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펜싱을 얕보지말라'
변방에 머물던 아시아펜싱이 2008 베이징올림픽에서 이탈리아 등 유럽세를 뚫고 눈부신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1896년 근대올림픽 출범과 동시에 채택돼 가장 오랜 기간 올림픽종목으로 권위를 갖는 펜싱은 그동안 유럽국가들의 전유물에 가까웠다. 2004년 아테네대회까지 나왔던 금메달 543개 가운데 프랑스가 111개를 가져갔고, 이탈리아가 106개, 사브르 종주국 헝가리가 84개를 따냈다.
아시아는 1984년 LA올림픽에서 중국의 펜싱 영웅 줄리 리안이 여자 플뢰레에서 금메달을 따기 전까지는 금메달도 없었고, 그 이후로도 2000년 김영호가 남자 플뢰레 개인전에서 딴 것 외에는 금메달을 모두 유럽과 미국에 양보해야 했다.
통산 메달 개수도 초라해 중국이 금메달 1개를 포함해 7개, 한국이 금 1개와 동메달 1개에 머물렀고, 일본은 아예 메달이 없었다.
그러나 베이징에서는 상황이 달라졌다.
무엇보다 개최국인 중국의 기세가 드높다. 12일 남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무명 중만(25)이 24년 만에 중국에 금메달을 안기더니 14일 여자 사브르 단체전에서는 강호 미국을 꺾고 은메달을 가져왔다.
한국도 칼을 매섭게 휘둘렀다. 여자 플뢰레의 남현희(27.서울시청)가 올림픽 3연패를 노리던 발렌티나 베잘리(34)를 결승에서 치열하게 격돌하다 아쉽게 패해 한국 여자 펜싱 선수로는 처음으로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갔다.
정진선(24.화성시청)을 비롯해 최병철(27.화성시청), 오은석(25.상무) 등 기대주들도 8강과 16강에서 금.은메달리스트들과 붙은 탓에 메달은 따지 못했지만 이들과 막상막하의 승부를 벌이며 확실한 저력을 보여줬다.
일본 역시 역사를 썼다. 남자 플뢰레 개인전 16강전에서 최병철을 이긴 오타 유키가 은메달을 따내면서 일본 펜싱 역사상 첫 메달을 목에 거는 데 성공했다.
아시아권 펜싱이 이처럼 성장한 것은 유럽을 중심으로 이뤄져 온 펜싱이 좁은 저변에 위협을 느낀 덕이 크다.
르네 로크 국제펜싱연맹(FIE) 회장은 `펜싱의 세계화'를 주장하며 아시아와 중남미권에 국제대회를 유치하도록 배려하면서 저변 확대에 힘썼고, 유럽 국가들에 유리하게 내려지던 심판 판정 텃세도 거의 사라져 대등한 경기가 이뤄지게 됐다.
뿌리깊은 전통을 가진 유럽 국가들의 아성을 무너뜨리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세계 펜싱의 지형도는 한국과 중국, 일본의 조금씩 변하고 있다.
특히 자국 개최를 앞두고 종합 1위 전략 가운데 하나로 펜싱에 집중적인 투자를 한 중국이 아시아권의 패자를 둘러싸고 한국과 선의의 경쟁을 벌이게 된 점은 앞으로도 주목할 대목이다.
김국현 대한펜싱협회 부회장은 "FIE가 저변 확대를 힘쓰면서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권 국가의 수준이 높아졌다"며 "특히 중국은 한국 펜싱의 가장 큰 라이벌로 떠오른 만큼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베이징=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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