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여자 100m 결승전에서 금과 은을 휩쓴 자메이카의 셸리 안 프레이저, 케런 스튜어트, 셰런 심슨(왼쪽부터)이 국기를 펼쳐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베이징/AP 연합
여자육상 100m 독식…육상강국 미국은 수모
수축·이완능력 유전자 탁월…마 비슷한 ‘얌’은 스피드 높여
수축·이완능력 유전자 탁월…마 비슷한 ‘얌’은 스피드 높여
17일 열린 베이징올림픽 육상 여자 100m 결승전에서는 셸리 안 프레이저 등 자메이카 선수 3명이 메달을 독식해버려, 시상식에서 자메이카 국기만 올라가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에 비해, 여자 100m 결승에 똑같이 3명을 출전시킨 미국은 ‘노메달’의 수모를 겪었다. 전날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세계신기록으로 결승 테이프를 끊은 남자 100m에서도 미국은 월터 딕스의 동메달에 만족해야 했다. 칼 루이스, 모리스 그린, 저스틴 게이틀린(이상 남자), 그리피스 조이너, 게일 디버스, 매리언 존스(이상 여자)로 이어지는 미국의 올림픽 육상 100m 독주가 자메이카의 돌풍에 한꺼번에 무너져버린 것이다.
자메이카는 우사인 볼트나 아사파 파월 등 걸출한 스타를 배출하기 전까지 세계 육상계에서 큰 주목을 받지는 못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따낸 올림픽 메달 43개 가운데 42개가 육상에서 나왔을 정도로 자메이카는 전통의 육상 강국이다. 그 중에서도 단거리에서의 선전은 이미 오래전부터 감지됐다. 1990년대 들어서 국적을 바꾼 ‘자메이칸’들이 세계를 제패하기 시작한 것이다. 1992년 올림픽 남자 100m 우승자 크리스티 린포드(영국), 1996년 올림픽 우승자 도노번 베일리(캐나다)는 자메이카 출신이었다. 1980년대 남자 단거리에서 칼 루이스와 쌍벽을 이루던 벤 존슨(캐나다)도 마찬가지였다. 이번 올림픽에서는 ‘진짜 자메이칸’이 세계를 제패하기에 이르렀다.
인구 260만명에 GDP가 116억달러에 불과한 소국 자메이카가 세계적인 단거리 스타를 배출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먼저 꼽히는 요인으로는 단거리 달리기에 적합한 자메이카 사람들의 선천적인 기질이다. 영국 글래스고 대학과 서인도대학은 지난 2006년 자메이카 육상 선수 200여명을 조사한 결과, 이들에게 근육의 수축과 이완을 빠르게 하는 ‘액티넨 A’라는 유전자가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아프리카 노예의 후예들인 자메이카 사람들은 이런 특이 유전자 덕택에 짧은 시간에 폭발적인 스퍼트를 낼 수 있다는 것이다.
자메이카 특산물인 ‘얌’도 빼놓을 수 없다. 우사인 볼트의 아버지는 볼트가 금메달을 딴 뒤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아들이 자메이카 북서부 지방에서 나는 얌을 매우 즐겨먹는다”고 말했다. 얌은 우리나라에서 나는 마와 비슷한 식물이다. 자양강장제로 알려진 얌이 폭발적인 스피드를 내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자메이카 사람들은 생각한다.
자메이카 공대의 과학적인 훈련 프로그램도 선수들의 기록 향상에 큰 도움을 줬다. 우사인 볼트, 아사파 파월, 그리고 이번 올림픽 여자 100m에서 은메달을 따낸 셰런 심슨 등이 이 대학 출신이다. 미국에서 단거리 선수로 활동한 데니스 존슨이 과학적인 미국식 훈련기법으로 선수들을 양성하는 ‘육상 사관학교’인 셈이다.
김태규 기자 dokbu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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