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에 사상 첫 메달을 안긴 로훌라 니크파이가 20일 태권도 58㎏급 시상식에서 동메달을 걸고 기뻐하고 있다. 베이징/AP 연합
니크파이, 태권도 58kg ‘동’
베이징올림픽 남자 태권도 58㎏ 이하급에 출전한 아프가니스탄의 로훌란 니크파이(20)가 20일 동메달을 땄다. 지난 30여년 동안 전쟁의 상흔이 가득했던 고국에 사상 첫 올림픽 메달 소식을 알린 것이다.
■ 첫 올림픽 메달 니크파이는 이날 베이징 과학기술대 체육관에서 열린 베이징올림픽 태권도 58㎏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스페인의 후안 안토니오 라모스를 4-1로 꺾었다. 선수들과 함께 동고동락했던 한국인 사범 민신학(35)씨도 경기를 마치고 내려오는 니크파이를 얼싸 안았다.
아프간이 이번 대회까지 역대 올림픽에서 낸 최고의 성적이 1964년 도쿄대회 때 레슬링 자유형 남자 페더급 5위였다. 니크파이가 1936년 베를린올림픽 참가 이래 72년 넘은 메달 갈증을 시원하게 풀어준 것이다. 아프간은 이번 대회에 육상 남, 여 100m에 마수드 아지지(23) 로비나 무키마이야르(22)와 태권도에 2명 등 모두 4명을 파견했다. 아프간 태권도가 올림픽 무대를 밟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 열악한 스포츠 환경 90년대 강경 이슬람주의 성향의 탈레반 정권이 엄숙주의를 강요하며 ‘철권’ 통치를 일삼은 아프간에서 스포츠는 자리잡을 곳이 없었다고 <로이터> 통신이 최근 전했다. 당시 수도 카불의 체육경기장은 사형과 팔다리 절단형과 고문이 횡행하는 공개처형 장소로 바뀌었다. 태권도 68㎏급에 출전한 네사르 베하베는 “당시 훈련을 하려 해도 사방에서 폭탄이 터졌고, 틈만 나면 기도를 강요당했다”고 털어놨다. 결국 많은 체육인들은 국외로 몸을 피했다.
굴람 라바니 태권도협회 회장도 그들 중 하나였다. 미국이 탈레반 정권을 축출한 뒤 2002년 아프간으로 돌아왔으나 남은 시설은 거의 전무했다. 귀국 뒤 그는 아프간 전역에 700여 태권도장이 제대로 운영될 수 있도록 관리하기 시작했지만, 국가대표 선수가 한달 수입이 10달러에 지나지 않을 정도로 현실은 여전히 열악하다. 많은 곳에서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탈레반 무장세력 지역에선, 지금도 스포츠 선수 생활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
아프간 선수단의 참가 비용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후원했다. 한 현지 통신업체는 메달을 따는 선수에게 5만달러의 상금을 약속했다. 전쟁의 폐허 속에 아프간 국민들이 느끼게 될 희망의 의미는 더욱 크다. 라바니 회장은 “아직 상황은 좋지 않지만 앞으로 나아질 것으로 믿는다”며 “우리 선수들이 세계선수권에서 은메달을 땄을 때, 탈레반도 좋아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김외현 기자 osca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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