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취재단 = "정말 후배들을 볼 낯이 없었습니다. 어제까지 여러 인터뷰를 했는데도 정말 미안했어요."
극적인 홈런을 너무 많이 때려 보는 이들을 너무 힘들게 하는 것 아니냐는 물음에 이승엽(32.요미우리)은 "직접 뛰는 나는 더 힘들다"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승엽은 베이징올림픽 기간 표정이 썩 좋지 않았으나 22일 일본과 준결승이 끝난 뒤에는 '한 건'을 했다는 자부심에 낯빛도 많이 좋아졌다.
그간 마음고생이 심했기에 정말 한 방을 때리고 싶었고 벼르고 있던 찰나, 기어이 펜스 바깥으로 타구를 날려버렸다.
이승엽은 "이와세 히토키(주니치)의 공을 내가 잘 못 때려서 직구 하나만 오기만을 기다렸다. 볼카운트 2-1에서 직구가 와 휘둘렀고 처음에는 홈런인지 잘 몰라 한 참을 쳐다봤다"며 입을 뗐다.
이어 "서울에서 합숙할 때부터 후배들과 홈런 세리머니를 어떻게 해야할 지 연구도 하는 등 좋은 분위기에서 연습했지만 정작 실전에서는 컨디션이 너무 좋지 않아 고전했었다. 그러다 오늘 운 좋게 홈런이 나왔다"고 말했다.
이승엽은 타격 부진으로 지난 4월 2군에 내려갔다가 100여일 만인 지난달 1군에 복귀했고 오른손 투수가 나왔을 때만 선발 출장해 2-3게임 실전을 치른 뒤 대표팀에 합류했다.
지난해 10월 수술한 왼손 엄지에 여전히 통증이 있어 그는 고무링을 엄지에 착용하고 나선다.
김경문 감독의 기대가 워낙 컸고 군 미필 후배들이 병역혜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기 위해 이승엽은 대표팀 합류를 기꺼이 선언했지만 컨디션은 썩 좋지 않았다.
그는 "올림픽 기간 중 연습을 제대로 못해 안타까웠다. 시간 제약 탓에 내가 때릴 수 있을 만큼 훈련을 하지 못해 연습량은 부족했다"고 답했다.
이승엽은 전날까지 22타수3안타로 극도로 부진했고 13일 미국전에서 2루타 한 방을 때린 것을 제외하곤 주포다운 강한 인상을 전혀 남기지 못했다.
그러다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에서 자주 상대하는 이와세를 제물로 대표팀을 결승으로 이끈 투런포를 쏘아 올린 것이다. 기나긴 침묵을 깬 아시아 거포의 울부짖음이었다.
이승엽은 "경기가 끝나고 이제 '우리가 결승에 가는구나' 이런 생각 밖에 안 들다 후배들이 우는 것을 보니 나 또한 마음이 찡하다. 후배들이 정말 큰 일을 해줬다"며 동생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때 도쿄돔에서 일본을 상대로 때린 역전 결승 투런포보다는 기분은 덜 하나 오늘 홈런이 여러모로 뜻깊다. 당시에는 5만 관중이 도쿄돔을 가득 메워서 그랬는지 몰라도 개인적으로는 더 크게 감격했다"고 말했다.
'빅 보이' 이대호(26.롯데)와 선수촌에서 한 방을 쓴다는 이승엽은 "대호가 성격도 좋고 선배 마음도 잘 읽어 뒷바라지도 잘 해주는 것 같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든 뒤 "원래 베이징올림픽 목표가 9전 전승으로 금메달을 따는 것이었기에 23일 결승에서도 최선을 다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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