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라운드 경기가 모두 끝난 뒤 승리한 왈라드 셰리프(30.튀니지)는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고, 이옥성(27.보은군청)은 고개를 푹 숙였다.
땀과 눈물이 뒤섞여 끊임없이 흘러내렸다. 절망한 이옥성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쥐었다.
16일 베이징 노동자체육관에서 한국 복싱 간판스타 이옥성이 무릎을 꿇었다. 나흘 전 플라이급(51㎏) 32강전에서 우승 후보 러시 워런(21.미국)을 꺾으며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20년 만의 복싱 금메달 희망을 안긴 그가 다음 경기에서 아프리카 복병에게 걸려 무너진 것이다.
셰리프도 결코 약한 상대는 아니다. 2005년 중국 미안양 세계선수권대회에서 5위를 차지했고, 아프리카 선수권대회에선 2005, 2007년 두 차례나 우승했다.
하지만 이옥성보다는 한 수 아래로 여긴 선수였다. 셰리프가 5위를 차지한 2005년 세계선수권에서 이옥성은 우승했다. 1986년 문성길 이래 19년 만의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이었다. 복싱이 국내에서 인기가 시들해졌을 때 복싱계 내분을 딛고 이변을 일으킨 `꽃미남'은 일약 2000년대 아마추어 복싱계 최대 스타로 떠올랐다.
하지만 이게 독(毒)이 된 듯 하다. 심성 고운 청년은 자신에게 쏠린 관심을 부담스러워했다. 특히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금메달은 떼놓은 당상'이라는 기대를 받았다. 복싱은 아무리 강자라도 경기 당일 컨디션에 따라 언제라도 질 수 있는 경기. 이옥성은 8강에서 탈락했고, 성적 부진의 책임을 뒤집어써야 했다.
2007년 세계선수권대회 참가를 고사한 이옥성은 베이징올림픽을 명예회복의 기회로 삼았다. 복싱계 명예는 물론이고, 개인적으로도 올림픽 메달이 절실했다. 그는 아직 군에 다녀오지 않았다. 나이가 나이인 만큼 병역특례 혜택을 받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로는 소용없었다. 올림픽에서 동메달만 따면 병역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더구나 금메달이면 복싱계 20년 노골드 한까지 풀 수 있다는 생각에 1월5일 결혼한 그는 신혼여행도 반납한 채 훈련에 몰두해왔다. 몇 달 후 태어날 아들의 목에 금메달을 걸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갈비뼈를 다친 게 발목을 잡았다. 천인호 감독은 "오늘 16강전에서 옥성이가 1회에 상대 선수의 배와 얼굴에 깔끔한 펀치를 꽂았는데도 점수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판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베이징=연합뉴스)
하지만 올림픽을 앞두고 갈비뼈를 다친 게 발목을 잡았다. 천인호 감독은 "오늘 16강전에서 옥성이가 1회에 상대 선수의 배와 얼굴에 깔끔한 펀치를 꽂았는데도 점수로 인정되지 않았다"고 판정에 불만을 표시했다.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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