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의족 스프린터 오스카 피스토리우스가 28일 열린 2011 세계육상선수권 남자 400m 예선에서 힘차게 출발하고 있다.
대구/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2011 대구 세계육상
피스토리우스, 비장애인선수 5명 제쳐…“참 경이로운 순간”
피스토리우스, 비장애인선수 5명 제쳐…“참 경이로운 순간”
휴일(28일) 오전 대구 스타디움을 찾은 관중의 시선이 8번 레인에 꽂혔다. 그곳엔 탄소섬유의 보철 다리를 한 장애인이 서 있었다.
출발은 늦었다. 칼날처럼 휘어진 의족으로는 어쩔 수 없었다. 출발 반응 속도가 늦다 보니 초반엔 경쟁자들에게 뒤처졌다. 그러나 200m를 지나면서 하나둘 추월하기 시작했다. 외국 관람객까지 모두 입을 모아 “오스카!” “오스카!”를 연호했다.
결승선을 앞두고는 선두권 5명과 혼전. 뒤처지면 조 4위까지 주어지는 준결승 진출이 좌절되는 상황이었다. 마침내 전광판에 기록이 찍혔다. 45초39. 3위였다. 순간 관중들은 우레와 같은 박수로 준결승 진출을 마음으로부터 축하했다.
이날 세계 육상사의 한 획이 대구 스타디움에서 그어졌다. ‘블레이드 러너’ 오스카 피스토리우스(24·남아프리카공화국)가 사상 최초로 세계육상선수권에서 비장애인과의 경쟁을 당당히 통과한 것이다. 자신의 최고 기록(45초07)에는 못 미쳤지만 두번째로 좋은 개인기록이었다. 피스토리우스는 함께 레이스를 펼친 동료들과 포옹하거나 하이파이브를 하면서 감격을 누렸다.
피스토리우스는 시각장애인인 ‘블라인드 러너’ 제이슨 스미스(24·아일랜드)가 전날 먼저 남자 100m 예선에 출전하는 바람에 ‘장애인 선수 첫 출전’의 이정표는 양보했다. 하지만 피스토리우스는 장애인 최초로 예선을 통과하는 쾌거를 이뤘다. 스미스는 10초57로 조 5위에 그쳐 예선을 통과하지 못했다.
비장애인 선수들과 겨루기 전에 자신의 올림픽 출전을 허용하지 않은 국제육상경기연맹(IAAF)과 싸워야 했던 피스토리우스는 “여기까지 오는 게 오랜 목표였는데, 참으로 경이로운 순간이었다”며 감격했다.
경기 뒤 인터뷰에서 “출발은 늦었지만 190m쯤에서 안정을 찾았고, 두번째 코너를 돌면서 자신감이 생겼다”며 “결승선 40m를 남기고 옆에 세 명 정도가 있어 내가 잘 뛰고 있다는 걸 알았다”고 돌아봤다. 29일 저녁 8시 남자 400m 준결승전에 나서는 그는 “내일도 오늘처럼만 뛸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편 남자 110m 허들에서 4년 만에 정상 탈환에 나서는 ‘황색 탄환’ 류샹(28·중국)은 13초20의 좋은 기록으로 예선을 2위로 통과했다. 그와 금메달을 다툴 데이비드 올리버(미국·13초27)와 세계기록(12초87) 보유자 다이론 로블레스(쿠바·13초42)도 몸 풀듯 가볍게 1회전을 통과했다.
‘미녀새’ 옐레나 이신바예바(29·러시아)도 4m55를 훌쩍 넘으며 예선을 가볍게 통과하고 12명이 겨루는 결선에 올랐다.
대구/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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