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보다 나은 은메달'이란 말이 성립할 수 있을까? 물론 시상대 위에서는 성립할 수 없다. 하지만 시상대 밖에서는 성립할 수 있고 성립해야만 하는 말이다.
2010 밴쿠버동계올림픽 빙속 남자 5000미터에서 은메달을 딴 이승훈 선수가 그런 경우이다.우선 이승훈 선수의 은메달은 아시아 선수로서는 최초로 장거리 빙속 경기에서 메달을 획득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인 일이다.
강인한 체력과 끈기가 요구되는 빙속 장거리 경기는 그동안 체격 조건이 좋은 서양인들의 전유물이었다. 한마디로 신체조건 상 아시아 선수는 메달권을 따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져온 경기다. 동양선수가 스키 크로스컨트리에서 메달을 따는 것 정도나 어려운 경기였던 셈이다.
실제로 빙속 장거리 경기로 분류되는 5000미터, 1만미터 경기에서 아직 한 번도 아시아 선수가 메달을 딴 적이 없었다. 가장 메달권에 근접했던 선수가 2002 솔트레이크시티 동계올림픽 1만미터 경기에서 4위를 기록했던 일본의 사라하타 게이지(36)이다.
이 정도의 의미가 있는 은이라면 확실하게 금보다 나은 은메달이다. 순위는 2위였지만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든 점에서는 1위를 한 세계기록 보유자 크라머(네덜란드)보다 더욱 성과가 크다.
뻔한 사람이 금메달을 따는 것보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선수, 전혀 불가능해 보였던 선수가 2등을 한 것이 더욱 의미가 있는 것이다.
더구나 이승훈 선수는 176센티미터의 결코 크지 않은 체격의 선수이고, 원래부터 장거리를 전문으로 한 선수도 아니다. 쇼트트랙에서 전향한 지 6개월밖에 되지 않은 무명의 선수이다. 하지만 이승훈 선수는 한국에서 한국의 언론에서 이런 대접을 받지 못했다. 오히려 이 선수의 이런 성과를 대서특필한 것은 한국 언론이 아니라 일본 언론이었다. 이승훈이 아시아 사람도 장거리 빙속에서 메달을 딸 수 있다는 가능성이 보여줬다면서.
이승훈의 은메달이 한국에서 대접을 받지 못한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 중 가장 주요한 원인은 아직도 `금메달 지상주의'가 한국 언론을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예전보다는 다소 약해졌지만, 메달 색깔에 따라 지면 배정의 크기가, 방송 시간의 길이가 달라지는 관행은 아직도 여전하다.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이 아니라고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어뜨리는 선수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금메달 지상주의, `1등 지상주의'의 한 단면일 것이다. 또 하나, 이승훈 선수가 메달을 딴 날이 설날이었다는 점도 이 선수에겐 불리하게 작용했다. 방송은 모르지만 신문들은 마침 설날인 이날 신문을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틀이나 지난 이승훈의 은메달이 조명을 받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측면도 있다. 또한 이승훈 선수에 이어 이정수 선수가 남자 쇼트트랙 1500미터에서 바로 금메달을 딴 것도 이승훈에게 돌아갈 관심을 분산시킨 효과를 낳았다. 이처럼 이승훈의 은메달이 제대로 각광을 받는 데 이전보다 다소 부리한 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이승훈 선수의 선전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언론이 제대로 파악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승훈 선수의 은메달이 각광을 받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몇 년 전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삼성의 광고로 대변되는 1등지상주의의 마력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이승훈 선수의 은은 지금이라도 `금보다 나은 은'으로 새로 조명받아야 한다. 1등보다 나은 2등, 3등, ......꼴지도 있다는 것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예전보다는 다소 약해졌지만, 메달 색깔에 따라 지면 배정의 크기가, 방송 시간의 길이가 달라지는 관행은 아직도 여전하다. 올림픽 경기에서 메달을 따고도 금메달이 아니라고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떨어뜨리는 선수들의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금메달 지상주의, `1등 지상주의'의 한 단면일 것이다. 또 하나, 이승훈 선수가 메달을 딴 날이 설날이었다는 점도 이 선수에겐 불리하게 작용했다. 방송은 모르지만 신문들은 마침 설날인 이날 신문을 만들지 않았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이틀이나 지난 이승훈의 은메달이 조명을 받기에는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측면도 있다. 또한 이승훈 선수에 이어 이정수 선수가 남자 쇼트트랙 1500미터에서 바로 금메달을 딴 것도 이승훈에게 돌아갈 관심을 분산시킨 효과를 낳았다. 이처럼 이승훈의 은메달이 제대로 각광을 받는 데 이전보다 다소 부리한 여건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래도 이승훈 선수의 선전이 가진 진정한 의미를 언론이 제대로 파악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게 남는다. 결론적으로 말해, 이승훈 선수의 은메달이 각광을 받지 못한 것은 우리 사회를 압도하고 있는, 몇 년 전 `아무도 2등은 기억하지 않는다'는 삼성의 광고로 대변되는 1등지상주의의 마력을 보여준 것에 불과하다. 이승훈 선수의 은은 지금이라도 `금보다 나은 은'으로 새로 조명받아야 한다. 1등보다 나은 2등, 3등, ......꼴지도 있다는 것을 우린 잊지 말아야 한다. 그것이 사람이 사는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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