터에서 가장 뛰어난 선수들에게는 관심이 없습니다. 단지 여러분들의 구역에서 가장 뛰어난 소년을 원합니다.” 이렇게 길러진 선수 가운데 대표 격이 지금도 현역으로 뛰고 있는 라이언 긱스다. 긱스 외에 데이비드 베컴, 폴 스콜스, 게리 네빌 등이 이러한 시스템을 통해 나온 인재들이다.

퍼거슨 감독은 잘나가는 시절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선수들을 발굴하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이런 노력에 힘입어 베컴이나 뤼트 판니스텔로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와 같은 간판스타들이 팀을 떠나도 맨유는 항상 새로운 스타가 빈자리를 채우며 최강의 전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벵거 역시 아스널 부임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저가의 유망주를 가려 뽑는 것이었다.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제2대학교 대학원 경제학 석사 출신답게 벵거의 경제 감각은 대단했다. 벵거는 저렴한 가격으로 유망주를 사들인 뒤 지도력을 발휘해 대형 선수로 키워내 엄청난 금액에 되파는 능력이 탁월했다. 단돈 50만파운드에 데려온 니콜라 아넬카를 2230만파운드를 받고 넘겨 약 45배의 이익을 팀에 안겨준 인물이 벵거다.

영국의 스포츠작가 톰 올드필드에 따르면 아스널 부임 이후 15시즌 동안 벵거가 사용한 이적료 총액은 3000만파운드를 넘지 않는다. 조제 모리뉴 감독은 첼시 감독 당시 연평균 4400만파운드의 이적료를 썼고, 맨체스터 시티를 지휘한 마크 휴스 감독은 1년6개월 동안 무려 2억1200만파운드를 썼다. 천하의 퍼거슨도 해마다 700만파운드 이상은 썼다. 하지만 최근 6년간 아스널이 무관에 그치면서 이러한 벵거의 인재 육성 정책에도 변화가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김연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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