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범이 네덜란드의 한 팬이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 빙판에 던져준 모자를 뒤집어쓰고 팬들의 환호에 화답하고 있다. 리치먼드/AP 연합뉴스
500m 반전드라마 재구성
모태범(21·한체대3)은 금메달을 확정지은 뒤 한국 응원단 쪽을 바라보며 트위스트를 추면서 기쁨을 감추지 않았다. 그는 16일(한국시각) 밴쿠버 리치먼드 올림픽 오벌에서 쟁쟁한 강호들을 등 뒤로 제치며 세계를 감짝 놀라게 했다.
■ 반전드라마의 시작 스피드스케이팅 단거리 500m는 두 차례 경기를 치러 기록을 합산해 순위를 가린다. 월드컵 랭킹 14위인 모태범은 1차 시기에서 20개 조 가운데 13번째로 월드컵 랭킹 9위의 얀 스메이컨스(23·네덜란드)와 경기를 펼쳤다. 반전은 여기서 시작됐다. 네덜란드 관중의 일방적인 응원 속에서 그는 초반 100m를 9초63으로 끊은 데 이어 34초92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앞서 뛴 23명보다 빠른 기록이었고, 전광판에 1위로 이름을 올렸다. 뜻밖의 선수의 깜짝 활약에 경기장은 잠시 술렁거렸다. 그러나 잠시 뒤 핀란드의 미카 포우탈라(27)가 34초86을 기록해 0.06초 차로 2위로 밀렸다.
■ 1시간30분의 변수 1차 시기 도중 빙판을 점검하는 정비기가 고장나 2차 시기가 1시간30분 연기됐고, 점검 뒤에도 얼음 상태가 좋지 않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식는 선수들에게는 좋지 않은 상황. 하지만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다른 선수들에 견줘 모태범은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은 채 2차 시기에서 오히려 0.02초를 앞당겼다.
모태범은 경기 뒤 “감독님 지시대로 적당히 몸을 풀고 쉬다가 음료수를 마시기도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있었다. 큰 영향은 없었다”고 했다. 김관규 대표팀 감독은 “모태범은 중·장거리가 전문이어서 힘으로 스케이팅하는 스타일이다. 빙질이 안 좋아도 파워가 좋아 박차고 나갈 수 있다. 중장거리로 다져진 체력 덕분에 2차 레이스에서 기록을 단축했다”고 설명했다.
■ 배짱과 자신감 모태범은 2차 레이스에서 세계신기록(34.03) 보유자 제러미 워더스푼과 짝을 이뤄 19번째로 경기를 하게 됐다. 주눅들 법도 했지만 초반 100m에서 9초61을 찍으며 워더스푼(9초69)을 앞섰다. 워더스푼과 점점 거리를 벌린 모태범은 34초90으로 결승선을 통과해 당시까지 1위. 마지막 조 두 명만 남은 상황에서 최소한 동메달을 확보했다.
경기 뒤 그는 “100m 구간만 잘 빠져나가면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 100m를 먼저 치고 나가면서 자신감이 더욱 붙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마지막 20조 경기에서 1차 시기 1위 미카와 동메달을 딴 가토 조지(25·일본)가 1·2차 시기 합계 70초04와 70초01에 머물면서 금메달은 모태범의 차지가 됐고, 경기장은 세계 각국 관중들의 환호와 탄식으로 가득 찼다.
한편, 기대를 모았던 이강석(25·의정부시청)은 70초04로 동메달에 0.03초 뒤진 4위에, 이규혁(32·서울시청)은 15위(70초48)에 머물렀다. 문준(28·성남시청)은 71초19로 19위에 올랐다. 밴쿠버/이승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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