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혁 선수가 18일(한국시각) 밴쿠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 결승선을 통과한 뒤 거친 숨을 내쉬고 있다. 밴쿠버/연합뉴스
후배 일일이 챙기며
선의의 경쟁 이끌어
금 딴 후배에 “잘했다”
선의의 경쟁 이끌어
금 딴 후배에 “잘했다”
출발신호가 떨어지자 그는 이를 악물고 얼음을 박찼다. 200m 구간기록 16.39초 2위, 600m 41.73초 1위. 다섯번째 올림픽 도전이 결실을 맺는 듯싶었다. 그러나 마지막 전광판에 들어온 1분9초92, 7이란 숫자를 확인한 뒤 그는 드러누웠다. 유니폼을 벗자 그동안의 땀과 눈물이 깃든 탄탄한 등이 드러났다. 천천히 걸어가 “잘했다”며 11살 아래 후배 모태범(21·한체대)을 안아준 그는 시상식 준비로 분주한 경기장을 뒤로했다. 18일(이하 한국시각) 모태범이 스피드스케이팅 남자 1000m 은메달을 목에 건 캐나다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 대표팀 ‘맏형’ 이규혁(32·서울시청)의 16년 동안의 올림픽 도전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스피드스케이팅 전 국가대표 이익환(64)씨와 피겨 전 국가대표 감독 이인숙(55)씨를 부모로 둔 이규혁은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스케이트를 탔다. 논두렁 얼음판에 첫 스케이트를 디딘 아이는 중학교 1학년이던 1991년 태극마크를 달고 ‘빙속 신동’ 소리를 들었다. 97년 1000m에 이어 2001년 1500m 세계 신기록을 세우며 무섭게 성장했다. 하지만 유독 올림픽과는 인연이 없었다. 1994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부터 2006년 이탈리아 토리노까지 4차례의 겨울올림픽에서 1000m 4위(토리노)에 오른 것이 최고기록이다. 은퇴까지 고민했지만 끝내 스케이트를 벗지 않은 그는 2007 세계스프린트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으로 부활했다. 지난해 5㎏을 감량하며 뜨거운 여름을 보낸 그는 월드컵 4·5차 대회에서 금메달 3개(500m), 은메달 2개(1000m)를 따며 다시 전성기를 열었다.
“올림픽 성적 때문에 선수 생활이 낮게 평가받는 게 두렵다”며 올림픽에 나선 그는 16일 첫 경기인 500m에서 15위에 머물렀다. 김관규 대표팀 감독에게 “최선을 다했으니 후회 없이 타겠다”고 했지만 정빙기 고장으로 1시간30분이 연기되는 돌발상황으로 컨디션 조절에 실패했다.
그는 담담한 표정으로 취재진에게 “수고하셨습니다” 한마디만 남긴 채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고글 뒤의 눈은 보이지 않았다. 김 감독은 고글을 쓴 채 대기실에 앉아 있는 그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의 도전은 이렇게 마무리됐지만 빙판 위에 그가 남긴 자국은 크기만 하다. 그동안 대표팀 동생들은 ‘맏형’에게 수시로 고마움을 나타냈다. 김 감독은 이번 대회의 좋은 성적에 대해 “규혁이가 열심히 해줘 후배들이 분발하며 선의의 경쟁이 된 것도 크다”고 말했다. 모태범은 경기 뒤 “규혁이 형에게 정말 고맙다. 내가 쓰는 스케이팅 주법도 그렇고 항상 많은 것을 가르쳐 주셨다”며 “먼저 안아주셔서 정말 감사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전날 어머니에게 “엄마 모든 준비가 끝났어. 이번엔 정말 빈틈없이 준비했는데 막상 시간이 다가오니 떨리네. 하지만 엄마가 있고 할머니가 계시고 동생 규현이가 있으니까 가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할게”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날 경기 뒤 전화로 “이제 다 끝났으니까 다 잊어버리고 시원하게 즐겨라. 최선을 다했으니까 됐다. 훌륭한 선수고 자랑스러운 아들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밴쿠버/이승준 기자, 홍석재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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