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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프로팀 갈래, 고등학교 갈래’

등록 2012-03-02 21:59수정 2012-04-18 11:01

이청용의 서울 도봉중 재학시절 모습. 왼쪽은 아버지 이장근씨. 이청용 선수 제공
이청용의 서울 도봉중 재학시절 모습. 왼쪽은 아버지 이장근씨. 이청용 선수 제공
[토요판] 이청용의 편지
<한겨레> 독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이렇게 두번째 편지로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첫번째 편지가 나간 뒤 주위에서 “재미있게 봤다” “빨리 두번째 편지를 보고 싶다”는 의견들이 많아 저 역시 기뻤습니다. 사실 글재주가 없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여러분들이 재미있게 봐주셔서 그저 고마울 따름입니다. 저는 몸상태가 많이 좋아져 이젠 슬슬 조깅도 하면서 컨디션을 끌어올리고 있습니다. 매섭기만 했던 영국의 겨울 강추위도 서서히 물러가고 이곳에도 어느덧 봄 냄새가 솔솔 풍겨옵니다. 만물이 소생한다는 봄에 저 역시 그라운드에서 팬 여러분들을 만날 수 있을 것 같아 한없이 설렙니다.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3월 중으로는 그라운드에서 여러분들에게 인사드릴 수 있도록 열심히 준비하고 있겠습니다. 그럼 슬슬 두번째 편지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요.

중학 시절은 제 축구인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시기였습니다. 사실 초등학교 때는 멋모르고 그냥 공 차는 게 좋아서 축구공을 쫓아다녔다면, 중학교 때는 앞으로의 제 인생 설계를 위해 축구를 선택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했기 때문이죠. 지금도 체력적으로 한계를 느낄 때가 많이 있지만 중학 시절 전 체력적으로 그다지 훌륭한 편이 못 됐습니다. 빼빼 마른 몸 때문에 주변에서 너무 약해 보인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거든요. 한번은 어머니께서 몸을 튼튼하게 해주는 보약을 지어 왔다며 주시더라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뼈도 키우고 살도 붙게 하는 약이었던 거 같아요. 근데 제가 체질적으로 몸이 붇지 않거든요. 어머니께서 정성스레 달여주셨는데 효과를 보지 못했으니 괜히 죄송하더라고요.

근데 제가 원래 뭐든지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려는 습관이 있었거든요. 약점을 장점으로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거죠. 그래서 ‘체중이 덜 나가니까 더 가볍게 달릴 수 있다’고 자신에게 늘 주문을 걸었죠. 실제 이런 맘을 늘 품고 시합에 임하니까 이상하게도 덩치가 좋은 친구들과의 몸싸움에서도 밀리지 않더라고요.

몸도 몸이지만 축구를 잘하려면 ‘머리’가 중요합니다. 축구 선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누가 더 빨리 뛰느냐보다 먼저 생각하느냐죠. 결국 본능적으로 움직여야 하는데, 이런 본능도 생각, 그러니까 머리에서 비롯되죠. 도봉중학교 2학년 때였을 거예요. 한번은 토월중학교(경남 창원)와 시합할 때였는데, 상대팀 선수 가운데 유난히 눈에 띄는 선수가 있는 거예요. 패스할 때나 슈팅 때나 늘 한박자 빠른 모습이 인상 깊었죠. 그날 경기 이후 나도 어떻게 하면 저렇게 빠른 판단으로 공을 다룰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더랬죠. 그때 생각한 게 머리였죠. 아, 축구도 머리로 하는 거구나, 이런 생각을 했던 거죠. 아참, 그 친구가 누구였나고요? 요즘 FC서울에서 잘나가는 (고)요한이랍니다. 요한이하고는 중학교를 중퇴하고 같이 FC서울에 입단한 동기라서 더 기억에 남고 소중한 친구로 남아 있죠.

말라깽이 몸, 더 가볍잖아요
‘축구도 머리’라 생각했고요
그러다 조광래 감독의 러브콜
중학교 3년, 자퇴서를 냈죠

전 중학교 때부터 제 플레이를 복기하는 과정을 꽤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그때는 지금처럼 비디오 촬영 같은 게 없어서 녹화 영상을 볼 수는 없었죠. 대신에 잠자리에 들면 그날 낮의 제 플레이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장면을 수도 없이 반복해서 떠올려봐요. ‘아, 그때 이렇게 했으면 더 좋았을걸’ 하면서요. 매일 밤마다 이렇게 복기를 하다 보면 플레이에도 자연스럽게 반영된다는 걸 몸으로 느끼게 되죠. 아마도 중학교 때 제가 또래들보다 그나마 나은 평가를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복기 과정 덕분이었을 겁니다.

사실 전 그때도 축구 말고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아, 그나마 음악 듣기가 취미라면 취미일 수 있겠네요. 남들이 들으면 웃을지 모르겠지만 전 사춘기도 없었던 거 같아요. 또래 남자애들이 한창 사춘기로 방황할 때 전 집에서 십자수 뜨고 있었거든요. 하하. 지금 만나는 여자친구도 사실 중학교 동창이기는 하지만, 그때는 이런 관계로 발전할지 꿈에도 생각 못했죠. 중학교 때 여자를 사귄다는 건 상상도 못한 일이었거든요.

대신 에너지가 전부 축구로 발산된 것 같아요. 제가 2학년 때 2002 한일월드컵이 열렸거든요. 어쩌면 그 월드컵이 저를 축구 선수로 키운 전부인지도 몰라요. 당시 한국팀 골 장면 등을 따로 모아서 비디오로 제작해 팔았는데, 그걸 사다가 거의 매일 밤 돌려보다시피 했죠. 하루빨리 나도 성인 선수들 틈바구니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죠. 그러던 차에 3학년 때던 2003년 어느날 당시 축구부 감독님이 저를 따로 부르는 거예요. 감독님께서 대뜸 ‘너 프로팀 갈래, 고등학교 갈래’ 하고 물으시는 거예요. 처음엔 이게 무슨 소린가 했죠. 축구를 하면 당연히 고등학교를 가고, 그다음에 대학에 가거나 프로로 가는 게 정해진 코스라고만 생각했거든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당시 안양(현 FC서울) 감독이셨던 조광래 감독님이 축구 유망주를 발굴하려고 노력하시다가 저를 점찍었다고 하더군요. 사실 중학교를 중퇴하고 프로로 가는 데 두려움이 없던 건 아니었어요. 아버지께서도 적잖이 고민을 하셨죠. 다만 훌륭한 선수들과 같이 생활하면서 축구를 할 수 있다는 생각에 결단을 내릴 수 있었죠. 계약금을 1억3000만원 받았으니 결코 대우가 나빴던 것도 아니죠. 그때 조 감독님께서 제게 던진 첫 질문이 ‘자신 있느냐’였어요. 전 주저없이 ‘예’라고 답했죠. 어쩌면 저는 참 운이 좋았죠. 사실 축구 선수의 기술이란 게 대부분 10대에 완성되거든요. 성인이 되면 경기력은 늘어도 기술 자체는 크게 성장하기 어렵죠. 안양에 입단해서 또래들보다 좋은 잔디, 좋은 환경에서 저보다 앞에 있는 선배들과 함께 기술을 익힌 게 지금의 저로 이어진 거죠. 아, 정신없이 쓰다 보니 이번에도 제 자랑뿐이네요. 하하. 이제 슬슬 두번째 편지도 마무리할 때가 됐네요. 3월 꽃샘추위에 늘 건강 조심하시고요. 다음번 편지에서는 본격적인 프로선수 생활 이야기를 들려 드릴게요. 그럼 안녕히 계세요.

영국 볼턴에서 이청용 드림.

국가대표 축구선수, 프리미어리그 볼턴 소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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