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번 시드의 장쥐안쥐안이 우승한 것도 놀랍지만, 한국이 우승하지 못한 것은 더욱 놀랍다.”
2008 베이징올림픽 공식발행지 <차이나 데일리> 영문판 15일치는 한국 여자양궁이 개인전에서 우승하지 못한 내용을 커버스토리로 다루면서 이렇게 소개했다. 15일에는 남자양궁 개인전 결승에서 박경모(33·인천 계양구청)마저 분루를 삼켰다. 남녀 단체전을 석권하며 기세좋게 출발한 한국 양궁이 개인전에서 이처럼 좌절한 원인은 무엇일까?
공교롭게도,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 남녀양궁이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내준 상대 선수들은 모두 4년 전 아테네올림픽 때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땄던 선수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대는 꺾어야 할 목표가 분명했지만, 한국 처지에선 ‘수성’이라는 부담감을 떨쳐내는 게 쉽지 않았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결국 한국 선수들이 자신과의 싸움에서 무너졌다는 이야기다.
15일 열린 남자 개인전의 경우 1점 차로 은메달에 그친 것이 아쉬웠지만 결국 마지막 3발에서 26점에 그친 것이 결정적인 패인이었다. 1996년 애틀랜타 양궁 2관왕이었던 김경욱 <에스비에스>(SBS) 해설위원은 “남자의 경우 70m에서는 29점과 30점 정도를 쏴야 우승할 수 있다”며 막판 집중력 부재를 지적했다.
여자 양궁의 경우는 오랜 기간 지속된 ‘세계 최고’라는 전통을 고수해야 한다는 심리적 부담이 최대의 장애요인이었을 수 있다. 24년 동안이나 거의 독주체제를 구축해왔던 여자양궁은 모든 상대들로부터 도전 상대 1호였다. 그것은 동시에 여자양궁 대표팀 선수들에게 7연패를 달성해야 한다는 심리적인 부담으로 크게 작용했다. 박성현이 은메달을 딴 뒤 기자회견에서 “이제 앞으로는 누구든 그런 심리적인 압박감에서 벗어나 다시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고 말했을 정도다.
김경욱 해설위원은 “일 대 일 토너먼트에서 영원한 승자는 없을 정도로 변수가 많이 작용한다”며 “박성현이 스스로를 잘 통제하면서 결승까지 올라왔지만, 한국 선수들을 잇달아 물리친 장쥐안쥐안을 결승에서 만난 것에 결국은 더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은 또 자신이 중국과 결승에서 만나 개인전 금메달을 땄던 1996년 애틀랜타 대회 이후 한국은 여자 개인전 결승에서 모두 한국 선수끼리 격돌했던 상황을 언급하며, 다른 나라 선수들과 결승에서 맞붙는 상황에 대한 대책 강구도 새로운 과제가 될 것임을 시사했다.
어찌됐든 한국 양궁은 이번 남녀 개인전의 좌절을 계기로 더 강력한 상대들과 경쟁에서 이겨낼 새로운 훈련방법의 개발 등 4년 뒤의 올림픽을 대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양궁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베이징/권오상 기자 ko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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