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과 싸운 그녀, 세계를 번쩍 장미란 선수가 16일 열린 여자역도 78㎏ 이상급 용상 3차 시기에서 186㎏을 들어올려 세계신기록을 작성한 뒤 기뻐하고 있다. 베이징/올림픽사진공동취재단
장미란의 ‘무한도전’
역도 권하던 아버지에 툴툴대던 소녀
여성 고뇌 숨긴채 살찌우려 먹고 또 먹고
1차시기 금 확정 ‘독무대’…나머지는 기록도전
역도 권하던 아버지에 툴툴대던 소녀
여성 고뇌 숨긴채 살찌우려 먹고 또 먹고
1차시기 금 확정 ‘독무대’…나머지는 기록도전
‘장미란’ 대 ‘장미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16일 밤 베이징 항공항천대학교 체육관에서 열린 여자역도 최중량급(+75㎏급) 경기. 장미란(25·고양시청) 선수의 적수는 없었다. 사실상 독무대였다. 장미란은 다른 선수 10명이 모두 3차 시기를 마친 뒤 인상 1차 시기에 나와 6㎏을 더 들어올렸다. 용상에서도 1차 시기에 금메달을 확정했다. 나머지 두 번의 도전은 세계 신기록 경신을 위한 것이었다. 장미란이 기록을 갈아치우는 순간마다 관중석에선 국적에 관계없이 열띤 응원이 펼져졌다. 태극기와 성조기가 나붙꼈고, “대~한민국!” “짜여우, 짜여우”하는 함성이 뒤섞였다.
장미란이 이날 관중들의 열기 속에서 고독한 도전을 이어갔듯, 그의 스물다섯 역도인생 역시 힘들고 외로운 도전의 연속이었다. 그도 어릴적 사춘기 때는 ‘보통 여자아이’였다. 역도를 권유하는 아버지에게 “여자가 무슨 역도냐”며 화를 냈다. 그러다 역도 선수 출신인 아버지 장호철(54)씨의 끈질긴 권유에 마침내 상지여중 3학년이던 1998년 바벨을 처음 들어봤다. 아버지는 “명문고를 갈 수 있으면 공부를, 그렇지 않으면 역도를 하라”고 했다. 그렇게 운명처럼 역도와 인연을 맺었다. 그리고 묵묵히 전부를 걸었다.
<뉴욕 타임스>는 최근 ‘가장 아름다운 몸매 5인’ 가운데 하나로 장 선수를 꼽았다. 그는 체지방이 적고 근육양이 많아 선천적으로 힘을 쓰기에 적합한 체질을 갖고 있다. 이번 대회 2위를 차지한 올하 코로브카(166㎏·우크라이나) 선수보다 50여㎏이나 몸이 가볍지만, 역기는 합계 50㎏을 더 들 수 있을 만큼 단단한 몸이다.
이번 대회를 앞두고는 남모를 고민도 했다. 기록 향상을 위해 몸무게를 더 늘려야 한다는 중압감이 그것이었다. 장 선수는 “최소한의 몸무게를 유지하기 위해 저녁을 먹고 밤에는 코치님이 챙겨주시는 간식을 또 먹는다”고 했다.
일단 시작한 만큼 최고가 되고 싶었다. 그는 아무리 강도 높은 훈련이라도 군말 한 번 없이 소화해내는 성실함을 바탕으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왔다. “작년보다 상체가 더 좋아지지 않았어요?” 장 선수는 이번 대회를 앞두고 상체와 허리 쪽에 약점이 지적돼 왔다. 코치진이 이를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자, 엄청난 훈련량을 바탕으로 단점을 고스란히 보완해 냈다. 오승우 여자대표팀 감독은 “조금씩 놀면서 했으면 하고 바랄 정도로, 누가 뭐라든 쉬지 않고 준비를 하는 게 미란이”라고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에서 은메달에 그친 뒤 마음고생도 많았다. 장 선수는 당시 중국 선수에 7.5㎏ 앞서며 금메달을 눈앞에 뒀지만 중국 선수가 마지막 시기에서 성공 여부에 논란을 일으키는 자세로 용상 세계기록을 들어올리는 바람에 2위로 밀렸다. 올림픽 뒤 그는 중국 선수들과 무게를 맞추기 위해 늘어나지 않는 체중을 불리려 억지로 밥을 먹기도 했다.
오 감독은 “인간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장미란의 가능성은 무한하다”고 말했다. 아직도 상체와 허리 쪽에서 더 힘을 쓸 곳이 남아 있다는 말이다. 장 선수는 “세계 기록을 깰 때까지 스스로에게 계속 도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아직 도전이 끝난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베이징/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베이징/홍석재 기자 forchi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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