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시백(왼쪽 둘째)이 27일(한국시각) 열린 2010 밴쿠버올림픽 쇼트트랙 남자 500m 결승전에서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넘어지고 있다.
밴쿠버/AP 연합뉴스
중국·캐나다 급성장에 선수충돌·실격 ‘더블 악재’
‘에이스’ 탈락시킨 한체대-비한체대 갈등도 한몫
‘에이스’ 탈락시킨 한체대-비한체대 갈등도 한몫
# 1 2006년 2월26일 새벽(한국시각) 이탈리아 토리노 팔라벨라 빙상장. 진선유는 쇼트트랙 여자 1000m 결승에서 중국의 왕멍을 따돌리고 금메달을 목에 걸며 한국 올림픽 사상 첫 3관왕에 올랐다. 이어 열린 남자 5000m 계주. 한국은 45바퀴 가운데 44바퀴를 돌 동안 캐나다에 뒤져 있었다. 한국은 마지막 주자로 막판 스퍼트가 좋은 안현수를 배치했다. 작전대로 안현수는 마지막 111.12m에서 극적인 역전에 성공했고, 한국은 이 종목에서 12년 만에 감격의 금메달을 따냈다. 안현수 역시 3관왕이 됐다.
# 2 2010년 2월27일 낮 캐나다 밴쿠버 퍼시픽 콜리시엄. 쇼트트랙 여자 1000m에 나선 박승희는 왕멍과의 기량 차이를 절감하며 동메달을 따내는 데 만족해야 했다. 왕멍은 500m와 3000m 계주 우승에 이어 3관왕이 됐다. 이어 열린 남자 5000m 계주. <에이피>(AP) 통신이 올림픽 개막 전 한국의 금메달을 점쳤던 종목이다. 그러나 한국은 무기력한 경기 끝에 캐나다에 금메달을 내줬다.
한국 쇼트트랙이 27일(한국시각) 마지막 세 종목에서 금메달 사냥에 실패했다. 이로써 한국은 쇼트트랙에서 금 2, 은 4, 동 1개로 대회를 마감했다. 금 6, 은 3, 동 1개를 따냈던 4년 전 토리노 대회에 크게 못 미치는 성적이다. 특히 여자는 쇼트트랙 출전 사상 처음으로 노 골드에 그쳤다.
중국과 캐나다, 미국 등의 무서운 성장세와 함께, 남자 1500m에서 한국 선수끼리의 충돌이나 성시백이 500m에서 1등으로 달리다 결승선 직전 넘어진 것 등 불운이 겹친 탓이 크다. 여자 부문 금메달 4개는 중국이 독식했으며, 남자 부문에선 한국과 캐나다가 2개씩 나눠 가졌다. 박세우 전 남자대표팀 감독은 “캐나다 선수들이 4년 전보다 기량과 체력이 크게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한국의 부진 원인 가운데 하나로 쇼트트랙의 고질적인 한체대-비한체대 파벌 다툼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번 대회에는 토리노 대회에서 나란히 3관왕을 차지한 안현수(26·성남시청)와 진선유(22·단국대), 그리고 또 한 명의 ‘중국 킬러’로 떠올랐던 정은주(22·한국체대)가 나오지 못했다. 셋은 나란히 부상중이던 지난해 4월 국가대표 선발전이 치러지는 바람에 태극마크를 다는 데 실패했다. 안현수와 진선유는 부상 전까지 한국 남녀 부동의 에이스였고, 정은주도 ‘포스트 진선유’로 주목을 받고 있던 터였다.
양궁과 유도 등 대부분 종목은 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전을 여러 차례 치르고 마지막 선발전의 배점을 가장 높게 매긴다. 쇼트트랙도 과거에는 올림픽 선발전을 두 차례 치렀다. 그러나 대한빙상연맹은 올림픽을 무려 10개월이나 앞두고 그것도 딱 한 차례 선발전을 열어 출전 선수를 확정지었다. 결과적으로 이번에 선발된 대표선수 10명은 모두 경희·단국·연세대 등 비한체대 출신이거나 재학생이다. 반면 안현수는 한체대 출신이고, 정은주는 한국체대 재학생이다. 진선유는 안현수와의 형평성 때문에 희생됐다는 시각이 있다.
한 빙상인은 “20대 초·중반의 전성기를 맞은 선수들이 출전 기회조차 박탈당해 너무 아쉽다”고 했다. 전명규 빙상경기연맹 부회장은 “어린 여자 선수들이 몇 년 사이에 진선유와 정은주를 뛰어넘는다는 것은 힘들다”며 아쉬워했다. 이에 대해 빙상연맹 쪽은 “선발전을 가을에 한 번 더 치르면 부상 우려가 있기 때문에 치르지 않은 것”이라며 “성적에 따라 선수를 선발했을 뿐 특정 대학 출신을 고의로 배제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cano@hani.co.kr
한국 쇼트트랙 왜 삐끗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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