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양궁이 이번에도 개인전 금메달의 벽을 넘지 못했다.
1984년 `꽃돼지' 서향순이 로스엔젤레스올림픽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선 순간부터 남자 궁사들의 올림픽 '불운'은 시작됐다. 당시 구자청이 8위, 최원태가 11위, 전인수가 22위에 머물렀을 때만 해도 희망이 있었다.
이때만 해도 남자 양궁은 세계선수권대회에서도 정상이 아니었다. 여자가 1979년 베를린 세계선수권에서 김진호의 개인.단체전 제패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른 반면, 남자는 3위(1991년 정재헌)가 고작이었다.
남자양궁이 올림픽 정상에 가장 접근한 건 1988년 서울올림픽(박성수)과 1992년 바르셀로나대회(정재헌)에서 은메달을 따냈을 때였다.
1993년 박경모의 세계선수권 첫 금메달로 다시 올림픽 금메달 희망에 불타기 시작한 남자는 1996년 애틀랜타와 2000년 시드니대회에 오교문, 장용호라는 스타를 앞세워 한풀이에 나섰다. 하지만 오교문이 애틀랜타에서 동메달을 따낸 것을 마지막으로 그 후로는 노메달 행진이 이어졌다.
남자대표팀이 징크스를 털어내기 위해 그간 들인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2001년 정재헌과 장용호, 김보람 등의 훈련거부 파문을 계기로 시들해진 특수부대 입소훈련도 군말없이 받아들였다.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태릉선수촌내에서 치른 가상훈련, 소음 적응훈련은 물론이고 번지점프도 앞장 서서 뛰어내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특히 국내외 전문가들이 우승 1순위 후보로 지목한 세계랭킹 1위 임동현(22.한국체대)이 16강에서 탈락한 장면이 결정적이었다. 2000년 시드니대회 8강에서 오교문을 격파한 빅터 원더리(미국)는 이번에도 임동현을 물리치면서 `한국 킬러' 이미지를 이어갔다.
혼자 8강에 오른 박경모마저 자신에게 쏠린 부담을 끝내 털어내지 못하고 결승에서 빅토르 루반(우크라이나)에게 패했다.
14일 여자 대표팀의 올림픽 7연패(連覇) 도전이 좌절된 데 이어 15일 남자 대표팀까지 올림픽 금메달 한풀이에 실패하면서 양궁은 1984년 이래 처음으로 개인전 금메달을 모두 놓치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베이징=연합뉴스) 특별취재단 chungwon@yna.co.kr
14일 여자 대표팀의 올림픽 7연패(連覇) 도전이 좌절된 데 이어 15일 남자 대표팀까지 올림픽 금메달 한풀이에 실패하면서 양궁은 1984년 이래 처음으로 개인전 금메달을 모두 놓치는 뼈아픈 경험을 했다. (베이징=연합뉴스) 특별취재단 chungwo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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